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외로움을 느낀다. 내게 외로움은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동반자와 다름없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외로움을 사람이 채워 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것뿐이다. 어릴 때는 내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괜찮다는 말만 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나도 새 옷이 입고 싶고, 가족과 외식 가고 싶고, 생일파티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갖고 싶다'는 말도, '하고 싶다'는 말도 모두 삼켰다.
어쩌면 외로움은 내가 삼켜버린 그 모든 말일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며 깊이 감춰버린 무수한 말들. 그게 오래도록 깊은 구멍을 만들어 냈을지도.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바랐다. 내가 아픈 만큼 나와 함께 아파해 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결을 훑어주는 사람. 그래서 친구와 연인을 찾아다녔지만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는 사람은 없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늘, 누군가를 바랐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함께 있는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멀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외롭다. 곁에 사람이 많을 리도 없다.
심장의 구멍은 때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어렵게 만든다. 함께하는 사람이 얼마나 구멍의 존재를 잊게 만드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다 검은 먹물처럼 깊게 외로움이 스며드는 날이면, 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암에 걸리기 전, 미혼의 삼십 대 후반인 딸이 달가울 리 없는 엄마는 끊임없이 제발 결혼하라는 말을 했다.
“엄마가 잘 살았으면 나도 당연히 결혼하고 싶겠지.”
때로 모진 말로 엄마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면서도 내 심장의 깊은 구멍은 엄마에게 드러내지 못했다. 사실 많이 외롭다는 말을,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게 이제는 두렵다는 말을, 사랑받는 게 어렵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심장의 구멍과 남겨지는 날이 많았다. 메울 길 없는 깊고 어두운 구멍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날도 많았다. 취업을 한 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여행을 가고 물건을 사도, 결국 심장의 구멍은 존재했다. 암에 걸리고 나서야 그 구멍을 내버려 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드디어 묻어둔 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갖고 싶은 게 많았어. 엄마 아빠가 힘들까 봐 말 못 했을 뿐이야.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어. 돈이 들까 봐 숨겼을 뿐이야. 난 그냥 착한 딸이 되고 싶었어. 그래야 했으니까. 누가 알아주면 좋겠어. 누가 구해주면 좋겠어. 누군가가 내 곁을 지켜주면 좋겠어.
어린 내가 우물처럼 깊은 구멍에 빠져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의 감정은 여전하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야 내 목소리를 듣는다. 듣고 듣고 또 들으며, 정체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놓쳐버린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대신 내게 기대하기로 한다.
엄마는 암에 걸린 딸에게 더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혹여 스트레스가 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암을 경험한 내가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친밀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 정도는 가질 수 있게 됐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연락해 온 사람들을 기억한다. 날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혼자서도 괜찮아, 혼자 있고 싶어, 혼자가 더 편해.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사실 친밀한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 필요했다. 사실 다정한 시선은 알고 보면 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내 심장의 구멍을 메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대신, 내게 다가와 준 사람들을 보자. 외로움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대신 누군가의 외로움을 나누어 짊어지자. 나도 누군가가 깊은 어둠에 잠겼을 때, 친밀하게 말 한마디를 건네고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길. 내가 그런 사람이길.
암을 겪는 동안, 나는 드디어 뭍에 착지했다. 천천히, 길동무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망대해를 홀로 떠다니는 대신 함께 걸을 용기. 그게 내가 암을 겪으며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