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교과의 본질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체육 교과 이야기
저글링(Juggling)
저글링(juggling) 또는 잡기(雜技)는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위하여 물건을 가지고 잡다한 놀이의 기술이나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저글링(juggling)이라는 용어는 묘기를 부리면서 흥을 돋군다는 뜻의 중세 영어 낱말 jogelen에서 나왔으며, 더 깊숙히 들어가면 고대 프랑스어 jangler에서 나왔다. 더 들어가서 익살을 뜻하는 라틴어 낱말 joculari의 후기 라틴어 형태의 joculare도 있다. - 출처: 위키백과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저글링」이라는 단어는 대다수의 30~40대 체육 교사들에게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유닛의 이름을 의미했다. 저글링이 일부 체육 선생님들로부터 정규 수업에서 실천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며 확산되고는 있었지만,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요약하면, 정규 체육 교과 수업 시간에 저글링을 한다는 것은 체육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학교의 관리자들에게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이다.
런데 갑자기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생들이 체육 수업 시간에 저글링을 하게 되었다. 「저글링」이라는 단어는 2020년 체육 수업 최대의 이슈로 기록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미지의 감염병 바이러스가 찾아왔고, 온라인 개학과 원격수업이라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교실 수업이 온라인 공간의 수업으로 옮겨지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교과 교사들은 부담감을 호소했다. 하지만, 체육 교과 교사들은 부담감이 아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신체활동이 본질인 체육 교과에서 원격 수업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신체활동은 ‘체육’을 타 교과와 구별 지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체육과에서는 신체활동 이 교육의 본질이자 교육의 도구로서 활용된다. 모든 교과는 각 교과의 교육적 도구를 활용하여 교과의 탐구 대상을 분석함으로써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 주변의 세계를 알아가도록 한다. 체육과는 교과의 핵심 본질이자 도구인 ‘신체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2015 개정 체육과 교육과정 ‘체육과의 본질’
신체활동이라 함은 달리기, 뜀뛰기, 던지기, 잡기, 차기, 밀기, 조작하기 등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체육 교과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한다. 신체활동은 그 움직임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공간의 크기가 모두 다르며, 필요한 환경의 특성도 모두 다르다. 따라서 체육 교과는 태생적으로 교과협의회를 통한 모든 학년 모든 교사의 유기적인 수업 설계가 중요하다. 수업 환경, 즉 공간의 세팅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수업의 성패가 달려 있는 교과가 바로 체육 교과 수업인 것이다. 이런 체육 교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전혀 없는 혼자만의 신체활동’을 다루는 원격 수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체육 교사들은 학생들의 거주 공간을 떠올렸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아파트였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가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바로 그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부분의 학생이 살고 있었다. 수 많은 신체활동 중에도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달리기와 뜀뛰기와 같은 이동하는 움직임을 전혀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아파트였다.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4월만 하더라도 등교개학의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학생이 집 인근 공원으로 나가는 것도 걱정스러웠던 분위기였다. 체육 교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신체활동은 체력 운동 중에서도 맨손운동, 그 중에서도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 움직임,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홈트: 홈트레이닝」 밖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교사들은 스쿼트, 플랭크, 런지, 팔굽혀펴기, 다리들어올리기, 스트레칭 등의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운동을 학생들의 입장에서 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타바타운동 만들기와 같은 체력운동을 건강 영역의 신체활동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아마도 전국 대부분의 학생들이 타바타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체육 교과 수업은 일반적으로 한 학기에 3~5 종류의 영역별 신체활동을 학습하고 평가한다. 체력운동 하나만으로는 한 학기 수업을 이끌어나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육상, 체조, 수영, 축구, 농구, 배구, 배드민턴, 탁구 등 전통적인 체육 교과의 핵심 내용 중 대부분의 신체활동은 원격수업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층간 소음의 문제만 없다면 집 안에서 축구공 리프팅도 할 수 있고, 배구 패스 기능 수업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의 거주환경 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글링이 주목받게 되었다.
저글링은 앉아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동 범위가 작았다.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고, 저글링 공도 집에 있는 양말 등을 활용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 상에서도 기록도전 또는 동작도전의 신체활동으로 타당성이 있었다. 체육 교과 원격수업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로 저글링이 선택되는 순간이었다. 놀라운 대한민국 체육교사들은 불과 1~2주의 짧은 시간 안에 저글링을 마스터하고 시범영상을 찍기에 이르렀다. 저글링이라는 운동기능은 예비교사 교육과정 그 어디에도 없었고, 대부분이 생소한 주제였지만, 우리나라 체육 교사들은 이것을 해냈다. 저글링 수업자료의 퀄리티는 날로 높아졌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 수업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어졌고 공유되었다. 정말 대단한 장면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저글링의 경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즉, 기존의 체육 수업에서 좌절을 맛 보았던 학생들과 원래 운동능력이 좋던 학생들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보기에는 매우 어려운 듯한 기술이지만 수영이나 걷기와 마찬가지로 자동화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기술이기도 하였다.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연습을 했고 과제영상도 잘 제출하는 편이었다고 들었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였다. 아니, 진짜 문제는 학교 안에 있었다. 학생들이 집 안에서 체육수업으로 저글링을 하는 모습을 본 학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잘 못하는 모습을 보며, 수행평가 점수를 낮게 받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걱정은 교장, 교감에게 ‘학교에서 서커스를 가르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시정해 달라’는 형태로 전달되었다. 보수성이 강한 관리자의 경우 교육과정에 근거도 없는 것을 가르치다가 받게될 비난과 책임을 걱정하여 체육 교사에게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체육 교과에서 저글링을 가르치는 것에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체육과 교육과정은 학교별로 천차만별인 체육 학습 환경을 고려하여 영역별로 신체활동을 선택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율권을 교사에게 부여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문서 ‘체육과 교육과정’에서는 영역별 신체활동을 ‘예시’로 제공하고 있으며, 예시를 나열한 칸의 마지막은 항상 ‘등’으로 표현하는 개방성을 보여준다.
저글링은 2009개정 교육과정의 여가 활동 영역의 신체활동 예시로 국가교육과정에 명시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일부 교과서에서는 그 내용을 정식으로 포함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2020년 대한민국 체육교육에 「저글링」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일순간에 퍼뜨리며, 체육 수업의 영역을 확장시켜주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의 체육 교과 수업에서도 마치 ‘줄넘기’가 그렇게 된 것처럼 체육 수업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20학년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여름휴가철 이후 갑작스럽게 심각해진 방역 상황은, 2학기 시작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원격수업을 하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원격수업 콘텐츠의 부족이다. 경우에 따라서 1학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원격수업 시 과제활동, 등교 시 수행평가」라는 공식에 '체력운동, 저글링, 줄넘기'를 대입하여 만들어졌던 1학기 체육수업을 그대로 반복하기는 어렵다. 학년과 교육과정을 불문하고 모든 학생이 모두 같은 수업을 받을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체육 교과의 본질을 회복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기반의 수업설계가 어떻게든 이루어져야 한다. 체육 교사들의 고민이 바로 이 것이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체육 교사들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리라 기대한다. 대한민국 체육 교육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