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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Jan 13. 2021

당신의 글은 왜 그토록 아픈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당신의 글은 아프다. 서걱서걱 부서질 듯 건조하기만 한데 당신의 글은  왜 그다지도 아픈가? 당신의 글은 투박하고 거칠다. 때로는 초등학생이 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당신의 글은 한없이 아프고 참혹하리만치 어두운데도 계속 찾아 읽게 된다. 그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장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나 <어제> <아무튼>과 같은 글을 읽을 때마다 들던 생각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그 작품에 왜 그렇게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는지도 이해할 만했다. 그 책을 읽은 뒤로 나 또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가장 긴 편으로 나머지는 대부분 단편 모음집이거나, 장편이라고 해도 그 분량이 매우  짧다. 그의 글을 마음껏 읽고 싶다는,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던  참에 <문맹>을 읽게 되었다. <문맹> 또한 매우 짧다. 때문에 읽고 난 뒤에도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빚어낸  문장 속에서 한없이 헤엄치고 싶은, 문장 위를 계속 떠다니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삶과 아픔, 그 안에서 비롯된 쓰기와 읽기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의 글이 왜 그토록 아픈지, 그리고 때로는  초등학생이 쓴 듯한 문장임에도 왜 그토록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지.


나는 읽는다. 그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나는 네 살이다. 전쟁이 막 시작됐다. (9쪽)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는 병 아닌 병에 걸린다. 독서라는 불치의 병. ‘아주 어린 나이에, 알아챌  새도 없이, 완전히 우연한 방식으로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이 아고타 크리스토프 또한 그 병으로 인해 비난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독서 병은 대개의 경우 비난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
 “저건 소일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태한 소일거리야.”
 “저건 게으른 거지.”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13쪽)


독서라는 이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은 또한 거의가 무언가를 끼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병 까지 더불어 얻게 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도  예외는 아니다. 읽기와 쓰기는 이때부터 서서히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안식이자 위로가 된다.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 동생을 놀리는 거짓말을 지어내서는 동생을 울리곤 한다. 열네 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의 글쓰기는 더욱 내밀해지고, 고통을 어루만지는 이 세상의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34쪽).


침묵이 강요된 이 시간 동안, 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을 쓰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아무도 읽지 못하게끔 비밀 문자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일기에 나의 불행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를 밤마다 침대에서 소리 죽여 울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적는다. 나는 오빠와  남동생을, 부모님을, 이제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집을 잃었기 때문에 슬프다. 무엇보다 나는 자유를 잃었기 때문에 슬프다. (32쪽)


조국인 헝가리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의 글은 어떤 색채를 지니게 되었을까? 헝가리에서 살아갔더라도 아마 그는 계속해서 글을 썼으리라. 그런데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망명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게 되면서 그의 글은 분명 한없이 어두워진다. 헝가리에서 모국어로 글을 썼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 자신이 고백하듯이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82쪽)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자신이 확신하듯이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그는 글을 썼으리라.

조국을 떠난 망명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 비밀 작문 노트뿐만 아니라 처음 쓴 시들도 놓고 왔으며 그곳에 ‘오빠와 남동생을, 부모님을, 미리 알려주지도 못하고 잘 있으라거나 또 보자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두고’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그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우리는 이곳에 오면서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몰랐지만 틀림없이 이런 것, 활기 없는 작업의 나날들, 조용한 저녁들, 변화도 없고 놀랄 일도 없고 희망도 없는 부동의 삶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89~90쪽)


그 뒤로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는 삶,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그런 삶이 스위스에서 시작된다. 너무 안전해서 오히려 서글픈 삶. 그런 삶 속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시계 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시를 쓴다. 그런 생활에서 나오는 글들이라면  무미건조하고 거칠며 투박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 글에는 뭔가를 간절히 그리는, 노스탤지어가 한없이 묻어 나오는 애잔한 슬픔이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교실과 어머니의 부엌에서 느꼈던 그 냄새들이 한없이 그리워는 그런 글.


아버지의 교실에서는 분필, 잉크, 종이, 고요함, 침묵, 눈(雪)의 냄새가, 여름에도 풍긴다. 어머니의 넓은 부엌에서는 도살된 짐승, 삶은 고기, 우유, 잼, 빵, 젖은 빨래, 아기의 오줌, 부산함, 시끄러움, 여름 열기의 냄새가, 겨울에도 난다. (19쪽)


뜻하지 않게 조국을 떠나 망명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자기 나라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쓰며 살아간 사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53쪽)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이 언어가 그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97쪽)

망명자로서의 경험과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날카로운 펜으로 건조하게 써 내려간 그의 글들은 그 자신이 당한 시련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나 <어제>처럼 때로는 가혹하리만치 절망적이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이 그러했기에 그 세계관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됐으리라. 그런데도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그가 쓴 글들이 한없이 매력적인 까닭은 바로 그 단순하고 명징한 언어로 삶의 고통을, 그 진실을 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맹>에는 그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읽기와 쓰기, 망명자로서의 삶의 기록이 또 한 번 진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글은 또 한 번 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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