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질병과 같은 불행은 들이닥친다. 그것은 평온한 잠자리에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든 아이에게 악몽이 찾아드는 것과 같다.
거리에는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즐비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쓰기도 한다. 코로나 19라는 이상한 이름의 폐렴 바이러스가 돌고 나서부터이다. 오묘하게도 어릴 적에 키우던 고양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었다. 따뜻한 금색 털에 녹색 눈동자의 고양이는 (나만큼) 움직이기를 귀찮아했지만 한껏 귀여움을 받던 고양이였다.
그 사랑스러운 고양이도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에 걸려 죽고 말았다. 사람들 마음속에 숨어있는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가족에게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짙은 두려움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져나간다.
내 마음속에도 그런 불안이 있다.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생각해 인생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겠거니 뇌까리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아가기 힘들다. 굳은 믿음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성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지금 당장 일자리만 잃어도 생계 걱정에 앞이 까마득하고, 건강을 잃어버리면 더욱 마음은 그늘진다.
그런 내가 병 때문에 일을 관두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관두기 직전에는 복통이 잦아 큰 병원을 찾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극심한 생리통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걸어 다닐 수가 없어서 1~3일씩 휴가를 쓰곤 했다. 일을 관둘 때쯤 보니 연차 휴가를 남김없이 썼다. 동료들이 잘 배려해준 덕분이었다.
그런 미안함과 고마움 속에서 일을 관두고 집에 들어앉아 생각하니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앞으로 뭐해 먹고사나 생계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작은 통증이 있다. 그래도 일을 쉬면서 많이 나아져서, 수술 없이 몸 안의 혹들을 없애기 위해 자연치유 방법들을 찾고 있다.
나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 촛불을 켜고, 작은 기도대 앞에 앉아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왜냐면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영적으로 가난하거나, 심적으로 가난하거나,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