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오픈 100일, 그 이후
#1 겨울
겨울의 북촌은 춥다. 곧 끝날 거라 믿었던 코로나의 지속적인 희망고문과, 거리두기의 좌절감이 인생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걷기 좋은 상권의 특징은 계절을 탄다는 것이다.
생산과 공급만이 가능한 혼자 일하는 시스템에서 다른 일을 할 방법은 잠을 줄이는 것 밖엔 없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렇게 일하기엔 이제 자연 치유가 불가능한 몸이 되어버린건가 하는 생각.
5일째 허리가 아픈데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아파진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갈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자영업자들은 다들 고질병을 달고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2 의자
테스트 삼아 가져다 둔 상하조절이 가능한 의자 3개는 손님들뿐 아니라 나의 마음도 평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해서 원래 계획은 11월 말에 전부 교체하는 것이었지만, 제품이 품절되어 1월 초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전부 교체 완료. 의자를 바꾸고 변경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 가게 5석은 더 둘 수 있겠단 것. 좀 더 시간이 지나면 5석 정도 더 늘려보려고 한다. 그게 창문 바로 앞자리라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3 150일
오픈하고 150일이 넘게 지나버렸다. 그동안 8000그릇 정도의 식사를 대접했고,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계획과 다른 점들을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일하게 될 줄 몰랐고, 이렇게 겨울이 쉽지 않을 줄 몰랐다. 뭐 그 정도. 그간 3곳의 잡지와 인터뷰를 했고, 1곳의 신문사와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혼자라서 메뉴를 늘리기도, 수량을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여전히 사람이 급하다.
#4 직원의 등장
가게를 들러주시던 분들은 알고 계시지만, 3달 동안 직원을 구하는데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다 갑자기 2월이 되어서 출근할 직원이 2명 생겼는데 그 둘이 꾸준히 일을 해주기만 한다면 안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음식과 술이 다양해질 테다. 봄이 오고 길에 사람이 있을 때에 안암엔 다양한 사람이 방문해주리라.
#5 고수
현재 나는 음료 몇 가지, 사이드 메뉴 2가지, 스페셜 메뉴 1가지를 준비 중이다. 구매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지만 봄 전에 준비를 끝내는 방향으로 차곡차곡 진행 중이다. 그중 한 가지가 고수 추가인데, 우리 국밥은 원래 고수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호불호의 문제 때문에 준비해놓지 않았지만 자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추가해드려 보니 반응이 많이 좋다. 해서 준비를 해둘까 하는데 고수 값이 만만치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 하다못해 500원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좀 걱정이다. 아, 참고로 식초도 준비할 예정이다.
#6 메뉴
튀김 한 종류, 그리고 무침 한 종류를 준비하고 있지만 애먼 데서 자꾸 막힌다. 원하는 맛과 향은 나왔지만 재료를 어떻게 쓸지가 항상 문제. 고민을 끝내기 전에 처리할 일이 자꾸 생기니 브레인스토밍을 끝내기가 어렵다. 아, 그리고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돌아왔다. 방법을 찾은 덕분에 4개월 만에 매운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매운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7 피드백과 기준
꾸준히 피드백을 탐색하고, 수정하고 개선한다. 취향의 차이인지 개선이 필요한 문제인지 구분할 기준과, 사업자로서 음식을 대해야 할 자세와 요리사로서 음식을 마주하는 마음가짐 중 어떤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 문제에 따라 기준을 바꿔야 한다. 때로 너무 가벼운 주장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식사 후 방문한 자리 한편에 고마운 마음을 두고 가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음식을 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밀고 들어온 북촌에서 추위를 맛보고 있지만, 봄이 오면 더 많은 것들이 괜찮아질 테다.
#8 자영업자
하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인다고, 말이 좋아 대표고 말이 좋아 사업이지 자영업자는 결국 자기 일자리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눈이 와서 장사가 안되고, 내일은 설 연휴가 껴서 사람들이 돈을 안 쓰고, 연말엔 연말이라 돈을 안 쓰고, 코로나에, 자택 근무 덕분에 장사가 안된다. 장사가 되는 날보다 안 되는 이유가 훨씬 많다. 난 그런 세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상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던 사장의 입장이 되어 바라본 음식점은 너무 많은 것들이 직원의 시각과 다르다. 감가상각과 손익분기, 매출과 이익의 차이는 몸으로 겪고 나서야 받아들여진다. 야박했던 사장들은 절박했고, 그 절박함과 초조함이 쌓이고 쌓이며, 믿었던 직원들의 실망이 잦아지면서 더 상처받기 싫은 마음을 움츠리고 추스른다. 아직 그런 입장은 아니지만 멀찌기나마 보이는 현실들에 다들 방법을 찾기 위해 악착같았구나.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대한민국에 있는 이 많은 자영업자들은 전부 코로나 시대라는 현실 속에서 방법을 찾고 있을까? 첫 두 달 동안 가게가 안정되면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던 지인들은, 이제 가게가 안정되면 밖에서 얼굴 보자, 하고 말한다.
혼자 멀거니 정리해본다. 자영업에 안정이란 게 존재할까? 단 하루라도 위기가 아닌 채로 지나갔던 날이 있을까 싶다. 자영업의 하루는 조금 다르다. 하루하루 시험성적 나오길 기다리는 학생 같은 느낌이다. 이런 감정도 역시 잘 갈무리해두면 또 언젠가 나와 같은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경험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