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걱정이더라

책 보다 알바

by 꽃잎지던날


걱정 하나.


알바를 시작하면서 지금껏 생각지도 못한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음식관리였다. 난 음식이나 식자재가 엄청 잘 상한다는 사실을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직접 쓰레기통에 버리며 몸소 깨달았다.


한 번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어온 적이 있다. 손님들은 고추장찌개를 주문했다. 난 자연스레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와 육수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고, 음식을 다 만들고 나서야 찌개가 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자를 먼저 넣고 예비 조리를 해놨던 찌개 육수가 냉장고에 넣어 놨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무더운 날씨 덕에 쉬어버린 것이었다.

애석하게 쉬어버려 돌이킬 수 없는 찌개를 난 잠시 멍하니 바라만 봤다. 다시 끓이려 해도 20분 이상은 걸리는데….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사람들인가. 여유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에게 20분은 그냥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방법은 사실대로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수밖엔 없었다. 결국 손님들은 가게 문을 나섰다.

난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도, 꿈꾸는 사람도 아닌 그냥 알바였지만 상황을 듣고 돌아서는 손님들을 보며 왠지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따랐다. 아마도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으리라.


이후에도 종종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이나 재료는 종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상했으며 그럴 때마다 매번 정신없는 근무시간이 이어지고는 했다. 그러니 퇴근시간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이거 또 내일 상하는 거 아냐?’란 걱정이, 출근길에는 ‘상했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뒤따르고는 했다.

싱크대에 잔뜩 얼음을 담에 냄비를 통째로 넣어보기도, 냉장고 깊숙이 가장 차가운 곳에 넣어 보기도 했지만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할 음식은 어김없이 상해버렸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이런 홍역을 앓고 나서 내가 얻은 교훈 하나는 우습게도 ‘냉장고는 만능이 아니었다.’라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먹다 남은 음식도 냉장고에 넣기만 하면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가게의 식자재들은 손도 안됐는데 상하는 경우가 있었다.

냉장고에 이상이 있나 싶었지만 그건 냉장고가 이상했던 게 아니라 음식마다 각각의 관리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도 모르고 무작정 냉장고에만 넣었으니 제대로 관리가 될 리 없었다.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건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였다. 벌어질 일이라면 내가 스트레스 받아가며 걱정해도 일은 벌어진다. 지금 당장 걱정해서 내일 상할 음식이 갑자기 신선해지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괜한 걱정으로 쉬는 동안에도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이러한 걱정은 정말로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물론 무책임하게 ‘될 때로 대라’라는 식으로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벌어질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로 인해 ‘지금’을 망치는 일은 잘 못됐다는 것이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앞으로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아닌 혹여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여유였다. 그 정도만으로도 걱정은 충분했다.


아, 참고로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 냉장고 음식은 안 상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엄마가 불철주야 음식관리에 신경을 썼다는 것. 난 그걸 보며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면 안 상한다고 착각했던 것뿐이었다.



걱정 둘.


한 어른이라는 범주에 있는 남자가 내게 말했다.


“요즘 애들은 목표 의식이 없어. 목표를 딱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안 그래?”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계속 말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부모가 고생해 번 돈으로 배 따시게 지내니 걱정이 있어 뭐가 있어? 그러니 꿈도 없는 거야. 자고로 젊었을 때 이것저것 고생하면서 꿈을 키워야 하는데 말야. 나 때는 말이야 당장 먹을 걱정에 못할 일이 없었다고. 근데 요즘 애들은 이 일은 너무 힘들어서 싫고, 저 일은 돈이 적어서 싫다는 거야. 당장 배가 고파봐야 정신 차린다니깐. 너무 걱정이 없어서들 그래. 걱정이.”


……한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요즘에는 먹고살만하잖아. 옛날처럼 먹고살 걱정이 있나 추워서 얼어 죽을 걱정이 있냐. 살만한 거라니깐. 이 정도면.”


잔이 한 바퀴 돌고 나서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요즘 애들은 도전의식이 없어. 이건 뭘 할 생각들이 없다니깐. 취업이 안 되면 노력을 해서 사업을 하던, 공부를 하든지 해야지. 도전의식들이 없으니깐 집에서 놀기나 하는 거라고. 취업 걱정? 그것도 다 자기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지. 걔네들은 진짜 걱정이 뭔지 모른다니깐. 옛날에 비하면 지금 얼마나 살기 좋냐? 안 그래? 취업 안 된다고 징징거리기나 하고.”


……몇 년 어린 후배가 술이 오르자 입을 열었다.


“형. 저는 요즘에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하고 싶은 거 없어?”

“네…. 없어요.”

“그럼 좋아하는 건?”


녀석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글픈 미소였다.


“솔직히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걱정이고 고민이에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어서. 하고 싶은 걸 찾은 사람 보면 참 부러워요.”


그러며 그는 채워진 잔을 비웠다. 잔이 비워질 동안 난 아무런 대답 주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걱정은 누구나 있다. 돈 걱정, 일 걱정, 건강 걱정.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 걱정에 작음은 없다. 걱정의 크기는 본인만 알 수 있다. 그래서 누구도 다른 이의 걱정거리에 대한 고단함을 정의할 수는 없다.


따뜻한 외투가 있는 사람에게 오늘 밤 추위는 작은 걱정거리다. 하지만 외투가 없는 이에게 오늘 밤 추위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세상이 좋아졌다 해서 어찌 꿈을 가질 수도 없었던 아이들의 걱정거리가 작다 말할 수 있을까. 꿈도,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의 걱정도 당장에 먹고살 걱정만큼이나 힘들고 고단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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