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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Oct 08. 2021

프로젝트 안암(安岩)

#06-5. 균형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안암국빱

안암의 국밥은 밸런스로 이루어진다. 

비름나물 기름과 등갈비의 기름진 느낌과 육수, 목살의 부드러움과 단맛이 나는 쌀, 여러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보리, 그리고 젓갈 향이 강한 김치까지 균형이 잘 맞아야 음식의 맛이 온전히 느껴지고 내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나는 아직 그냥 했는데 맛있다고 할 능력이 되질 않아 다양한 생각과 설계로 맛의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는다. 그렇다 보니 밸런스가 약간 깨지면 애매한 느낌이 드는 섬세한 음식이 되고, 그 변수는 다양해 매일매일 조절해야 할 것들이 많다. 


농가의 비름나물

여름이 지나가자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약해졌다. 해서 고추의 양을 늘려 매운맛을 내려고 했더니 고추의 풋내 또한 강해지기 시작했고, 그 수분감이 그대로 남아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워졌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순간순간 결정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지만, 직원을 뽑는다고 그 직원이 신뢰도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밥을 먹으면서 쌀의 모양이나 탄력을 느끼고, 단맛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하되 밥이 국 안에서 퍼지지 않길 바라는 입장에서 밥의 수분을 조절하여 가능한 한 밥을 되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누군가에겐 취향이고, 누군가에겐 아니다. 보리 또한 마찬가지. 의견에 생각은 많아지고 수렴을 할지언정 흔들리지 않으려는 기준은 그대로 지켜보려고 한다. 




가오픈 기간 동안 등갈비의 익힘 기준을 만들어두기 위해 온도, 조리시간 등을 조절하면서 육수를 뽑아보고 있다. 고온에서 압력을 받은 등갈비는 연골이 없어지고 뼈가 으스러지기도 하지만 뼈에서 잘 발라지는 장점을 가지게 되고, 보다 낮은 온도에서 익히면 고기의 익힘 정도가 완성형에 가까워지지만 뼈에서 잘 발라지지 않고 뻑뻑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런 장단점을 조절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손님들은 때로 솔직한 자기의 생각을 나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음식은 호불호의 기준이 다양하고 취향을 타기 때문에 손님 개개인의 의견이 전부 수용될 순 없지만, 언젠가 한번 이야기했던 대로 이 공간은 공감과 소통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내가 수용 가능하고 이 가게의 방향성에 맞는 의견은 충분히 고려하곤 한다. 



현재 국밥의 염도는 0.8 정도, 그리고 서비스되는 육수의 온도는 약 75도이다. 그보다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염도계의 오차범위는 0.1 안팎으로 꽤 큰 편이라 지속적으로 맛을 확인해야 한다. 더운 날씨에 서비스하던 육수의 온도와 날씨가 추워졌을 때 육수 온도에 차이를 두어 온도를 좀 더 높이려고 한다. 지금도 조금씩 올려보는 중.

굳이 설계라고 표현하는 것엔 이유가 다 있다. 


육수 온도의 기준이 75도인 것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토렴을 해서 준 밥이 7부 정도 먹기 전엔 불어 터졌단 느낌이 들지 않길 바라는데, 높은 온도의 국밥은 먹기 편하게 식히는 사이에 밥이 불어있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담긴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시원하다는 표현을 쓰는 음식) 나는 너무 뜨거운 음식이 음식 맛을 못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선호하지 않는다. 애써 신경 써 지은 밥을 굳이 그렇게 불려 먹어야 할 이유도 못 찾겠고. 


또 다른 이유는 육수에 있는 단백질의 응고점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끓지 않는 온도에서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지만 애써 손님들한테 설명하진 않았다.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납득한다고 해서 음식이 원하는 만큼 뜨거워지진 않으니까. 나는 그저 그 음식이 너무 차갑다거나 미지근하지 않게, 내가 원하는 온도로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얼마 전 한 인스타 포스팅에서 우리 가게를 매니아틱 하다고 표현했다. 아, 그래서 몇몇 분들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시고 몇몇 분들은 엄청 똥 씹은 표정으로 나가시는구나, 생각했다. 이 가게를 내 입맛에 공감하는 분들이 오시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호불호가 극단적인 가게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하다. 나는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 모두에게 맛있진 않겠지만, 나는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느끼고 있어서 더 묘하다.




확실히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니 다양한 의견이 보인다. 모든 의견을 수렴할 순 없겠지만 그 의견들 또한 우리 가게에 대한 생각이라 최대한 귀담아듣는다. 그러다 공통분모가 발견되면 해결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방걸이와 의자 높이에 대한 의견이 많은데, 가방걸이는 아무리 고민을 해도 어디다 설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의자를 변경하면서 의자 뒤에 걸이를 달 수 있는 방법을 찾든지 해야 할 테다. 의자 높이 역시 마찬가진데, 의자를 마음에 들어 하기도, 매우 불편해하기도 한다. 결국 내 판단일 테지만 이보다 편한 의자로 변경하는 것이 가게에 맞을지도 의문이라, 여전히 고민 중인 내용이기도 하다. 



월동 준비 내용 중 한 가지는 옷걸이 마련인데, 어쩌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철제 옷걸이를 샀다. 매일매일 북적북적한 가게를 위한 준비지만 글쎄..... 필요한 소비 일지는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특별한 문을 가진 음식점이라 다양한 애로사항이 발생하는데, 그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내 나름의 디자인을 하여 문이 가진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디자이너가 아닌지라 센스 있진 않지만, 그래도 가게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우리 가게가 간판도 없고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셔서 노파심에 이런저런 말씀을 남기고 가시는데, 글쎄. 이름을 크게 써둔다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떤 형태일지 기대까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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