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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l 28. 2022

프로젝트 안암(安岩)

#11. 첫여름

1. 한옥

한옥 형태의 지붕을 인테리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꽤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그중 한 가지가 중앙 냉난방을 할 수 없다는 것.  

생각보다 높은 사람들의 체온과, 실외기가 만드는 온도가 꽤 더운 공간을 만든다. 거기에 배관이 나갈 수 없는 구조를 지녀 에어컨 설치하시는 분들은 설치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 

비라도 오는 날엔 실내 온도가 후덥지근해서, 선풍기를 잔뜩 준비를 하는 것 외엔 방법을 못 찾고 있다가 어렵게 어렵게 에어컨 교체를 시공했다.

그리고 생겨난 결로 현상으로 인해 무지하게 고생 중이다. 



2.  인플레이션과 코로나


금리인상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원유값 폭등 등 복합적으로 구성된 인플레이션은 내 삶에 기어코 영향을 주고 있다. 여름이 더욱 박진감 넘치는 이유는 장마로 인한 야채값 폭등 역시 일어나기 때문. 실제로 7월 원자재값은 거의 75% 정도 상승했다. 정산 정리하다 너무 놀라서 체크해보니 사용하는 기름값은 2 달새 한통에 10만 원이 되어 있고(거의 두배 됨),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도 공지했지만 고수 값은 진짜 트러플을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가격을 올려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은 내내 있는데, 이거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 와중에 코로나가 재 확산되고 있다. 이주 내 10만 명 육박 기사가 열심히 올라온다.(그 사이 넘어갔다)

초조했던 겨울 내 북촌의 광경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 사이 늘어난 직원들을 생각하면 무게감이 늘어나는데, 언젠간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 말곤 방법이 없다. 

2년 동안 악착같이 버틴 선배들이 그걸 또 겪게 될 생각 하면 속만 상할 뿐.



3. 6일 근무

요리사는 화려하지 않다. 그것만큼 분명한 게 없다. 호칭이 셰프로 달라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8월은 휴가가 있다. 1일부터 5일까지. 목요일까지 닫고 금요일은 재료 준비 및 청소가 예정되어 있다. 

해서 8월은 6일부터 첫 영업. 줄었던 영업일수를 복귀시키기 위해 나는 다시 6일 근무를 시작한다. 

몸은 힘들지만 직원들 월급에 대한 부담은 좀 줄지 않을까. 

월급은 제대로 주는 사장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 당연함을 지키기 위한 악착같음 역시 내가 짊어져야 한다. 

가끔 그렇게 당연한 것들이 힘들면 하지 말아야지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현명하다. 

하지만 어느 카테고리에서든, 기본을 지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4. 직원"들"

최근 직원 시절 나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직원이 늘었다. 직원 한 명과 아르바이트들과 일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이제는 하나씩 시스템을 만들고 수정해나가야 한다. 되도록 직원들이 안암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사용함에 있어서 비참하게 느끼지 않길 바란다. 나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거나, 그 일을 해내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끝내는 순간 조직은 와해된다. 

나는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고민이다. 

직원일 때 나와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법과, 사장인 내가 나와 다른 직원들을 끌어안는 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이상하게 항상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온 리더십에 대한 질문에 촌장님의 대답.

"뭘 많이 먹여야지"

 그러기 위해선 결국 매출을 더 늘려야 하는데, 그 역시 나의 몫이다.


5. 요즘 애들

그 말이 맞지. 80년대에도, 90년에도, 심지어 고려시대에도 요즘애들이라는 말은 있었을 거다.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는 항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라테는이라는 말로 기성세대를 비아냥댈 수 있는 그들의 영리함과 섬세함에 대한 칭찬은 딱히 보이지 않고, 성실함으로 대변되던 세대 눈에 보이는 불성실함은 부각된다. 

그 역시 가치 변화에 따른 세대 별 다른 기준 사이의 격차가 보여주는 예인데,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둔 시스템에 어느 정도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듯 기성세대 역시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방향성을 인지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어떤 시대에도 그 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겠지만, 현재 내가 속한 산업군은 그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진입이 쉬워 사람을 함부로 했던 이 산업에서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부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은 1만 시간의 법칙이 유행하고 노동시간=실력이라는 기준을 합리화시키는 게 쉬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 시간들을 이겨낸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다들 강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이해되지 않는 후배들의 행동에 돌아보니 나는 기성세대, 즉 시스템의 구성자 중 일부가 되어 있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말고, 사용 방식을 고민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게 우리 요리사들이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누구나"할 수 있는 일이 그 노동강도에 그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 부각되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라는 산업군으로 변화되어 있다. 그 말이 맞다. 밥을 먹고 살기 위해 누구나 선택할 수 있었던 이 전선은, 이제 서비스 산업의 다각화로 노동시장에서 선호받지 않는 산업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현실이고, 산업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종사자로서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직업 선택 기준에  포함되어야 할 "잘하고 싶다"는 욕구의 부재다.  어떤 시절에 어느 카테고리에서든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차이를 인지하고 그 차이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산업 자체를 이끌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다수가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시스템 위에서 그 기성세대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의 가치는 "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에 있다. 시대가 지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고, 그 길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대가 요구하는 것들이 무조건 틀렸다고 해선 안된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에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갈등만 부각해서도 안된다. 그렇기에 나 때와는 다른 노동시장에 억울함을 토로해서도 안된다. 세상은 항상 변해왔고, 그것을 적응하는 것 역시 환경 적응에 가장 강점을 보여온 인간의 역사 중 일부이다.


6. 삶

결국 이 모든 게 삶과 연관되어 있다.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손님들의 삶의 경험 중 일부가 될 것인가, 그들의 경험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 직원들의 삶은 어떻게 사용되길 바라는가. 시간이라는 축적 불가능한 소모적 자산을 얼마나 가치 있게 쓸 것인가. 누군가는 각자의 몫이라고 말할 테고, 나 또한 일정 부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생각할 몫이고 나는 그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리더는 각자도생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명령자가 아니라, 발전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의 책임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돌파하고, 그 과정을 독려하며, 그 과정이 나의 성과가 아니라 우리의 성과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시간이 소모적이지 않도록, 나는 타인의 삶을 설계할 필요성도 가지게 된다. 이는 내 개인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목표이자,  리딩 및 운영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우리 직원들의 삶이 건강해질수록 그 가치를 볼 줄 아는 직원들이 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성과는 한참 후에나 나오겠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서 안암의 문화가 될 수 있다면, 서로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잘 전달되는 시점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겐 매출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들 간의 관계가 잘 구성되는 것 역시 중요한 성과가 될 테다. 책임자가 너는 네 삶, 나는 내 삶이라는 경계선을 너무 확정 지어 가져 가도, 내 삶을 너무 손해보지 않으려고 해도 문제가 될 거라고, 아직은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이 작은 공간에 삶의 일부를 맡긴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기도, 반대로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걱정을 하진 말자. 우린 천천히 한 발자국씩 잘 해내고 있다. 

결국 우리의 현재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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