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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 찰리 Jun 16. 2016

게임 원작 영화의 징크스

영화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과 게임 영화의 흥망성쇄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록타르 오가르! 극장으로 몰려온 오크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 지난 10일 개봉했다.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록타르 오가르(Lok'tar ogar)!"라고 외쳐보자. 객석이 들썩거릴 것이다. 누군가는 '록타르!'라고 따라 외칠 수도 있겠다.


이런 이상한(?) 상황이 가능한 까닭은 이 영화가 전 세계적인 게임 프랜차이즈 '워크래프트' 시리즈에 기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록타르 오가르'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오크족(族)의 언어로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의미다. 오크들끼리 주고받는 간단한 인사말로 의역하자면 '필승!' 정도겠다.


게임 워크래프트는 '스타크래프트'(1998)와 '디아블로'(1996) 시리즈의 제작사로 유명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1994년 내놓은 실시간 전략(RTS) 게임이다. 높은 인기와 완성도로 지금의 블리자드를 있게 만든 시리즈이며, 이름부터가 '우주판 워크래프트'를 표방한 불세출의 걸작 스타크래프트의 기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4년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를 출시해 영역을 넓혔다. 한때 최고 이용자 수 12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나게 흥행하며 수많은 폐인(와우저라고도 한다)을 양산했다. 이밖에도 워크래프트는 소설과 만화, 보드게임 등 다양한 매체로 미디어믹스 전략을 펼치며 방대한 서사시를 구축했다.


워크래프트는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연합세력의 대립하는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안팎으로 갈등과 전쟁과 드라마가 이어진다.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적대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WoW에서는 양 진영이 아예 말이 통하지 않도록 설정했다.

록타르 오가르!
얼라이언스에 영광을!

워크래프트 영화는 흥행을 기대할만한 요소가 많았다. 전현직 1200만명에 달하는 와우저가 '의리로' 극장을 찾아주기만 해도 천만 영화 아닌가. '애인이랑 보러 오면 관객 수는 2배'라고 생각하겠지만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영웅들에게 애인이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버리자.


대부분의 판타지 작품이 그렇듯 워크래프트 역시 오크와 엘프, 드워프 종족이 등장하는 등 '판타지의 창조주' J. R. R 톨킨이 쓴 장편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즉 세계적으로 흥행한 반지의 제왕 영화 시리즈를 통해 '판타지 선행학습'을 완료한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영화판 워크래프트 호재는 많다. 얼마 전 작고한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이자 잇따라 SF 수작('더 문'(2009)과 '소스 코드'(2011))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던칸 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높였다. 또 영화 '데드풀'의 차진 번역으로 이름을 알린 번역가이자 와우저인 황석희가 이번 영화의 번역을 맡아 자막 품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돋보인다.


그러나 '게임 원작 영화는 망한다/별로다' 징크스는 강력했다. 워크래프트 영화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안 좋다. 영화리뷰 모음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는 현재(10일 기준) 신선도 23%로 '썩은 토마토' 상태다. 참고로 망한 영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2011)의 신선도는 26%,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2016)은 27%다. 개봉을 앞둔 '닌자터틀 : 어둠의 히어로'의 신선도는 34%로 워크래프트와 '막하막하의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하지만 평가와는 별개로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판다렌의 대륙) 중국에서의 약진이 놀라운데 개봉일 하루 전날인  전야 관객수 123만 명으로 신기록을 세웠고 개봉 4일 만에 1억 5700만 달러, 제작비에 육박하는 흥행 성적을 냈다. 한국에서는 누적 관객수 77만 명(14일 기준), 미국에선 첫 주 2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블리자드 이놈들 대륙의 힘을 쬐끔만 맛보거라 껄껄

게임 원작 영화는 별로다?

'게임 원작 영화'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눈물과 후회, 충격과 공포로 점철된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보면 1993년작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일본 닌텐도의 명작 게임 '슈퍼 마리오'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로 밥 홉킨스, 데니스 호퍼 등 연기파 배우가 출연하고 당시 주목받던 록키 모튼, 애너벨 얀켈이 감독을 맡았다. 제작비로 4800만달러가 투입됐지만 수입은 2100만 달러에 그쳐 홀랑 망했다.

한국도 만들었다 충격과 공포의 '스트리트파이터 가두쟁패전'

'스트리트 파이터'(1994)도 비교적 초창기 작품이다. 원작은 대전격투 게임의 근간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영화는 원작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명배우 라울 훌리아가 악역으로 출연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시나 고통과 슬픔 밖에 남기지 못한 영화답다. 15년이 지난 뒤 개봉한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2009)도 망했다. 중국인 캐릭터인 춘리를 서양인이 연기했다는 것부터가 팬들의 원성을 샀다. 대전격투 게임의 영화화 성적은 대체적으로 초라한데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영화화한 'DOA'(2006), '철권'(2010), '킹 오브 파이터즈'(2010)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이 원작과의 괴리가 심각했다면 '툼 레이더'(2001)는 원작 팬들이 인정할 정도로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두꺼운 입술과 육감적인 몸매의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편이 망하면서 함께 묻혀버린 케이스. 내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2대 라라 역으로는 스웨덴 출신의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낙점됐다.


공포영화 '사일런트 힐'(2006)은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 원작과는 다른 노선을 걷지만 분위기와 공포감만큼은 동명의 원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원작의 팬은 물론 원작을 모르는 영화 평론가와 공포영화 마니아들도 호평했을 정도. 영화화의 모범 사례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2편은 망했다.

게임 원작 영화 중에는 '게임 원작의 징크스'에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까지 추가돼 후속작에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대머리 암살자의 활약상을 다룬 게임 '히트맨' 시리즈를 영화화한 '히트맨'(2007)은 암살자라며 다 죽이고 다니는 그저 그런 액션영화 정도로 취급 받았지만 흥행성적은 괜찮았던 반면, 리부트 작품 '히트맨 : 에이전트 47'(2015)는 시원하게 망했다. 잔혹 격투게임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모탈컴뱃'은 1995년 폴 W. 앤더슨 감독이 훌륭한 액션과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린 영화화 작품을 선보였으나, 2편에서는 팬도 관객도 외면한 괴작이 돼버렸다. 좀비 호러 장르에서 독보적으로 성공한 프랜차이즈 '바이오 하자드'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레지던트 이블'(2002)이 바로 그것이다. 1편은 나름 평가가 좋았지만 줄줄이 나온 후속편들은 실망스럽다(하지만 B급 액션영화 팬들에겐 사랑받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필자도 전 시리즈를 DVD와 블루레이로 소장 중이다).


실사영화는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파이널 판타지 : 더 스피릿 위딘'(2001)이다. 국내 개봉명은 '파이널 환타지'로 같은 F인데 왜 앞에선 ㅍ이고 뒤에선 ㅎ인지 모를 일이다. 동명의 게임을 제작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올린 일본 게임개발사 스퀘어가 사운을 걸고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비로 무려 170억엔(당시 환율로 약 1700억원)이나 투입했지만 완벽하게 망했다. 이 영화의 실패로 원작 게임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아버지인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회사를 떠나야만 했고, 스퀘어는 회사의 존폐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판 사일런트 힐의 괴물 간호사는 원작초월 넘나 멋진 것

독일 영화의 재앙 우베 볼

게임 원작 영화를 얘기하면서 독일의 영화감독 우베 볼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쓰레기만도 못하다'라는 혹평과 함께 흥행도 쪽박이다. 특히 게임 영화화 판권을 사들여 팬들이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들을 양산해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가 만든 게임 원작 작품들은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2003), '얼론 인 더 다크'(2005), '블러드 레인'(2005), '인 더 네임 오브 더 킹 : 어 던전 시즈 테일'(2006), '포스탈'(2007), '파 크라이'(2008) 등이 있다(많이도 찍었다).

우베 볼은 단순히 게임 팬들을 울린 저질 감독이 아니라 독일 영화계의 재앙이다. 왜냐면 그가 독일 정부가 영화산업의 부흥을 위해 제정했던 세금 감면법(Tax Shelter)을 악용한 탓에 법 자체가 폐지돼 버렸다. 이 법에 따르면 독일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투자액의 절반을 정부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었고, 또 투자금의 100%를 세금 감면액으로 신고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세금으로 추징돼야 하는 돈으로 영화에 투자해, 영화가 망하고 적자가 나도 독일 정부에서 투자금의 50%를 보전해준다는 얘기다. 덕분에 '믿고 망하는 감독' 우베 볼의 영화에 세금 피난처를 찾던 해외 투자자들이 제작비가 몰리게 됐다. 이 같은 '반액보전의 꼼수'는 조금이라도 수익이 나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망해도 제대로 망할 감독이 필요했고, 영화를 발로 찍던 우베 볼이 적역이었다. 결국 우베 볼 단 한 사람 때문에 이 법안은 폐지됐고, 이 제도 덕분에 적극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감독과 제작사들은 우베 볼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베 볼은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아마추어 복싱 선수 경력이 있는 그는 자신의 영화를 비판한 평론가들을 상대로 복싱대회를 열고 상대방 전원을 두들겨 팼다. 자신의 영화를 혹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을 상대로도 "머리를 몇 대 맞으면 내 영화가 좋아질 것"이라며 대결을 신청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100만 명이 서명하면 영화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안타깝게도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왜 그들은 실패했나

게임 원작 영화들은 왜 실패할까. 영화화에 있어 '정공과 우회' 두 가지 방식 모두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계승하는 정공법은 일부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있어도 (록타르!) 일반 관객의 몰입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또 내러티브의 호흡이 다르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몇 십 시간에 걸쳐 스토리를 이해하고 몰입하는 게임과 달리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영화는 체질이 다르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직접 스토리텔링을 경험하는 게임과 외부에서 이야기를 관찰하는 영화의 차이도 리스크다.


원작의 분위기나 설정을 가져오되 영화판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중시하는 '우회' 접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영화에 그쳐 원작 팬도 일반 대중도 모두 외면한 작품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매력적인 콘텐츠다. 콘텐츠에 언제나 목마른 할리우드에서 게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지사다. 게임 역시 자신의 세계관을 대중 곁으로 확장시켜줄 수 있는 미디어 믹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원작의 인기에 기대서 흥행을 노리던 시대는 지났다. 대규모 자본과 할리우드의 전문 인력, 그리고 이름 있는 감독들이 게임 원작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는 걸작이 나오리라.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예고편.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온 코티야르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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