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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Nov 20. 2024

돌,바람,여자 그리고 비극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제주 4.3사건이 한국전쟁 전에 시작돼 휴전 후까지 더 길게 이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제1공화국 시절 한국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전쟁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정도다.


또 읽는 내내 머리를 스친 현대 역사의 트라우마들(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건 등)도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 있는 한 희생자들을 올바르게 애도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건들 또한 훗날 소설화 되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나의 제주도에 대한 인식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뉘게 됐다.휴양과 힐링의 섬, 이국적인 휴가지로만 알았던 ‘제주도’라는 섬이 이제는 참혹한 비극의 역사가 일어난 곳, 아직도 슬픔과 애도가 끝나지 않은 장소로 기억될 것만 같다.



주인공은 작중 화자인 경하(소설가)와 인선(경하 친구, 다큐 사진작가), 인선의 엄마(정심)이다.


경하와 인선은 20대에 잡지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알게되어 친해진 친구사이다. 경하는 4년전 쓴 소설로 인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사는 것 같지 않게 살던 어느날 인선으로부터 병원으로 급히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인선은 제주도 집에 홀로 남겨둔 앵무새를 돌봐달라고 경하에게 부탁한다.


경하는 제주도로 가서 산중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인선의 집은 폭설이 내려 택시도 없고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험난하지만 경하는 인선이 해준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눈보라를 헤치고 인선의 집으로 향한다.


인선의 엄마 정심은 13살 때 제주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 사건을 겪은 피해자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선의 엄마가 어린시절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참혹하게 가족을 잃었고, 살아있을지 모르는 친오빠의 흔적을 쫓으며 살아온 세월을 톺아간다.


인선과 경하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영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고 약속했지만 제법 긴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프로젝트 이름이 바로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인선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면서 간간히 엄마에게 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었고,정심은 이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엄마가 모아온 오래된 자료와 기록들이 발견되었고,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된 인선은 차마 영화로 제작하기를 포기한다.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등장하는 큰 배경으로 ‘눈’이 있다. 소설 속에서 ’눈‘이 대규모 학살이후 시체들의 얼굴에 내려앉은 장면에서, 녹지 않는 눈은 더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을 의미한다.


또 인선의 제주도 집을 찾아가는 경하의 발목을 붙잡는 폭설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려는 정의의 길목에 걸림돌이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눈이 녹으면 다시 물이 되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으로 순환된다는 면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의 반복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인선의 집에서 경하 또한 과거의 끔찍한 사건에 대해 목도하고 숙연한 먀음으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한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없이 영원하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신형철,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애도받지 못하고 잊혀진 사람들의 멈춰버린 시간을 흘러가게 해주고 편안히 떠나게 해야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 책 후면에 실려있는 평론가님의 글도 공감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진심을 담아 애도하면서 작별해야할 때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내가 희생자나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동시대에 살아남은 조상이 있기에 나 또한 있는 것이므로 부채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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