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를 좋아하지만 이번 전시는 별로 기대하지 않은 채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무난해 보이는 그림을 감상하며 이 무난함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한 점, 한 점 작품을 지나고 보니 여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가 열렸다. 이전에는 그림이 왜 그 정도까지 비쌀까? 의심을 하고 마케팅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으나 이는 일부분 나의 무지에서 생긴 착오였다. 새로운 시야가 열리자 그림이 왜 비싼지 이해가 되어버렸다. 물론 뻥튀기된 대부분의 그림에는 그 정도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열린 시야는 기술에 의한 그림이 아닌 감각에 의한 그림이니까 말이다.
기존에 내가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작품 자체, 작품을 올곧이 보는 것이었다.
작품에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지, 무엇인지, 예술이 담겼는지 등 그리고 그것을 담아냈는지를 중점으로 감상했다. 그렇게 감각으로 전달되는 게 있는지를 느껴보면 예술이 아닌 상업이 담긴 작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작품등도 가려졌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감상하거나 판단하고 그림의 설명을 보면 얼추 맞아떨어지거나 똑같이 설명하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나는 나의 안목을 꽤나 신뢰할 수밖에 없다. 내 감상과 다른 설명을 볼 때면 그 설명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림은 백그라운드를 만들어 비싼 값으로 만드는 방식이 성행했기에 꾸며진 말인지 내가 놓친 게 있는지가 구분되는 거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야가 개방된 느낌이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는 이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그냥저냥 무난하고 별 볼 것 없던 전시였을 거다.
무난한 그림을 몇 점 감상하자 묘함이 다가왔다. 분명 무난하고 무난하고 무난한데. 그림들의 공통점이 와닿았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직면한 특별함이 구성되어 있었다. 짧게 정리하자면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는 평범함속에 깃든 작가가 감각적으로 느낀 특별함 그 자체였다. 무난해 보이는 그림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이 담긴 그림들 속에서 화가가 특별하게 포인트를 잡은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낀 특별함들이 발견됐다. 그렇게 감상을 이어가다 보니 전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화가가 직면한 특별함으로 구성한 사람의 안목에 감탄했다. 단일 그림을 놓고 판단하라고 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그 안목을, 나는 구성한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난 사람 덕분에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안목을 파악하고 화가가 느꼈을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상상의 확장을 시작했다. 작품, 그림 속에 담긴 상황을 그렸을 화가의 모습. 그것을 바라보며 보냈을 풍경과 사람. 그중에 특별함을 느낀 부분을 그림으로 옮겼을 화가. 사진처럼 프레임으로 축소된 그림 외의 확장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일련의 이런 과정들을 통해 왜 구도를 그렇게 잡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표현하거나 담고 싶었는지가 안목이 부족해 파악하지 못한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와닿았다. 마치 내가 여태 집중해서 본 잘 그렸다고 생각한 작품들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안목이었다면, 이런 것을 파악하기 위한 안목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경외감이 들었다. 구도의 중요성과 수천 가지의 다른 빛을 보면서 그림에 녹여낸 순간의 빛의 활용에 감탄했다. 이 화가가 그때 느꼈을 평범함 속의 특별함과 그것을 캐치한 안목이 뛰어난 그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소에 봐오던 전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작품들은, 대개의 화가들은 자신이 감각적으로 느낀 특별함이 아닌 미화되거나 특별해 보이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돈이 되니까. 그래서인지 다른 전시에서 미화되거나 특별함 그림들 중에 이런 작품이 하나 껴있었다면 아무 의미 없는 무난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평범함 속의 특별함이라는 키워드를 모른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은 아니고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아도 왜 좋은지를 모른 채 넘겼을지도 모른다. 백그라운드를 파악해야 의도가 보이고 어떤 부분을 특별하게 캐치했는지가 놀라웠다. 쉬지 않고 치는 파도들 속에서 어떤 파도의 조각들을 합쳤는지, 언제 특별하게 느꼈는지는 정말 놀라운 감각의 경험이었으리라.
전시를 향유하듯 한 폭, 한 폭 거닐며 감각을 기대의 차며 감상하며 생각이 날아들어왔다. 오늘 전시를 통해 화각 왜 그림을 그리는지 알 것 같았다. 화가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림에는 내가 생각하는 특별함을 담아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예술의 하나의 상황일 뿐 이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그러나 이 감각과 황홀함을 느꼈다면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은 아닐지언정, 돈을 벌지 못할지언정 과연 그림 그리기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발견한 조예가 깊고 안목이 있는 사람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 의미를 알아주었을 때 느낄 카타르시스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솔메이트가 됐을 것이다.
그림을 1초 만에 순식간에 그리는 것이 아니듯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을 필요가 없으며 화가가 느꼈을 특별함을 담는 것이 예술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자 그림은 사진을 대체할 수 있지만 사진은 그림을 대체할 수 없음을 느꼈다. 감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 속에 허구를 담는 것이 아닌 화가가 느꼈을 특별함이 담기는 과정. 그 과정은 사진처럼 한순간에 프레임을 담는 것으로는 구현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접근하고 보니 ai가 추구하게 될 예술이 완성형이 되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이 따라잡지 못할 수는 있어도, 인간이 창조해 내는 예술은 ai와는 다른 분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