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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묘사하기

정윤 작가님과 함께 글쓰기, 한 시간 동안 한 장의 사진 묘사하기

by 설애

글쓰기 숙제로 한 시간 쓴 것이라 날 것입니다.

배우는 과정이니 참고해 주세요.



들판 위에 여자가 앉아있다. 여자의 앞에는 호수가 있다. 호수 뒤로 산이 있다. 산 위로 하늘이 있다 하늘 가운데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하늘은 연한 색으로 구름 하나 없다. 산은 오른쪽에서 튀어나 호수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고 그 뒤로 낮은 산들이 낮아졌다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산의 색은 점점 옅어져 하늘색과 같아지는데, 가장 뒤로 구름이 내린 듯 하얀 산이 있다. 구름이 아니라 눈일 것이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것을 보니 지금은 겨울이 막 지난 봄일 것이다. 방증하듯 들판의 풀이 짧고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사진을 풀 가까에서 찍은 듯 초점이 맞지 않은 풀의 그림자가 여자 옆으로 어른거린다. 여자는 앉아있다.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날이 더운 듯 팔이 짧은 흰 티셔츠를 입고 있다. 티셔츠를 입은 상체에는 황토색 가방에 등뒤에 매달려있다. 그리고 가방과 비슷한 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는 창이 넓지는 않으나 천으로 된 창이 360도로 있는 모자다. 모험가들이 가볍게 쓰는 천 모자이다. 여자는 짧지 않은 머리인 듯 모자아래도 머리가 늘어져있다. 등 뒤가 아닌 앞으로 머리가 있어 얼마나 긴지는 알 수 없다.


풀은 연두색과 낡은 짚과 같은 색이 어우러져 있고, 여자 옆으로 푸른 관목이 있다. 푸른 관목은 여자의 왼쪽 옆에, 그리고 조금 떨어져 또 한 그루가 있다. 그 관목 너머로 펼쳐진 호수는 하늘과 산의 빛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하늘이 있는 곳은 하늘색, 산이 있는 것은 조금 진한 녹색으로 보인다. 호수에 바람이 일지 않는 듯 물결이 크게 없고 잔잔한 표면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는 그 호수를 보며 앉아 있는데 약간 고개가 왼쪽으로 향해있어 새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는 방향을 트는 듯 사선으로 기울어져 왼쪽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하늘이 넓어 새는 작은 점처럼 보이지만 날개와 꼬리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정도로 보인다. 새 아래로 낮아졌다 높아지고 진해졌다 연해지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여자를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풀들이 카메라를 가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거의 엎드려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카메라 앞으로 어른 거리는 풀, 짧은 풀들, 그 사이에 앉아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찍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자는 오른팔을 몸에서 조금 떨어뜨려 땅을 짚고 있다. 아니 무릎 위로 올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힘을 주지 않은 채 평화로운 호수와 산, 하늘, 하늘 가운데 새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저 멀리 눈 녹지 않은 산은 있지만 하늘에 구름도 없고 여자의 옷도 얇고 짧아 약간 더운 계절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바람은 불고 있을까? 여자의 머리카락이 가지런하게 있으니 바람이 크지는 않겠지만, 더워서 쉬는 것이라면 한 줄기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게 느껴질지 상상이 된다.


호수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배도 없고, 오리도 없고, 그저 잔잔하다. 호수 왼쪽 옆으로 낮게 펼쳐진 땅으로 이 호수로 드나들 수 있는 걸까? 저 낮은 땅에는 사람이 있을까?


해는 보이지 않고 사진이 선명하니, 아마 여자의 등뒤로 해가 떠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침일까? 점심일까?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시간을 알 수 없다. 오전일 수도 정오일 수도 오후일 수도 있다. 아침을 먹고 나와 사진을 찍는 것일 수도 있고, 점심으로 낮은 산을 올라와 쉬고 내려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여자의 뒷모습으로는 시간도 이유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자의 가방이 크지 않고 가벼운 천이고 빵빵하게 무언가 담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먼 길을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숙소에서 잠깐 걸어 나왔거나 도로에서 경치가 좋아 잠깐 멈추어 걸어왔거나 그런 잠깐의 산책 정도로 보아진다.


호수의 표면이 잔잔하듯 호수를 보는 여자의 마음도 잔잔할까

여자의 뒷모습이 단정하듯 여자를 보는 사진 찍는 사람의 마음도 단정할까


사진은 풀들이 이루는 지면과 호수와 하늘이 평행하다. 전체 사진의 얕은 부분의 지면, 여자의 뒷모습이 중심이 되어 머리 위로 산이 조금 나와있다. 나머지 많은 부분은 하늘이다. 그래서 하늘에 딱 하나 있는 저 새가 도드라져 보인다.


여자의 앞으로 펼쳐진 것은 절벽일까? 아니면 호수와 이어지는 지면일까. 카메라가 담은 풀밭이 여자가 앉은 자리를 가려 알 수 없다. 호수와 여자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여자의 시선이 높은 것인지, 사진 찍는 사람의 시선이 낮은 것인지 나는 그 앞의 풍경을 볼 수 없다.


멀리서 이 사진을 보면 풀들 위로 솟아난 꽃 한 송이처럼 여자가 보일 수도 있을까? 여자가 화려한 빨강이나 노란 모자를 썼다면 꽃처럼 보였을텐데, 하얀 티셔츠에 모자와 가방이 황토색이라 그녀는 꽃보다는 돌 같다. 그러니 어느 바닷가에서 서방님을 기다렸다 돌이 된 여자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여자가 무엇을 기다린다면 바람일까? 더위를 식혀줄 한 줄기 바람. 아니면 빨리 사진을 찍고 돌아가서 마실 한 잔의 시원한 커피일까? 아니, 그전에 이제 괜찮으니 돌아보라는 사진 찍는 사람의 말일까? 여자가 돌아보면 여자는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아니면 호수처럼 잔잔한 표정일까.


여자는 새를 보는 걸까. 새 너머의 하늘을 보는 걸까?


새는 왜 하늘을 날고 있을까? 혹시 여자의 것일까? 새는 사냥을 하는 것일까? 어디론가 가는 것일까? 저 새는 둥지로 가면 기다리는 새들이 있을까? 없을까?


새를 보는 여자는 집으로 가면 누가 있을까?

혼자 살까? 사진 찍는 사람과 같이 살까? 가족이 있을까?


여자의 뒷모습은 구부러지지도 날이 서지도 않아 편안하다.

그래서 호수와 산과 풀들과 잘 어우러진다. 저 편안함은 성격일까? 자연에 나와서일까? 여자는 걱정이 없을까? 몇 살일까?

뒷모습을, 그리고 내려온 머리카락으로 보았을 때,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50대의 팔뚝은 저렇게 가녀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30대나 40대로 그럴 것이라고 보인다. 그럼 아이가 없는 20대나 30대, 40대일까. 흰 머리가 없으니 노인은 아닐 것이다. 성인 여성이겠지.


여기는 어디일까? 짧은 팔에도 눈녹지 않은 산이 있으니, 저 산은 높을 것이고, 그렇다면 높은 산 아래 호수가 있는 멋진 곳이겠네. 여행을 왔을 것이다. 저 여자와 사진 찍는 사람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일 것이다.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를 날씨가 좋은 곳에 찾아가는 사람은 직업이 여행인 사림일까? 이 사진은 다른 사람이 관광올 수 있도록 찍는 홍보용 사진일까? 여자가 없는 사진보다는 여자가 있는 사진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여자는 이 사진에 중심이 잘 어울린다.


하늘은 산에서 멀어질수록 짙어져 사진의 테두리를 진하게 만든다. 너무 고요하고 잔잔하여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새는 일부러 그려 놓은 것 같이 제 위치에 있다. 저 새가 사라지고 이 여자가 사라지고 해가 지면 이 풍경은 붉은 노을 속에 깊이 잠들 준비를 하겠지. 밤이 되면 별이 총총하게 뜨겠지. 여자는 없어도, 새는 없어도 이 풍경은 그 자리에 색을 바꾸며 살아내겠지. 풀은 자라고 겨울되면 눈 쌓이고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와서 이 풍경을 다시 만들겠지. 그럼 여자는 다시 찾아올까. 지금 사진을 찍어주는 그 사람과? 지금 날아다니는 저 새도 다시 올까? 저 새는 매년 여기에 있을까? 여자가 없어도?


여자를 스티커로 만들어 이 풍경 저 풍경 속에 붙여놓고 싶다. 노을 속에도, 별빛 아래도. 저 무심하고 편안한 뒷모습을 어느 곳에 붙여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런 스티커처럼 나도 여기저기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진을 잘 찍어주는 한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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