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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Aug 23. 2021

프로젝트 안암(安岩)

#05-3. 나는 그곳을 인테리어 하기로 했다.


승압이라니? 거기 전기 35인데??
아닌데요, 15입니다.
???????




인테리어 1주 차, 벌써 위기다.


내가 들어간 자리는 권리금이 있다.

안국동 근교는 매물이 생각보다 없고, 생각보다 일반음식점으로 용도가 가능한 공간, 그리고 10평을 넘어가는 공간이 흔치 않다. 강북에서도 세가 저렴하지 않은 편인 이 지역은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권리금 없는 공간이 거의 없다. 6개월 정도 권리금이 없는 공간을 찾고, 세가 150 남짓인 공간을 찾던 내가 권리금이 없는 공간을 본 것은 10군데가 채 안된다. 그중 6군데 정도는 사실 일반음식점으로 용도가 나올지 조차 미지수였다.

실제로 별의별 매물을 다 보긴 했다. 이는 안국뿐 아니라 서울 경기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한 결과다.

타깃이 방문하는 상권은 대부분 그랬다.

상권 분석의 첫 방문지는 분당/정자/판교였다. 하지만 사진은 홍대.


코로나 때문에 상권이 죽은 곳과 원래 쓰러져가던 상권이 코로나 핑계로 죽은 곳을 구분하긴 힘들었고, 꾼들이 그 상권을 나누는 기준이 권리금 같아 보일 정도로 상권의 활성화가 달랐다. 음식점을 창업할 때 가장 높은 허들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일반음식점으로 영업신고가 가능한 공간인지, 또 LNG/LPG 중 어느 것을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사용 전력이 몇으로 되어 있는지 등인데, 이것들 역시 권리금의 유무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 중 내가 중요하게 확인해봤던 내용은 전기승압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가였고 이곳은 35Kw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권리금을 조절하는 동안 싸지 않은 권리금을 스스로 합리화시킨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 전 사용자에게 세 번이나 확인했던 전력량이다.


"네 설 대표님."

"여기 전기 35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 전 사용자가 35라고 하던데요?"

"35가 아니라 15인데???"

"에??????!?"



하늘이 노래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뜩이나 공사비용이 충분치 않아 몇십만 원 추가되네 마네에도 가슴이 턱턱 막히는데,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공사비용이 추가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전기반장님의 전기 공급량 확인 후, 혹여 누전이 있거나 다른 변수는 아닐까 싶어 고객번호를 확인하고 한국 전력에 전화를 걸어 다시금 확인했다. 여러 루트로 확인해도 15Kw. 35를 세 번이나 15로 들을 수가 있나 싶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공사비용을 어디서 마련할지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전력사용량을 다시금 체크하기 위해 집기 별 전기 사용량을 재확인했지만 나로선 30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날 이른 아침, 당시 절박함이 담긴 오전 오후 사용량 나누기.




    사단이 발생했는지 복기해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능성은  사용자의 거짓말일 테다. 계약서에 낱낱이 적어놨다면 당연히 문제를 만들지 않을 상황이지만, 권리금을 조절하는 동안   사장님과 나는 신뢰와 유대가 생겼고,  여러모로 양측  손해가 많은 상황이었지만 서로 좋게 해결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면서 권리양도양수 계약서는 디테일하지 않았다.  덕에 나는 전기 증설 비용을  사용자에게 강제할  없었고, 최소 300-500 원의 돈을 날릴  있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라면 말 그대로 뒤집어쓴 거다.


전에 계시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했다.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흥분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온 마음을 다잡았다. 길어지는 신호음에 불안한 마음이 커져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정말 전력사용량을 35로 알고 계셨고, 40분 정도의 통화 끝에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기 증설 비용을 권리금에서 제하여 주기로 하였다.



재현 씨, 제가 만약 다른 사람과의 거래였다면 분명히 공사비용을 확인하고 주거나 주지 않았을 겁니다. 계약서에 있지도 않은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고맙게도 그 결정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무엇이 옳은 지 아직은 잘 모른다. 내가 본 사장님은 솔직하고 자존심 강한 분이었고, 우리는 진심으로 마주한 끝에 힘들었던 계약을 마무리했다.

수십 번 마주 앉아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유대감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은 서류에 쓰여있는 글씨가 전부인 것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계약서 밖의 도의적 책임으로 원만히 해결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옳았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전 사용자가 당연히 해줘야 할 문제였을 테고, 누군가에겐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으니 책임 질 필요 없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전에 쌓은 관계 덕분에 문제가 생겼고, 그 관계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무엇이 옳았는지 판단할 순 없다. 단지 내가 그 사장님을 마주하는 방식이 틀리진 않았었구나, 하는 것 정도만 흐릿하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니, 되돌리긴 틀렸어요. 저는 이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답니다.


전기증설 과정은 생각보다 사용자 입장에선 어렵지 않았다. 15Kw를 더 증설하면서 서류비용과 증설비, 전선값 및 기타 비용을 합쳐 지불하고 나면 크게 신경 쓸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한국전력에서 안전검사를 나오고 확인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사용하면서 생길 문제를 체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테다.


전기증설만 문제였을까? 옛날 건물들이 가진 단점은 정말 많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어딜 가도 있을 문제이기도 하고, 운영과정에서 천천히 풀어낼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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