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 북리뷰: 나답게 살아가는 용기
매일 쏟아지는 복잡한 일상과 무거운 소식들 사이에서 마음 편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나는 좋아하는 지연 영상을 보거나 힐링 브금을 틀어놓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머리가 복잡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어른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리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 때, 우연히 도서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를 만나게 되었다. 마치 내가 필요한 순간에 찾아온 따뜻한 선물 같았다.
작가 소개를 읽는 내내 어딘가 익숙한 감정이 들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그런 동질감만으로도 이미 위로가 되었다.
김유미 작가는 하루 8시간은 직장인, 이외 모든 시간엔 '판다의 시간'을 그리는 화가다. 작은 도전을 꾸준히 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비결이라 믿으며 10년째 매일 퇴근 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출근길마다 퇴사를 꿈꾸면서도 물감을 살 돈을 벌기 위해 기꺼이 일하는 보통의 17년차 직장인이다.
유독 삶이 지치고 외로웠던 2014년 여름, 무엇이라도 의욕을 되찾고 싶어서 취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했지만,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이후 그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하루 8시간을 직장인으로 살지만, 여러 차례 전시회를 거치며 '화가'라는 또 다른 정체성이 굳건해졌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희망을 얻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쉬운 언어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술술 읽히면서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모두 철학과 메시지가 담겨있다. 어른이 되면 아무래도 낭만보다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거대한 현실에 작은 낭만이라도 칠해보면 좋겠다. 인생은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낭만들을 하나씩 채우는 일로 완성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느 보통의 어른처럼 미래를 불안해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참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사소한 용기를 내고 있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전업 화가가 되고 싶어 매일 화실에 출석하고, 자신의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에게 부끄럽지만 다정한 표현을 해보는 작은 용기들로 일상이 조금씩 충만해진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거창한 철학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니어도, 일상의 작은 경험들이 얼마나 소중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글을 읽고 감동 감정들이 몽글몽글해질 때에 맞게 판다 그림이 등장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글에 더욱 몰입하게 하고, 감동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 판다의 그림들을 보고 있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판다가 주는 무해하고 순수한 귀여움, 그리고 자연에서 나오는 평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서 등장하는 판다의 모습. 그곳에서 판다는 여유롭게 앉아있거나 나른하게 누워있으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나를 믿어주는 칭찬과 신뢰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는지 모른다'는 문구에서 판다 두 마리는 서로의 곰손을 맞잡으며 응원을 주고 있다. 혼자 하늘을 날거나 꽃밭에서 배를 타고, 함께 연주를 하거나 캠핑을 가는 등 그림 속 판다는 다양한 모습으로 행복을 실천하고 있다. 처음 봤을 때는 판다의 귀여움에 반하겠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묵묵히 인생을 즐기는 판다의 용맹스러움과 유쾌한 자긍심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판다들이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판다가 마치 내가 된 듯하다. 판다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림들이 너무 포근해서 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실제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내 존재 자체를 응원하는 용기', '지치고 불안할 때 힘을 주는 용기', '관계에 회의감이 들 때 주는 용기', '실패했을 때 주는 용기', '매일매일을 버텨내는 어른의 용기'의 내용을 다룬다.
작가는 우리 인생을 하나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이고, 매일이 내 인생을 연출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직업을 가질 것이다"라고 스포일러를 유출했으니, 허위광고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씬을 산다는 말이 감명 깊었다.
"내 인생 드라마의 시나리오는 결국 내가 써야 한다. 작가도 나, 감독도 나, 주연 배우도 나. 서투른 작가가 쓴 드라마가 재미가 없거나 의도치 않게 새드엔딩이 되어버릴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음 줄을 써 내려갈 사람은 나뿐인걸."
인생을 이렇게 하나의 커다란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매일매일이 기대된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고, 원치 않든 원하든 매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두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소개팅에서 실패했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행복하기 어려운 시대, 좋아하는 걸 다 따라가야 하고 유행을 모르면 대화에 끼지 못하는 시대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해도, 모두가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괜찮다.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고양이 대신 판다가 좋고, 마라탕보다 팥칼국수, 일본 여행보다 방구석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남다른 취향은 죄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금 느껴졌던 것이 있다. 여행은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며, 거기서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결국 여행은 나의 소중함을 찾으러 떠나는 것임을 나 또한 낯설로 머나면 타지의 해외여행을 하며 느꼈었다.
내가 매일같이 다니는 서울 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우리에겐 똑같은 일상의 풍경인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생각났다. 우리도 똑같이 다른 시선으로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보면 우리의 일상을 여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인상깊었다.
"훌륭한 어른보다 나다운 어른으로"라는 챕터를 끝으로 기분좋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정말 공감되는 고민과 메시지가 가득해, 읽는 내내 '나 앞으로 이렇게 더 살아도 되겠구나' 용기를 얻고 힐링을 받았다. 비슷한 고민거리와 비슷하게 휘청거리지만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누가 알려줘서 배웠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특별하고 존재만으로 소중하다는 걸
당신은 꼭 알았으면 한다.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훌륭한 어른보다는 나다운 어른이 되길 바란다. 판다처럼 천천히, 여유롭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당당하고 완벽한 어른이 되기를 꿈꿨지만, 불안하고 서툰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라도 괜찮다고, 멈추지 않고 오늘을 살아낸 너를 응원한다고 말하는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