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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밭에선, 토끼를 마시지요

<<소주>> Tokki

by 빛나는

동생이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임신을 했다. 열 달 후에 아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식구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때,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우리 가족 중에 나와 엄마만 토끼띠였다. 그런데 토끼띠 제부가 들어오더니, 또 아이가 토끼해에 태어나서 갑자기 집안이 토끼밭이 되어버렸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우리는 깔깔 웃으며 토끼라는 동물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토끼띠는 대부분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로의 인생 전반을 훑어본 결과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특히, 다른 동물 띠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번엔 돼지띠인 내 남편이 말했다. 토끼가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커다란 이빨로 보이는 건 모조리 뜯어먹는 생태계의 무법자라고 했다. 가정집 전선까지도 건드려 인간의 삶에도 불편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음, 이 말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는 좀 불같아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고. 토끼들이 성을 냈다.


토끼라는 주제를 가지고 반나절을 떠들었다. 오랜만에 똘기와 떵이까지 소환했다. 꾸러기수비대 주제곡을 기억하는 몇 명이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몇 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더니 금세 출출해졌다. 주전부리를 사러 간 마트에서 운명처럼 발견한 소주, 토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브랜드 이름인 'tokki'는 창업자가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살려 만든 술이라 했다. 특히 그는 소주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본국에서 초록병만 판매되는 게 아쉬워 자신이 직접 양조장을 만들었다고. 로고 일러스트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정보를 찾아본 우리의 열정도 엄청 대단했다. 몇 병 사서 집으로 돌아와 못다 한 사연들을 꺼내며 토끼 술에 젖어 갔다.


며칠이 지나고 제부가 토끼소주 전용 바(bar)를 찾아냈다고 연락을 했다. 당장 예약을 하고 모두 함께 신나서 달려갔다. 다양하게 주조된 술을 맛보고 우리는 또 토끼 삼매경에 빠졌다. 고구마를 함께 넣어 만든 칵테일이 참 맛있었는데, 최근에 검색해 보니 문을 닫은 듯했다. 요즘엔 마트에서도 토끼 술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토끼띠인 우리가 애정을 더 줬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달엔 백방으로 뛰어다녀 토끼소주를 꼭 구해 봐야겠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토끼의 토끼에 의한 토끼를 위한 토끼모임을 다시 주최해야지! 기다려라, 토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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