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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Nov 24. 2020

우리 등 뒤에 천사가 있으니

미셸 투르니에, 에드아르 부바, <뒷모습>

오래전에 읽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이 있다. 중국의 주자청(주쯔칭)의 글인데, 담백하고 소박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뜻밖의 감동을 준다. 멀리 공부하러 떠나는 자식이 걱정되어 역까지 배웅 나온 아버지가 이것저것 챙겨주다가  귤을 사주려고 비대한 몸으로 철길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 정확히는 그 뒷모습이 자식의 눈으로 그려진다. 다 큰 자식은 주자청  본인이었을 텐데, 이것저것 챙겨주는 아버지의 보살핌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하던 아들은 그 뒷모습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허물어지고  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수필은 꽤 인상 깊었다. 다른 것이 아닌 다 늙은 부모의  ‘뒷모습’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아버지의 뒷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를 인간으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 1학년 때였나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외박을 하고 밤새워 술을 마시고는  첫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던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  6시를 조금 넘었을까. 아버지 또한 나를 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무단 외박에, 술이 덜 깬 몰골에, 다른 사람들은 새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게다가 하필이면 출근하는 아버지를 맞닥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녀오세요....’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찍 오는구나.’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 길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바쁜 아침이라 꾸중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뜻밖의 덤덤한 아버지의 태도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혼이 나지 않아서 이상한 기분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밥벌이를 하러 나가는 한 중년 남자의 고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날 그  뒷모습만큼은 내 부모로서가 아닌,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또렷하게 남은 것을 보면, 인간의 뒷모습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는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서 ‘나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92쪽)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 속 사람들은 정면을 바라보는 일이 드물다. 레이터  자체가 피사체를 향해 직접적인 시선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는 주로 거울과 유리창에 비친 형상을 담거나 인물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담거나, 유리창이라는 매개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피사체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차갑거나 불안하지 않다. 길모퉁이의  세세한 풍경을, 삶을, 사람을 사울 레이터는 그만의 방식으로 느긋하게 읽어 나간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사진작가는 여기 또 한 사람 있다. 에두아르 부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의  사진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많이 포착하고 있다. <뒷모습>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런 사진들만 추려낸 것이라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50장이 넘는 이 빼어난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에두아르 부바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간의  뒷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런 순간이나 피사체를 담고자 애써왔음을 절로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사진에 시(時)와 같은  글귀를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뒷모습을 예찬한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 뒤쪽은 진실이다.’(<뒷모습>, 5쪽) 이 책은 50 여개의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을 통해 바로 그 등 뒤의  진실을 탐색한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부바의 사진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다정하게 속삭이고 또  때로는 웃음을 주며, 어느 땐 숭고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사진 하나하나에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의 글귀들은 더욱  감칠맛이 난다. 기도하느라 수그린 등을 보며 투르니에는 ‘신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랑보다 두려움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둥글게 등을 구부리고, 그 왜소함 속으로 빠져든다.’ 말하고, 패션쇼 의상 모델인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에서는 옷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자기를 희생하고 완전한 헌신을 약속했기에 모질게 혹사당한 몸이 되었던 여자의 고통을 엿본다. 그리고 그 몸이  문득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제 존재와 매력을 회복하는 것을 여자의 뒷모습에서 포착한다. 


바다에 텀벙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는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투르니에가 생각하기에 부자들은 그럴 때 망설임 없이  수영을 한다. ‘수영복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아주 큰 부자들은 완전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수영도 할 줄 아니까.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부끄럼을 타고,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 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에두아르 부바가 어떤  시선과 느낌으로 바다 앞에서 서성이는 남녀를 카메라에 담았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이 해석에 왠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바와 투르니에의 시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노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청춘을 찾으려는 건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묻고, 친구와 다정히 어깨동무한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우정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정에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정의와 지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우정이 피어난다. 우정에는  비밀과 배타적 결속이 있어서 타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을 통해서 그 구체적 본질’을 드러낸다. 한편, 바다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그의 소설 <마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죽은 고기 뭉치요 지방질 창고인 어른들의 엉덩이와 반대로 아이들의 활기찬 엉덩이는 언제나 깨어나 팔딱거리고 때로는 야위고 빈약해 보이지만 어느새 쾌활해져서 천진하게 낙천적, 얼굴처럼 표현적.(미셸 투르니에, <마왕>)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상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엉덩이를 찬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찬미해도 모자랄 것이  엉덩이다. 인간이 지닌 것 중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믿음 가득한, 발에 걷어차이고, 매를 맞아도 보잘것없는 몸  바침이 운명인, 그 모든 것이 찾아와 은신하는 이 두 쪽의 둥그런 물건을 만약 조물주께서 깜빡 잊고 남자 여자에게 달아주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이겠는가’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 엉덩이가 없다면 정말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부바와 투르니에는 이렇게 독자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하게 해 주면서 인간의 뒷모습을 비롯해 조각상, 샹송과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파리의 뒷모습, 창턱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덩치 큰 고양이의 뒷모습 등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아름다움과 때로는 그 빛과  그늘을 재발견하게 해 준다.


부바가 투르니에의 글귀를 읽었다면 아마도, 오, 그게 바로 내 시선이었어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렇군요, 하고 동의와 찬탄을 보냈으리라. 그럴 만큼 사진가와 작가의 궁합은 찰떡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 모음인 <예찬>에도 부바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1974년  4월에 일본으로 함께 떠났는데, ‘일본 기행 수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그들이 함께 보고 느낀 일본 풍경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그 글에서도 투르니에는 부바를 예찬하는 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쓰고 있다. ‘부바가 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서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의 흐린 불빛과 진동 속에서도 훌륭한 사진을 찍어낼 수 있을 만큼 실력자다.’(미셸 투르니에,  <예찬>, 234쪽) 


<뒷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진과 글은 ‘잊혀진 천사’이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어른들. 그 덩치 큰 어른들 틈에서 천사 날개를 단 아이가 자기도 보려고 애를 쓴다. 회색 빛 어른들 사이에서 흰  날개를 지닌 이 아이의 뒷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그래서 정말 천사가 내려온 느낌을 자아낸다. 투르니에는 그 사진에 이렇게  덧붙인다. ‘저들 어른들은 대체 무얼 보고 있기에 저토록 심각한 것일까? 그 무슨 속된 구경거리에 저토록 절박하게 팔려 있기에  저들은 단 하나, 중요한 것을, 잊힌 채 무시당하고 뒷전이 된 이 어린 천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어리석은 즐거움을 좇아 무작정 달리곤 하는가, 우리를 기다리는 천사가 등 뒤에 와 있는데.’



<뒷모습>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진과 글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뒤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남겨두고도 잊고 만다. 마치 등 뒤에  천사가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104쪽)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뒷모습>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또는 그냥 지나친 뒷모습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주는 깨달음을 전하면서 바쁜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어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잊혀진 천사’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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