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가치에 물들면 공해를 뿜어낼 뿐이다.
떡국 먹듯 나이 먹기
권소희 / 소설가
목구멍으로 떡국 넘어가듯 한 살 또 먹었다. 싫다고 반항해봐야 막을 길이 없는, 저절로 얻어져도 달갑지 않는 게 나이 먹기다. 지구 한 바퀴를 돌 만큼 살았건만 나의 인격의 무게는 왜 그리 가벼운지. 무심코 내던진 말로 새해부터 오점을 찍고 말았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나는 새해라는 무대의 커튼을 껄끄럽게 열었다.
올해는 유독 나이를 먹는 게 부담스럽다. 한 해를 거듭할 때마다 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나이와 인격도 따로 놀았다. 나이와 가치는 더더군다나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그릇된 가치에 물들면 공해를 뿜어낼 뿐이다.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데 종교가 한 몫하고 그릇된 문화가 주도한다.
기독교 정신을 앞세운 어느 여성 단체의 건물은 101번 후리웨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확 트인 주방 절경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기도를 하지나 말던가. 봉사를 앞세워 열정 페이를 강요하던 그 단체의 가치관은 예수의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미움을 풀지 않는 사랑은 권력의 방패로 둔갑할 수밖에.
한국의 어느 유명 학원 강사는 대학은 무조건 스카이(SKY)를 가야한다고 했다. SKY란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의 이니셜이다. 학벌위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억지였음에도 솔깃했다. 유명 포털사이트 창립멤버였던 그가 SKY를 강조하는 데는 나름 일리가 있었다. 컴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이 됐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S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란다.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성실함을 증명한 셈이니 검증이 따로 필요 없다며 수험생의 목표는 무조건 스카이여야 한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일단 명문대를 입학을 하고나면 F학점을 받아도 모든 게 용납이 된다는 이론은 듣고 있기가 민망했지만 어쩌겠는가. 스카이에 입학하려면 적어도 반에서 상위 1%에 속해야 들어야 갈 수 있으니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살다보니 이따금 학창시절에 도 닦는 심정으로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던 불성실이 후회로 다가오기도 했다. 부럽다고 따라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은연 중에 명문대 출신이라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볕 좋은 날 퀴퀴한 도서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공부를 했던 성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던 나는 권력에 빌붙어 살았던 일류 대학 출신의 장관, 교수, 법조인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지성인의 몰락은 뱀 껍질 벗겨놓은 듯 추하기만 했다.
촛불과 태극기의 충돌, 사탄과 천사를 앞세운 종교인들의 열렬한 생각들이 뒤엉킨 세상을 눈으로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학벌로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회, 약한 자를 돕겠다면서 복종을 강요하는 봉사단체, 향수에 젖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르신들. 그들도 나처럼 한 살, 또 나이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