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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Aug 16. 2022

우주를 마시는 방법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가수 이승윤이 노래한 철학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든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으로써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혜성처럼 나타나 대중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기에 음악 활동 기간이 짧아서 대중과 인사할 시간이 적었던 건가 생각했지만, 사실 이승윤은 2013년부터 꾸준한 음악 활동을 해왔던 인디 가수이다.





싱어게인에서 이승윤은 자신의 노래가 아닌 커버 곡을 불렀다. 커버 곡으로 표현하는 이승윤의 세계, 이승윤의 언어를 받아들이게 되자 ‘도대체 어떤 음악을 해왔길래 모든 음악을 이승윤화 하는가?’란 기분 좋은 궁금증이 생겼다.


오늘은 이승윤이 그려낸 세계관을 이해하려 했던 흔적을 나눠보려 한다.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이승윤 -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https://youtu.be/6I958xBZjFg


관객들에게 떼창을 가르치며 라이브 카페를 작은 콘서트장으로 만드는 모습과 들릴락 말락 하는 오묘한 가사는 궁금함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결국 직접 찾아 듣게 만들었다.

이승윤의 앨범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게 된 첫 시작이었다.




삶은 원일까
아니면 구일까
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

근데 나는 마름모야
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 그저 변명꾼이야

-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정식 음원을 들어보면 드럼과 일렉 등 밴드의 신나는 연주로 곡은 포문을 연다.


'삶을 구와 원으로 만들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가사는 말장난인 듯, 심오한 의미가 담긴 듯 곡의 시작부터 신선한 충격을 준다. 종교적 가치를 담고 있는 ‘구원’이란 단어를 한 글자씩 떼어 도형으로 접근한 발상의 전환이 기발했다. 동그란 것이 곧 완전한 형태의 삶이라는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가사에서 자신은 둥글지 않은 마름모라고 소개한다. 마름모의 정의는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이다. 꼭짓점이 있기 때문에 수평에 마름모를 놓는다면 마름모는 변을 받침 삼아 자연히 삐뚤게 서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원이나 구는 꼭짓점이 없으며 완전한 대칭이기 때문에 삐뚤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그 자체로 완전한 상태이다.


마름모는 네 개의 길이가 같은 변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도형의 특징을 이용해 자신은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 변명꾼이라고 표현했다. 남다른 디테일의 언어유희와 센스가 돋보이는 가사이다.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삐뚤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름모. 삐뚤게 세상을 바라보며, 삐뚤게 이 가사를 부르고 있는 이승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메타포를 이용한 표현은 숨겨진 의미를 찾는대서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에 재미가 더해지고, 생동감 있게 다가오기에 그의 음악은 신선하다.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
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챘더라면
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
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필자는 고등교육을 자연과학으로 공부한 이과생이다. 비는 지면에 수직으로 떨어진다고 배웠기에, 비가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며칠간 고민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비가 오는 거리를 거닐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었다. 비 내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데, 찰나의 순간 빗줄기가 긴 선으로 보였다.





우리의 눈에는 빗방울이 빠르게 떨어져서 직선처럼 보이지만 사실 빗방울은 동그란 모양이었던 것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중력과 장력 등 여러 요소 때문에 빗방울은 실제로는 원반 모양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 빗방울은 표면장력으로 동그란 모양이다. 동그란 비는 원과 구를 품고 있는 우주로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 온 세상이 직선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마름모는 사실은 비가 동그란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동그라미가 되기라도 결심한 듯 구와 원을 담고 있는 우주를 삼켜버리겠다고 말한다. 결국 우주를 마시는 방법을 담은 노래이다.


여기서 제목과 후렴구를 한글로 표기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우주 like 썸띵 투 드링크"는 ‘마실 것 좀 드릴까요’와 ‘우주는 마시는 것’이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주를 마신다는 곡의 핵심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재미요소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고 완벽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늘 불완전함의 연속이다. 동그라미는 완전한 존재이며 우리가 소망하는 ‘완벽’이다. 반면에 마름모는 삐뚤게 서있고 변명이나 늘어놓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원이 되고 싶은 각진 도형 들일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곧 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마름모가 비의 실체를 깨닫고 원을 자신 안에 들여놓을 방법을 찾았듯이 우리도 사물이나 상황을 내 눈앞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지 말고 실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보는 자만이 동그란 비를 들이 킨 마름모처럼 ‘완벽’에 가까워질 방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들이마신다는 말을 음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일까? 전체적인 락의 느낌이 짙게 배어있어 듣다 보면 힘이 나고 신이 나고 해방감을 느끼게 하여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음악이다.



 

구겨진 하루를   



이승윤 - 구겨진 하루를

https://youtu.be/GCCPDeU_6Nw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 그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얻는다. 그 감정들은 훨훨 날아가 잊히기도 하지만 어떤 날카로운 것들은 마음에 꽂혀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픔으로 남기도 한다.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거짓말이 시들은 어스름에
쉬이 머물던 약속은 먼저 자릴 뜨네요
성에가 낀 창문에 불어 넣은 입김은
생각보다도 금방 식어 버렸죠

- 구겨진 하루를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기억에서 잊히는 이들, 처한 상황으로 하고픈 것을 놓은 이들, 일과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이들, 누군가에게 성의 없는 감정을 받은 이들. 그 누가 되었던지 우리는 ’구겨진 마음’을 펼치지 못한 채 그 마음을 집으로 들고 들어온다. 구겨진 마음으로는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다. 잠에 들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림질이라는 마음의 정리와 위로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묶여있던 감정이 날아가고, 그제야 '내'가 보인다.


남들 앞에서는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며 괜찮은 척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내 마음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거짓으로 새워둔 벽은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의 진심은 남 앞에 세워둔 방패 막을 치워야 직면할 수 있다. 진실을 직면해야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힘든 일에 치인 모든 이들에게 '나도 너처럼 그랬다며. 진심을 보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잘 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노래이다. 각자의 사유로 구겨졌을 마음들에게 이 노래가 닿아서 조금이라도 다림질이 됐으면 좋겠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승윤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철학적이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듯한 함축된 가사와 메타포를 사용한 표현들이 사방에 깔려있다. 시 같은 가사를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름답고 사유가 깊은 문장을 오래 곱씹고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어서 기분 좋게 고민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승윤의 가사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자칭 언어유희 장인으로서 말장난인 듯 운율인 듯 재치 있는 가사는 음악이 끝난 후에도 웃음을 가득 머금게 했다.

 

이것저것 나열하긴 했지만 이승윤 노래의 결론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이승윤에게 있어서 철학은 ‘인생은 하나도 모르겠음’이라고 한다. 철학 책들을 읽어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긴 시기 동안 세대를 교체하며 많은 종이와 잉크를 소비하면서 '인생을 1도 모르겠음'을 적어놓은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도 모르겠는 것을 표현한 것'이 자신의 노래라고 한다. 답이 없는 것을 사유해나가는 과정이 이승윤 음악의 매력이다.


정답이 없지만 정답에 다가가는 우주를 품은 마름모처럼 상황을 직시하며 주어진 질문에 고민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없을지언정 '구'와 '원'이 되어가는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새로운 파트의 문을 열 힘을 얻고 싶다면 이승윤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보라.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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