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es Jan 09. 2024

2023년 회고

잃어서  얻는 것

2023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로요. 얻은 것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아이가 태어났고, 게임을 론칭(베타)했고, 회사의 신규 서비스도 론칭(베타)했습니다. 그런데 잃은 것도 많습니다. 게임 개발 하나를 중단했고, 회사의 서비스, 아니 부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원래 회고 같은 건 잘 남기는 타입이 아니지만, 워낙 다사다난했기에 이번에는 회고를 한 번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중심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1. 2년 넘게 개발하던 게임 프로젝트를 접다.


저는 작은 SI업체에서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처음에야 일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부터는, "나도 우리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의 서비스를 만들 여력이 없었죠. 그럼 어쩌겠어요. 직접 개발을 해봐야죠. 그래서 함께 일하던 개발자와 뚝딱하고 앱을 만들었습니다. 너무 즐거웠어요. (서비스에 대해선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네요.)


즐거움도 잠시, 현업에 치여 2년 정도 운영하던 서비스를 방치하게 되었습니다. 인하우스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남는 시간에 외주를 했습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뭔가를 만들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서비스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후로 일련의 과정을 거쳐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과정은 별로 중요치 않으니 생략할래요.


중요한 점은 게임 개발이 참 난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게임엔진에 대한 이해입니다. 기본적으로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작업자들은 게임 엔진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저희는 유니티 3D를 사용했는데요. 새로운 툴 학습에 자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니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맛만 보려 시작했지만, 점차 욕심이 들었습니다. 


2020년 여름. 마침 타이밍 좋게 이직을 하게 되었고, 한 달의 시간이 비었습니다. 이참에 잘 되었다 싶어 대관령에 달방을 하나 구했습니다. 그러고선 유니티 책 한 권을 구입하고, 컴퓨터를 몽땅 들고 달방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한테는 폐관수련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2주를 꼬박하니 책 한 권이 끝났습니다. 덕분에 유니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난관은 3D였습니다. 사실 이다음부터는 모든 과정이 난관입니다. 해보지 않은 일을 배우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3달 정도 후부터는 개발자 동료들을 꼬셔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합니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해온 개발자들이 있었기에 이런 도전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하튼 게임 개발은 저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게임에는 프런트 엔드 개발과 백엔드 개발 방법론과는 또 다른 도전 요소들이 즐비했습니다. 역시 가장 이들에게도 첫 번째 난관은 게임엔진입니다.


그래도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1달 만에 게임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개발되었습니다. 우리는 쾌재를 질렀습니다. "게임 개발도 별거 아니다!!" 그러고서 정확히 2년 후 이 프로젝트는 드롭됩니다.


안녕 커맨드 리전...

6~8가지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3D캐릭터들 30마리. 그리고 이들의 2D 일러스트, 힘겹게 만든 UI, 전투시스템. 스테이지를 만들고, 성장 밸런스를 담당하는 화려한 어드민... 모든 것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들을 만들었고, 전투를 시켰습니다. 물론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게임 개발자들이었다면, 이 전투를 통해 캐릭터가 성장하고, 다음 전투에서 어떤 시련을 겪게 될지, 그리고 다시 그 시련을 견뎠을 때 어떤 재미를 느끼게 할지를 설계했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게임 개발자들이었다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더라도, 이러한 것들에 미련을 가졌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게도, 제대로 되지 못한 게임 개발자였습니다. 2023년 3월,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나서도 한 달 정도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적어도 주 3일은 퇴근 후 4시간을 개발에 때려 박았으니 미련이 안 남는 게 이상합니다.


그런데 더 슬퍼할 수는 없었습니다. 2년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서비스를 만들었더라면 적어도 4개는 론칭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 저야 할 머리가 많습니다. 날아간 시간을 복구해야 했기에 우리 모두 딱 한 달만 슬퍼하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손을 대더라도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2023년 5월 새로운 게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2년 동안 삽질하면서 실력도 늘었을뿐더러, 무엇이 중요한지도 깨달았으니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써먹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처럼 욕심내서 전쟁 RPG 같은 것을 만들게 아니라 간단한 퍼즐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 스타일은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작업하고, 구체적인 보상과 성장에 대한 기획을 했습니다.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부분이 UI였는데요. UI 세팅까지도 제가 담당하기로 하고, 개발자들은 게임의 로직과 기능구현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파이프라인까지 주욱 설계하고 나니까, 프로젝트가 어떤 식으로 개발이 되고 언제쯤 완료될지도 얼추 눈에 보였습니다.


물론 실패했습니다. ㅋ 2023년 중에는 론칭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2023년 80여 명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2024년 3월 전에는 정식 론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습부터 이번 게임 개발까지 따지고 보면 2년이 아니라, 4년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게임이 물론 잘됐으면 좋겠지만, 일단 길고 지루한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들뜬 기분입니다.


개발에 들어간 시간 중 절반은 실패에 사용했습니다. 물리적으로 긴 시간이었기에 참 고통스러웠습니다만, 너무나 값진 실패였습니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전체를 보는 눈을 더 기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이 2년이 없었더라면 퍼즐게임도 론칭하지 못했겠지요. 그래도 이번에 다시 실패한다면... 제대로 된 게임 개발자들이 느꼈을 미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2년 동안 외주를 하거나, 다른 프로젝트를 했으면 스트레스도 안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네요.^^)


조만간 스토어에서 만나요 ❤️


2. 2년 가까이 매달린 회사 프로젝트를 접다.


1번도 접는 거고, 2번도 접는 거네요. 사람이 이렇게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은 그렇기에 2023년 한 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개발 중이던 커머스 솔루션의 개발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커머스를 운영하던 팀은 공중분해되었고, 저와 개발팀만 남아 모회사로 합류하게 됩니다.


게임은 게임대로 안되고, 회사일은 회사일대로 안되니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덕분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같네요.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한동안은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해 볼 시간도 여력도 없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원망감에 절어있기도 했고, 새로운 프로젝트 또한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서야 객관적으로 우리의 실패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패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과 어쩌면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내부적 요인입니다. 대부분의 전자상거래 서비스의 매출 90%는 손에 꼽는 수의 이른바 "히어로 상품"이 견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의 커머스도 이러한 히어로 상품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유지하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2022년 3월 PB 제품을 론칭했는데요. 처음에는 별반응이 없다가 5월의 어느 날 주문이 폭주해 버렸습니다. 수개월간 깔아 둔 바이럴 광고가 터진 것입니다. 히어로 PB 상품이기에 어느 정도의 재고는 확보해 두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기에 추가발주를 통해 부족한 물량을 추가로 확보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생산이 쉬울 리 없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외부적 요인입니다. 우-러전쟁 발발 직후 원자재값이 급상승했기에 기존과 같은 단가로 제품을 생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물건만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인해 제품의 주요 구성품을 수입할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급하게 만든 예약자 명단에는 매일 평균 120명. 많을 땐 400명이 넘는 고객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2달이 지난 7월, 우여곡절 끝에 제품이 입고되었습니다. 스타벅스 쿠폰과 진심 어린 사과를 담은 전화 통화 등의 방법으로 고객에게 마음을 전했지만, 이미 절반이 조금 넘는 고객이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 인지도가 어느 정도 올라온 제품이었기에 매일 50세트 가까이 판매가 되긴 했습니다.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매출이 거의 없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자금은 말라붙기 시작했고, 충분한 재고를 확보할 만큼 추가자금을 투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러전쟁이나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언젠가 이 사업은 중단되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내부요인 때문입니다.


SKU를 감당할 역량대신 쏟아진 물처럼 엎질러진 다양한 카테고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상품들. 데이터 분석이 안 될 때까지 억지로 뜯어고친 어드민,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고자 무리하게 확장한 개발팀 등 내가 어찌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들도 많습니다만... 내가 조금만 더 경험이 많았더라면 싶은 순간들도 돌아보니 많았습니다.


확보된 고객 리스트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으면 어땠을까, 다 망가진 어드민을 빨리 포기하고 신규 플랫폼으로 갈아타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했으면 어땠을까, 커머스 솔루션 기획이 아니라 이 서비스 자체를 완전히 다시 기획해 봤으면 어땠을까? 후회되는 순간들은 그나마 낫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흘러, 부족했던 나의 전문성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순간들을 여러 번 곱씹으며, 커머스 매출구조와 운영 논리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했음에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야지요.


지금 개발 중인 프로젝트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위한 데이터 협업 공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퍼포먼스 마케터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안 작업이나 운영에 필요한 인사이트 도출에도 기여할 일이 생겼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창문 밖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온사이트 마케팅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자,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둘이 열렬하게 상호작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매우 큰데 시장에서 둘의 협업은 그리 활발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나

이런 배경 덕분에 오히려 제가 외부 데이터를 활용한 CRM 운영 방안에 대해 기획을 하고, 고객사의 UX모니터링을 바탕으로 소재 제작의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등 지난날의 부족함을 채울만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3. 1인 창업을 한 것처럼 보낸 1년


회사에서 요구한 것은 프로젝트의 개발이었을 뿐이지만, 제게는 조금 더 많은 게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성취감과 장기적인 비전확보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길어지면 론칭까지 1년 이상 소요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성은 제 머릿속에만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내 업무도구가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SaaS 아닐까요? 우리 회사를 위한 도구로 시작해서 비슷한 업종의 모든 회사가 유용하게 사용할만한 도구를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루한 작업이었을뿐더러 회사를 설득하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벤처인증이나 데이터 사업입니다. 사업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뿐더러, 공인인증을 통한 성취감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둘 다 한 방에 되었네요. 2023년, 매끄럽게 이룬 것은 이 2개뿐인 것 같습니다.




또 뭘 했을까... 피그마 강의를 시작했네요. 회사에서도 피그마 교육을 했고요. '요즘 IT'에 글을 쓰게 되었고.(빨리... 써야지...)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참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2023년은 굉장히 썼습니다. 큰 것을 잃었으니까요. 이 2번의 상실은 여전히 극복 중입니다. 게임도 아직 출시전이고, 새로운 회사 프로젝트도 이제 막 전사에 도입되었을 뿐입니다. 


아직 완전한 극복을 하지 못했음에도, 이를 이겨내기 위해 분투한 과정만으로도 많은 성취감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더 잘되야겠죠! 그러기 위해 눈앞에, 머릿속에 쌓여있는 일들을 보니... 2024년은 아마 2023년 보다 바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잘 되겠죠! 이 글을 본 모든 분들도 2024년 많은 기회를 마주하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