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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Dec 29. 2018

나의 고양이를 행복하게 하는 길

우리집 냥이 몽이 이야기_3

자몽은 언젠가부터 '몽~'이가 되었다.

온 가족 모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몽~"하고 불렀고 혹시라도 그 작은 몸을 밟을까 항상 발끝을 살폈다. 


무더운 여름 끝자락에서 만난 몽이는 그렇게 가을이 되면서 젖병도 떼고 사료를 먹는 냥이가 되었다. 

점프도 하고 털도 부드러워졌으며 이방 저방 안다니는 곳 없이 사고도 쳤다. 빨래를 갤 때면 옷가지 사이로 어찌나 분주하게 뛰어다니는지 아무리 야단을 쳐도 듣질 않았다. 본능적으로 배변을 가릴 줄 알면서도 가끔은 엉뚱한 곳에 오줌을 싸거나 똥을 싸놓아 나를 기겁하게 하기도 했다. 

가구라곤 없던 집에 육지에서 이삿짐이 오면서 이런저런 가구들이 집안에 채워졌다. 짐이 들어오던 날, 그 누구보다 신난 건 몽이였다. 가구마다 신기한 듯 앞발로 만져보고 둘러보고, 올라타고, 숨고 난리도 아니었다. 높아서 못 올라갈 줄 알았던 침대도 몇번의 시도끝에 가뿐하게 올라갔고, 이불 속으로 혼자 파고들어가 쿨쿨 잠을 자곤 했다. 


더위가 물러가고 한없이 화창한 제주의 가을이 왔다. 앞마당 감나무에 몽이를 조심스레 올려놨다. 고양이라면 나무를 탈줄 알테니 어쩌는가 봤다. 처음엔 겨우 나무를 짚고 위태하게 서는가 싶더니 이내 두 앞발에 힘을 주고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어? 얘 좀 봐. 나무 올라간다. "

어느새 윗편 나뭇가지까지 올라간 몽이는 한동안 내려올 줄 몰랐다. 


 

캣타워 따위는 필요없었다.

이후에도 몽이는 현관문만 열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나무위를 순식간에 올랐고 넓은 세상을 감상하듯 제일 높은 곳에서 주변을 바라보곤 했다. 

고양이에게 필요하다는 스크래쳐도 필요 없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마당의 감나무 줄기는 몽이의 스크래쳐가 돼 주었다. 고양이는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잠자는데 쓴다는데 그때의 몽이는 정말 잠이 없었다. 정말 빨랐고, 누구보다 호기심이 왕성했으며, 진짜 장난꾸러기였다. 사람으로 치면 그때 십대가 아니었을까? 


찬바람이 불면서 몽이의 골격도 제법 커졌고 얼굴도 앳된 모습에서 벗어나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들은 날때부터 암수 구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커가면서 생식기의 변화로 구분한다는데 그 전까지 암컷인줄만 알았던 몽이가 수컷이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났다. 집 나간 암컷은 반드시 돌아오지만 발정난 수컷은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린 몽이지만 몇달 후면 발정을 시작할 수 있고 그러면 암컷을 찾아 헤맬거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몽이뿐만 아니라 집사인 우리 가족도 힘들어질 터였다.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던 내 나름의 주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 남자, 여자로서의 성적 욕구가 있고 성인이 되며 그 욕구를 통해 느끼는 쾌락이 있듯이, 또 자손번영의 목표가 있듯이 그 욕구를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필요에 의해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는 것이 어찌보면 잔인한 일처럼 생각됐다. 몽이는 이제 집안에서만 키우는 아이도 아니었고, 여기는 도심의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아니었다. 문만 열면 맘껏 뛰놀수 있는 드넢은 마당이 있고, 오를수 있는 나무가 있고, 뒷마당으로 돌아나가면 옆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동네 길고양이들이 천지인 시골마을이었다. 

처음 몽이를 데리고 올때부터 이런 자연환경에서 맘껏 뛰노는 자연 그대로의 냥이로 키우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몽이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면 몽이든 누구든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었던 몽이를 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중성화 수술이란 것을 시켜야 하는걸까란 고민이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집만 해도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족히 열댓마리는 되는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몽이가 저 고양이들처럼 자라길 원치 않았다. 몽이는 지금처럼 곱고 예쁘고 깨끗하게 자라길 바랐다. 몽이는 수컷이라 직접 새끼를 낳진 않겠지만, 몽이로 인해 다른 암컷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은 또 저렇게 돌아다니고 음식 찌꺼기를 뒤지고 또 다른 새끼를 만들고 그런 악순환을 만들순 없었다. 몽이 역시도 성묘가 되고 발정이 나면 집을 나갈거고 결국 돌아오지 않으면 저 길고양이들처럼 먹을 것과 잠잘곳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고양이가 될 터였다. 몽이를 위해서도, 또 너무나 쉽게 불어나고 사라지는 길고양이들을 위해서도 중성화 수술은 피할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예방접종때도 잔뜩 얼어 힘들어했던 몽이를 다시 또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질 않아 이대로 몽이의 성장이 멈춰지길 바라기도 했다. 


 사실 우리동네는 '고양이 마을'이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않아 남편과 나선 산책길 곳곳에서 고양이들을 만났다. 생긴 모습도 가지각색인 이 고양이들은 당췌 사람을 두려워할 줄 몰랐다. 오히려 낯선 우리를 어디서 온 것들이냐는 듯 노려보거나 올테면 와바라란 태세로 아주 가까이 다가갈때까지도 거만하게 바라볼뿐 움직일줄 몰랐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마지못해 귀찮다는 듯이 자리를 피했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금새 제 자리로 돌아와 유유히 낮잠을 청하곤 했다. 한마디로 지들이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라 생각하는 건 확실한 듯 보였다. 그만큼 수가 많기도 했고 길고양이 답지 않게 신수가 훤했다. 도심에서 보던 헐벗고 굶주리고 두려움 가득한 고양이들이 아니었다. 털은 빛이 났고 포동포동 살이 올랐으며 사람을 경계할 줄 몰랐다. 한마디로 험한꼴 당해보지 않은 고양이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따뜻하고 넓은 공터와 마당이 있고, 인심 후한 사람들이 있고, 짝짓기할 고양이들이 있으니 풍요로운 '고양이 마을'이 될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난 몽이를 위해서도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키우는 고양이가 한 마리일 경우 외로움을 많이 탈수 있다 하던데 온 사방이 친구들인 몽이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몽이가 조금 큰 후부터는 따뜻한 날이면 마당에 내놓아 맘껏 뛰어놀게 했고, 그 범위는 점점 늘어나 마당에서 옆집으로 뒷집으로, 더 나아가 길건너 집까지 또 어떤 날은 한참을 불러도 오지 않을만큼 먼 곳까지 구역이 늘어났다. 해는 지는데 불러도 오지 않는 녀석을 기다리며 너무 방목해서 키운건 아닌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지만, 다음날 또다시 문 앞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기다리는 몽이를 보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누가 내게 넌 소중하니 집에만 있으라며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만 허락한다면 그게 진정 나를 위한 것일까? 

불쌍한 열댓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아침 저녁 듬뿍듬뿍 사료를 주며 정작 집에서 키우는 두  마리의 고양이는 집밖에는 일절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옆집 아저씨를 보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넘들의 체념한 눈빛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나의 고양이를 행복하게 하는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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