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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Apr 01. 2023

거짓 없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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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설가다. 아직 출간을 한 적은 없지만 소설을 쓰고 있으니 소설가다. 투고를 한 적이 없진 않지만 분량을 맞춰달라는 불량한 태도에 원고를 다시 회수한 적이 적지 않다. 글이 막힐 때면 나는 산책을 하거나 냉수 마신다. 한 때 담배도 태워 봤는데 목이 컬컬해서 그만뒀다. 골방의 골초를 더 이상 흉내 낼 수 없어서 한동안 아쉬웠었지. 그래도 안되면 잠을 10 시간씩 자기도 하고 그래도 뭔가가 꺼림칙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으면 나는 나의 기억을 기록해 둔 방에 기어 들어가 어린 내가 써놓은 글들을 들춰보곤 한다. 작품으로 승천하길 바라는 글들이 웅크리고 있기를 바라며 뒤적뒤적 대다 보면 머리가 요상하게 맑아지곤 한다. 요긴하게 써먹은 조각을 찾은 적도 적진 않지만 대체로 허탕을 치기 일쑤다. 그러다가 오늘 나는 아주 낯선 글을 한 뭉치 발견했다. 〈거짓 없는 소설〉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었다. 대강 훑어보고 내가 알아챈 것은 이 글은 내 기억에 전혀 없고 내 사상이나 경험과도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글이라는 사실이다. 종이들은 순서대로 쌓이기 마련이니 아마도 10 년쯤 전에 쓰인 듯한데 아무리 떠올리려 노력해도 당시를 회상할 수가 없다. 별생각 없이 쓴 습작인가? 아니면 훈련용 필사나 모작?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얻을 요량으로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별무소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나 고민이 들기도 했다. 나는 나의 스타일이 오염될까 염려해 글을 쓸 때는 다른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데, 지금 한창 〈노인의 노래〉를 작업하는 와중에 이 글을 자세히 읽어 봐도 될까? 내 기억에 전혀 없는 글을? 리프레시를 위해 들어온 기억의 방에서 오히려 생각이 더 엉켜버렸다. 이 걸리적거리는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은 이 글에 대한 내 기억을 되찾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언제 어떻게 왜 나는 이런 글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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