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학을 전공했다.
우리 학과는 ‘시각디자인’이 아니라 ‘시각디자인학’과라는 점을 강조할 만큼, 깐깐하고 학문적이며 실험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곳이었다. 교수님들은 당근보다는 채찍을 드는 스타일이었고, 크리틱 시간에 칭찬 한마디 듣기도 어려웠다.
학부 시절, 타고난 재능을 가진 선후배들을 보며 나의 평범하고 성실한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성적은 늘 좋았다. 하지만 디자인과에서 성적이 좋다는 건 꼭 칭찬은 아니었다. “잘 놀 줄 알아야 디자인도 잘한다”는 말을 교수님께 직접 듣기도 했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은 파란 머리로 염색도 해보고, 클럽에도 가보고,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도 볼 줄 알아야 진짜 예술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착한 것만 봐서는 세상의 절반밖에 못 본다”던 그 말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반면 나는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과제도 늘 잠을 줄여가며 해냈다. 그런 태도가 디자이너로서 매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교수님의 조언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정말 아꼈기에 해주셨던 말이었음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졸업 작품으로 ‘창조론에 입각한 자연의 패턴’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 교수님들의 반대는 꽤 거셌다. 약을 파는 것 아니냐며 노하신 분도 있었고, “기독교인은 디자이너로 성공하긴 어렵다”고 진지하게 조언하신 분도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디자이너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서론이 조금 길어졌지만, 나는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정체성보다는 디자인의 다른 가능성에 더 마음이 끌렸다. 교수님들도 그걸 아셨기에 더 모질게 말씀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시각적으로 뛰어난 작업들을 보면 감탄하고, 인스타그램에 저장하거나 캡처해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의 삶에 진짜 영향을 주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종교적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계실 때, 나도 초등학생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신호등에 차가 멈춰 서면 거리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동생들을 안고선. 그때 본 광경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아직도 가끔 나에게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너의 디자인은 지금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그래서였는지 자연스럽게 이런 고민들을 했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는 사람을 도울 수는 없을까. 디자이너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당시 나를 붙잡았던 이 고리타분한 질문들은, 되돌아보면 결국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나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성적 덕분인지 삼성 신입 공채에도 합격했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지만, 더 배우고 싶다는 갈증은 늘 있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분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익숙한 Graphic Design과, 낯설지만 궁금했던 Social Design을 동시에 지원했고, 최종적으로는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MICA)에서 Social Design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로망이었던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의 그래픽디자인 석사 최종 면접에 올라간 적도 있다. 학과에서는 혹평을 받았던 내 졸업작품(‘창조론에 입각한 자연의 패턴’)을 RISD 교수님들은 무척 좋아하시며, “왜 이런 작업을 더 하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그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작업은 내가 애정을 가지고, 어려운 과학 분야도 얕게나마 공부해가며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학과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국 졸업 전시에도 올리지 못했다. 탈락 위기를 세 번이나 겪은 끝에, 최종 졸업 심사를 앞두고 깨끗하게 포기했고, 남은 시간 동안 밤을 새워 ‘시각적으로 예쁘고 완성도 있어 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 작품은 심사에 통과되어 전시되는 모습을 보며, 무사히 졸업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묘한 회의감과 아쉬운 실망감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졸업과 동시에 그래픽 디자인에서 조금씩 멀어졌고, 대신 정말 알고 싶었던 소셜디자인이라는 낯선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RISD에 지원했던 건, 학과 분위기 자체가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었고, 세계적인 디자인스쿨인 만큼, 그래픽 디자인 분야 안에서도 내가 원하는 배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곳의 프로그램은 내가 기대하던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MICA 소셜디자인 프로그램에 진학했고, 코로나 시기 동안 우당탕탕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소셜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SVA의 Design for Social Innovation 학과에도 합격했지만, MICA는 Social Design을 독립 학과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었고, 장학금을 받은 점, 그리고 교수님들이 훨씬 더 친근하고 따뜻했던 점이 나의 결정을 이끌었다.
앞으로 이 공간에 소셜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내가 배운 방법론과 사례들을 조금씩 나누려 한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1년이라는 짧은 석사 과정 동안 배운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예전에 교수님께 “어떻게 1년 안에 이 모든 걸 다 배우냐”고 물었을 때, Mike는 이렇게 말했다.
“Eunsoo, I’m still learning.”
맞다. 나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
이 분야는 여전히 새롭고, 또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