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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Jan 10. 2023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그렸던 스물다섯의 자화상과 스물다섯에 다시 본 과거의 그림.

작은 키, 뛰어나지 않았던 외모, 소극적인 성격, 중상위권의 성적. 나는 학교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 그런 사람이었다. 해외에 나가는 것에 결정되었을 때도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것이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내 인생에 큰 변환점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 친구들이 준 지갑은 언제나 가지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일들을 겪었다. 해외에서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고, 8주라는 시간 동안 기숙학원에서 지내며 이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대우와 눈초리인가 싶을 정도의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때부터 20살의 내 모습을 꿈꿨다. 20살이 되었을 때 펼쳐질 나의 찬란한 앞날을.


그러나 나의 20살은 허무했다. 비극에 가까웠다. 해외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 친구들과 함께 마신 술은 쓰기만 했다. 그렇게 피워보고 싶었던 담배의 맛도. 그 자리가 끝나고 나를 기다리는 것은 2평 정도의 작은 불 꺼진 고시원. 6개월을 그곳에서 혼자 지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한국의 낯선 땅, 서울은 언제 가도 익숙하지 않아. 끝내 12월 21일에 찾아온 대학교 합격증, 스물하나는 뭔가 다르겠지, 나는 그 생각에 설레 잠들었다.


스물하나, 나는 무리들 사이에 잘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못했다. 한 인간의 자아가 설정되는 시기인 16세부터 19세 사이의 시기를 나는 전부 해외에서, 그리고 혼자 보냈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고 스물하나의 절반이 지나갔을 때, 나는 20대의 중간, 스물다섯 나의 모습을 그렸었다. 그때도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욱 많은 글을. 지금과 달리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꿈은 언제나 출판사 창업. 스물다섯이 된 나는 아마 Writer's Box와 푸른 태양을 그리워하는 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걸작을 만들어내고 이름을 널리 알린 문인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와 여러 서점과 기업을 오가며 강연을 하고, 글쓰기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지만 말하고 나에게 똑바로 무시하는 말을 던졌던 그들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물다섯이 되었다.


2022는 과거, 2023은 현재. 2022의 마지막 태양은 죽고, 2023의 태양이 탄생했다. 해가 뜨고 지는 같은 행위의 반복이지만 그 사이에는 큰 변화가 발생했다. 이제 2022는 없다. 스물다섯, 나는 스물다섯이 되었다. 스물하나에 꿈꿨던 나의 모습, 나는 그것과 얼마나 닮았지? 23이 0으로 변하던 그 시점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본다면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과거에 그렸던 모습과 얼마나 닮았을까 하며.


스물넷은 나에게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가 펼쳐진 태양이었다. 전시회를 하고, 작품을 직접 전시회장에 걸었다. 작품을 설치하던 도중에 사다리에 떨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으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 전시회로 이름을 알렸다거나, 사실 그런 효과는 얻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저 전시회에 참여했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변하지 않은 듯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내가 스물하나에 그렸던 스물다섯의 자화상과는, 그것보다는 너무나 부족한.


기대가 높았던 탓일까, 나의 부족함일까, 아니면 불공평함인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과거도 나, 현재도 나, 미래도 전부 나. 모든 것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나로 인해 발생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 이제 시작한 스물다섯, 나는 지레 겁부터 먹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며.


어제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에게 요즘 뭐하며 지내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지낸다고 말해야 했지만 나는 얼버무리며 이것저것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글을 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책을 쓰냐고 하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책도 쓰고 이런 저런 곳에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멋있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나는 의아했다. 나는 이것이 그다지 멋있는 행위라고, 오히려 멋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한 명이며, 그저 타인에 비해 더 많은 문장을 쓴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멋있다고 말해준다는 사실에 고마웠다.


진부한 말이며, 자기위로에 불과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시작한 스물다섯,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름답지 아니한 것도 아니었다고.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찬란하지 못하더라도 고귀하게 피어나기를.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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