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속 자유를 갈망하는 여인들의 이야기
무대 위 일렬로 줄 세워진 의자 그리고 한 켤레씩 놓인 검은 구두. 극이 시작되자 여성들은 의자에 앉아 각자 몸을 풀고 구두를 신는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박자에 박수와 발장단을 맞춘다. 강한 포스의 베르나르다 알바가 등장하고 그들은 모두 그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인다.
스페인 전통 춤 플라멩코의 격정적인 리듬은 긴장감과 강렬함을 보여준다. 각이 진 전통의 춤, 그리고 비장해 보이는 얼굴은 누군가의 엄격함으로 만들어졌곘거니 생각했다. 이 강렬한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은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지방인 안달루시아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를 급작스레 잃은 베르나르다 알바는 늙은 어머니와 다섯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베르나르다는 안토니오의 재산을 상속받아 관리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죽은 남편의 8년 상을 치르며 가족들에게 절제된 삶을 강요하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할 정도로 감시하고 통제한다.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던 안토니오가 죽자, 베르나르다는 남편이 앉아있던 의자를 붙잡고 잠시 슬퍼하지만 곧 자신이 그 자리에 앉는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때부터 남편 그 자체가 되었다. 그녀는 가족을 통제하고 엄격한 가장이 됨으로써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가부장의 틀 안에 가둔다.
다섯 자매는 권위적인 베르나르다의 감시 안에 살아간다. 집 안에 갇혀 바느질을 해야 했고, 매일 같은 검은 옷을 입어야 했으며 남자는 물론 주민들과의 소통까지도 하지 못했다. 베르나르다의 집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문제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갈등과 대립,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권위적인 엄마가 있다 한들, 개인의 욕망까지 통제할 순 없었다. 모래는 손에 꽉 쥘수록 더 많이 새어나오듯이, 욕망이 꿈틀거리는 젊은 딸들은 강한 통제 안에서 정열적인 감정들이 피어 나오고 있었다.
인간 고유의 감정인 사랑으로 자매는 대립에 빠지게 된다. 첫째 딸의 약혼 상대로 정해진 빼빼는 첫째를 사랑하지 않았다. 다른 동생들은 매력적인 그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늘어났고 그 동생들 중 가장 아름다운 막내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매들은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며 갈등이 계속되지만 베르나르다 알바는 아랑곳 않고 계속된 억압이 이어지고, 이들은 파국을 맞게 된다.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던 막내 아델라. 아델라는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을 때 초록 드레스를 들고 이곳을 꼭 벗어날 거라며 자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아델라와 빼뺴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모두에게 밝혀지던 날, 그녀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이곳을 금방이라도 날아 떠나갈 하얀 새 같은 그녀는 가족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전부 다 죄수 같아!' 이 집에 갇혀서 한 사람의 통제 속에서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외친 것이다. 욕망은 결국은 터져 나왔고, 대립은 절정에 치달았다.
알바는 무엇을 위해 직접 그 의자에 앉은 것일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남편의 역할을 자처하고 가부장의 모습이 된 것일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딸들을 가둔 것일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가문의 명성을 의해서?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간 남편의 권력에 숨죽이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음에도 남편이 만들어놓은 가부장의 틀을, 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편을 위한 인생을 살았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첫째는 죽은 남편에게 탐해졌고, 막내딸 아델라는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베르나르다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체면, 시녀가 그녀에게 몰락을 지켜보겠단 의미심장한 노랫말을 보아 영원한 비밀은 없을 것만 같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했던 행동이 변질되어 결국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베르나르다의 억압은 딸을 죽음으로 내몬다. 베르나르다는 마지막까지 가문의 체면을 위해 막내딸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닫으라 한다.
그럼에도 희망이 보였던 것은 마지막 커튼콜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할 때, 딸들과 시녀들까지 모두 베르나르다 알바를 길게 응시하고 퇴장한다는 것이었다. 욕망은 이미 한번 터져 나왔고, 반항의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베르나르다 알바의 가족은 각자의 자유를 찾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