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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n 26. 2022

프로젝트 안암(安岩)

#10. 10개월.

1. 여름


북촌, 안국, 재동 어느 곳인가 속해 있는 안암이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유일한 계절, 여름이 왔다. 

국밥이란 아이템이 가진 한계가 가장 드러나는 계절인 여름을 지나 보내고서야 안암은 이곳에서 1년의 데이터를 오롯이 모을 수 있고, 내년 계획의 여러 가지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 거리가 가장 예쁜 봄과 가을에 물밀듯 몰아치던 손님들은 "북촌은 그늘이 없어요"라고 말하던 손님의 말을 증명하듯 여름이 시작되자 줄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초조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년 여름 역시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면밀히 분석하려고 노력 중이다.


누가 국밥을 먹으러 이곳까지 찾아올까 노심초사하던 첫겨울과 코로나를 지나, 그렇게도 검색이 어렵고, 그렇기에 리뷰가 쌓이기 힘든 안암에 대한 200개가 넘는 의견이 쌓이는 동안 정말 많은 수의 손님들이 안암을 방문해주시고 그 음식에 공감하기도, 비난하기도 했다. 


그중 이번에 달린 리뷰가 참 재미있었는데, 그날은 장마 예보와 무더위, 습한 날씨가 겹쳐 썩 내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 그대로 손님 수로 이어진 토요일이었다.


3시 30분쯤 방문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봄과 가을엔 쉬는 시간을 두기도 힘들 만큼 몰아치는 이 상권은 손님이 적어지는  계절이 있고, 그런 날에 방문했던 이 손님은 내가 망할까봐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했다.(해결책까지 쓰여 있다.)

 

자신이 먹고 싶은 날에 찾을 수 있는 식당이 그 자리에 남아있어 주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 나는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겁쟁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계절에도 어떤 기대감으로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나만이 느끼는 매일 다른 음식의 컨디션에 손님의 재방문 경험의 유격이 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잔뜩 쌓아 하루를 시작한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중요하지 않지만

손님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것은 매우 두렵다. 


두려워해야 한다. 

음식 컨디션 관리 실패가 괜찮은 순간은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경중을 나눌 수 있는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모든 손님의 우리에 대한 경험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끊임없이 예민해진다. 

우리 음식에 공감하진 않을지언정, 실망하진 않게 하기 위해서. 


2. 프로라는 것


  분명한 것은, 실수를 두려워해선 성장할 수 없다는 것. 
실패를 하지 않고선 원하는 바를 얻기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프로에게 실수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컨디션에 따라 손님이 지불할 금액이 달라지지도 않으며,
내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우리 플랫폼에 대한 손님의 경험이 달라져서도 안된다. 
참으로 주옥같은 말이 잔뜩 담긴 신장개업 B급식당 업그레이드 전문가


한 가지 음식만 하는 음식점의 특징은, 실수 한 번의 데미지가 매우 높다는 것. 

해서 끊임없이 크로스 체크와 더블 체크를 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대처가 불가능하다면 그날 문을 닫는다는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슈로는 염도, 그리고 육수의 상태가 있다. 우리 음식의 밸런스는 한 그릇 안에서 맞춰져야 해서 고추기름(향), 육수(간과 감칠맛, 풍미), 고기의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하며, 쌀 또한 계절에 따라 수분 양이 달라 밥을 지을 때 신경 써야 한다. 깔끔한 음식일수록 밸런스에 굉장히 예민하다. 


고추기름의 경우 여름의 야채는 질기고 향이 짙으며, 매운맛이 강해진다. 해서 기름을 뽑을 때 양을 잘 조절해줘야 하는데, 체크가 안되면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육수는 겨울과 여름 육수의 관리법이 다르다. 여름엔 향 분자가 활성화되는 온도에 오랜 시간 노출되고, 단백질 육수의 숙성 정도 변화가 빨라 풍미가 부족해지기도 한다. 해서 가능한 한 빨리 식혀줄 방법을 찾는데 집중하는데, 그 과정에서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염도. 이게 참 재미있다. 요리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탈수 증상이 있는 채로 시간을 보낸다. 보통 물 마실 시간이 부족한 데다 더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게 체내 PH에 영향을 받는다. 해서 소금기를 더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가 아니고서도 간을 자주 보다 보면 입맛도 짜지곤 한다. 

해서 보통 요리사들은 자신의 간보다 좀 약하게 음식 간을 맞춰 나간다. 음식 컨디션이 달라지는 걸 감안해서 맞추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반인보다 자신의 간이 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여름은 일반인들 역시 탈수 증상을 겪는 시기다. 해서 겨울의 간은 0.55 정도였다고 해도, 여름의 간은 0.75 남짓으로 맞춘다. 이게 참 재미있다. 재방문 손님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체내 수분 정도를 확인하긴 어렵기에, 오늘은 싱겁네, 오늘은 좀 짜네 하지만 그게 꼭 음식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단 사실을 알진 못한다. 


여하튼, 그 사실을 깜빡하고 겨울 기준으로 잡힌 염도는 더워지고 나니 느끼하단 리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이블 소금의 줄어드는 양, 식사 집중도, 후추를 찾는 손님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놓친 부분이 있단 것을 확인했다. 더운 여름엔 간을 높여야 한다는 것. 


음식은 이런 부분이 참 재미있고 예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신경 쓰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음식은 이렇게나 예민하다. 그럼에도 우린 오는 손님들의 경험을 최대한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음식을 경험하고자 하는 손님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최대한 다양하고 많이 인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게 내가 생각하는 프로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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