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꽃길

by 류혜진

아주 적당한 온도를 지닌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사랑스러운 막내 아들이 앞장서서 뛰어가고 있다. 엊그제까지도 추워서 경량패딩을 입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얇은 봄 점퍼를 입고 나온 것이 새삼 뿌듯할 정도로 즐거운 밤이다.


밤에 거리를 걷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일이다. 밖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도 오전에 잠시 활동할 뿐이다. 내게 있어서 사적인 바깥 활동이란 교회 목장 모임과 사역, 예배뿐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일이 주로 재택근무였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오롯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이라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삶이 참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먹어 변했는지, 아무 일 없이 평안하게 지속되는 삶이 더 행복하다.


아주 적당한 온기를 지닌 밤거리를 걷게 된 것은 교회에서 하는 특별 예배 덕분이다. 교회가 아니면 나를 밖으로 이끌어줄 기회가 별로 없다. 누군가의 강요는 아니었다. 오롯이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와 같은 삶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이 또한 내 삶이고, 누군가는 부러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을 부러워하기에.


팝콘처럼 하얀 벚꽃이 몽글몽글 예쁘게도 피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뛰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한 편의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아름다웠다.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현장에, 이토록 아름다운 삶 속에 내가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꿈결처럼 고운 꽃들 속을 걷는 기분이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더욱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온기를 지닌 봄밤이라니! 그것은 마치 포근한 구름 위를 중력의 방해 없이 바람처럼 흘러가듯 걸어가는 것이라 표현해도 좋을까.


"엄마, 나 행복해"

저만치 뛰어가다 다시 돌아온 아들이 내 팔을 붙들고 매달리며 애교 있게 말했다. 여전히 순수하고 착한 아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귀해 두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문득, '이 아이도 언젠가는 제 형처럼 사춘기가 왔다며 눈을 안 마주치고 방문을 닫아버릴까? 엄마의 말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라 생각하며 듣는 척도 안 하려 할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꼭 좋은 순간, 안 좋은 미래의 일을 상상하는지 또 나쁜 습관이 나와버렸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좋지 않은 생각은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어떠한가. 지금 이렇게 애교스럽게 내 팔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런 날이 오면 오는 대로 치열하게 마주하면 되는 것을.


번쩍번쩍 폭죽이 터지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에서 매일매일 빛나는 삶을 살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이전의 삶이 워낙 조용하고 지루했기에, 화려함을 동경했다. 여행지 또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선호했고, 누군가와 만나는 장소 선정도 화려한 빛이 많은 곳을 좋아했다. 그때는 봄밤, 꽃길을 걷는 아름다움을 몰랐다. 남들보다 작은 키를 감추기 위해 힐을 신고 다녀야 했으니 걷는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일이다. 운동화는 촌스러운 것, 구두는 세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공식처럼 외우고 다녔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운동화 신기를 참 싫어했다. 높은 곳이 힘들면 단화라도 신고 다녔다. 매끈한 구두를 신어야 내가 더 빛나는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러니 오래 걸으면 물집이 잡혔고, 걷는다는 것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운동화가 일상화가 되었다. 허리가 안 좋아진 이유로 운동화가 편해서 신기 시작했는데, 이토록 편한 운동화를 왜 괄시했는지 미안하고 아쉬울 정도이다. 어디든 씩씩하게 걸을 수 있고, 발에 자유를 줄 수 있는 신발이 운동화라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봄밤, 아들과 함께 꽃길을 걸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결론은 행복이다. 부와 명예를 이룬 인생만이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행복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꽃길을 달려가다가 되돌아와 엄마 팔에 매달려 '엄마, 나 행복해'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그래,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것이지. 아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하며 스스로를 토닥여준다.


정말로, 참말로 아름다운 봄밤이다.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그것을 보는 눈이 부족할 뿐이다."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