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오브 럭셔리 Art of Luxury> 전시 리뷰
럭셔리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흔히들 명품, 혹은 고급스럽고 값비싼 물건을 떠올릴 것이다.
필자 또한 그러한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전적으로 럭셔리(luxury)는 풍요를 뜻하는 라틴어 '럭수스(Luxus)'에서 파생되어 17세기 이후 사치를 의미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호화로운 사치품이자 뜻밖의 호사, 명품과 동의어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혹자는 럭셔리를 '지속적인 압박감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처럼 럭셔리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아트 오브 럭셔리 Art of Luxury> 전시는 이러한 럭셔리를 예술 작품을 통해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그 가변적인 의미와 본질을 탐구하는 장을 마련한다. 전시는 럭셔리가 지닌 화려한 외면의 물질성뿐 아니라, 시간이나 경험과 같은 희소성 있는 가치까지 그 영역으로 확장하여 바라본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2025년 1월 18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아트 오브 럭셔리> 전시는 서울미술관과 R.LUX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미술품을 통해 럭셔리의 본질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폭넓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예술 작품 26점을 통해 관객에게 럭셔리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럭셔리의 물질적 특성을 탐색하는 'Material Luxury', 정신적 특성을 조명하는 'Spiritual Luxury'와 'Timeless Luxury', 그리고 R.LUX가 기획한 몰입형 공간 'Inspiring Luxury'로 이루어져 다채로운 럭셔리의 속성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Inspiring Luxury' 섹션은 내추럴 스웨디시 브랜드 '라부르켓'의 히노키 향으로 공간을 채우고,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통해 시각과 후각을 아우르는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며, 향후 메모파리, 엑스니힐로 등 다른 럭셔리 향수 브랜드와의 협업도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앤디 워홀, 쿠사마 야요이, 김환기, 이우환 등 국제적인 예술가 18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Pumpkin]은 그녀의 상징적인 반복과 증식의 미학을 보여준다. 호박이라는 일상적 소재는 그녀의 손을 거쳐 강렬한 에너지와 독창성을 지닌 예술작품으로 변모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정교하고 창조적인 럭셔리의 일면과 맞닿아 있다.
앤디 워홀 (Andy Warhol):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Flowers]는 상업 인쇄물의 기법으로 제작되어 대량생산과 소비문화의 아이콘을 예술의 반열에 올린 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며 럭셔리의 상업적 측면과 대중성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이우환 (LEE Ufan): 동양적 사유와 미니멀리즘을 결합한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 From Line>(1978)는 캔버스에 파란색 선들을 위에서 아래로 반복적으로 그어 내리며 행위의 본질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선명한 푸른색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옅어지며 사라지는데, 이는 마음을 비우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정신성은 물질을 넘어선 럭셔리의 또 다른 차원을 제시한다.
곽인식 (QUAC Insik): 물질의 존재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던 곽인식의 <Work 88-LW>는 일본 전통 종이인 화지 위에 작은 타원형의 형태를 연속적으로 중첩한 채묵작업이다. 흡습성이 좋은 화지를 사용하여 물감이 번지는 효과가 극대화된 반투명의 색점들은 농담의 변화에 따라 깊이감과 신비로운 화면을 연출한다.
큐레이팅의 특별함 중 하나는 특정 작품에 '마스터피스' 표시를 해둠으로써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집중도를 높인 점이다. 이러한 큐레이팅은 방대한 작품들 사이에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김환기 (KIM Whanki): 이번 전시에서 '스페셜 마스터피스'로 조명되는 김환기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국 고유의 미감과 정서를 서양의 조형 언어와 조화롭게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이 일본의 전위적 추상미술 그룹이었던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에는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그룹 '신사실파'를 결성하며 한국 모더니즘 운동을 이끌었다. 서울, 도쿄, 파리, 뉴욕 등 여러 도시에서 머무르며 작업 활동을 펼쳤으며, 이는 그의 작품 시기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본 전시에 출품된 <아침의 메아리 04-VIII-65>)는 그의 회화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작품 제목의 '04-VIII-65'는 이 작품이 1965년 8월 4일에 그려지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형상이 점차 사라지고, 옅은 채색이 두드러지는 평면적인 화면 위로 다채로운 색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침의 메아리> 속 네모난 테두리 안에 그려진 색점들은 밤하늘의 별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깊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이 작품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마치 소리가 들리는 듯한 청각적 심상까지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특성이 두드러져, 관람객에게 더욱 풍부한 감상 경험을 제공한다. 그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절제된 조형 언어 속에 우주적 깊이와 서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Timeless Luxury' 섹션에서 선보이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백색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곡선, 좌우 비대칭의 자연스러움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선의 아우라는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 달항아리는 상부와 하부를 각각 따로 제작하여 접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가운데 부분이 자연스럽게 틀어진 것이 특징인데, 왜 백자 달항아리가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칭송받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현대 도예가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달항아리와 팔각호 역시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적 미감을 불어넣은 수작들이었다.
손석 작가의 작품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지각적 유희와 참여를 유도한다. 과학적 원리를 예술에 접목했던 빅토르 바자렐리의 옵아트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반복되는 선, 느린 호흡, 절제된 터치. 최근에는 이처럼 수행하듯 그려낸 작업들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화려함보다는 절제와 반복 속에서 작가가 마주했을 법한 시간과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들은 오히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우환, 김환기, 곽인식 작가의 작품들이 그러한 감흥을 주었다.
<아트 오브 럭셔리>전은 서울미술관 본관 3층 제2전시실에서 진행되며, 관람객들은 이 전시와 더불어 서울미술관의 다른 전시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2층에서 진행 중인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대가들의 걸작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신사임당부터 이우환,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천경자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작품과 더불어 예술가들이 직접 쓴 편지와 글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우환의 <Dialogue>와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가 최초로 공개되어 특별한 예술경험을 선사한다. 한국미술사 속 거장의 작품과 함께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글과 편지를 통해, 역사 속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을 탐구하고 작품에 시대정신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던 예술가들의 일상의 기쁨과 슬픔, 고뇌와 번민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흔히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는 예술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느꼈을 인생의 희로애락이 예술작품과 글 속에 스며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예술이 결국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며, 예술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서울미술관에서는 작고 사소한 존재에 깃든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일본의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의 개인전 <사란란>도 진행 중이다.
초기작인 <미라이짱>, <명성>, 그리고 서울의 모습을 다룬 신작 <사란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이다. 작가는 한국어 중 '사랑'과 '사람'이라는 단어가 가장 좋다고 하며,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는 두 단어 모두 '사란'으로 들리는 데서 착안하여 전시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연인의 사랑, 다양한 사랑의 형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그리운 마음이 절로 떠오르는 레트로 감성 가득한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특히 세상 모든 힘듦을 잠시 잊게 만드는 '미라이짱'의 귀여운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 전시는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자세한 후기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0011sohee/223887656354
이 외에도 도심 속 비밀정원으로 불리는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石坡亭)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풍성한 문화예술 경험을 할 수 있다. 서울미술관은 매일 오후 3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장에서 무료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한다.
이번 <아트 오브 럭셔리> 전시는 현대미술과 럭셔리의 만남을 통해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도이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미술관에서 더 많은 관람객이 예술을 친근하게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R.LUX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R.LUX가 추구하는 럭셔리의 다면적 본질과 그 속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