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eek Sep 08. 2021

MY 라오지, Aged Chicken 1부

너의 작업실


대학생활 글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 나의 친구, 라오지. 한자를 직역하면 뜻은 늙은 닭인데, 이름이 늙은 닭이 아니라 별명이다. 어떻게 이 친구를 표현할 수 있을까 단어를 생각해 보면, 사랑스럽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랑스러운 이 친구는, 행동 하나하나가 남을 위해 주기에 너무 예쁘다.


격리를 마치고 나를 마중 나왔던 친구가 바로 라오지다. 나이차(밀크 티)를 사들고, 선물까지 준비해서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학교를 일 년 만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했었고,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미대는 3학년이 시작되면 개인 작업실을 주는데, 큰 교실 안에 칸막이가 있어 구역이 나눠어진 곳이다. 라오지는 내 작업실의 바로 옆 이웃인데, 일 년 동안 자기 옆방에 이웃이 없어 쓸쓸했다고 한다. 같이 얘기 나눌 사람, 술 마실 사람이 사람이 없어서(우리 과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이 나랑 라오지뿐이라지). 내 존재의 유무를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니, 또다시 감동했다.


2층으로 나눠진 큰 교실, 계단 위에서 본 나의 작업실.                    초록색 점들이 있는 작품의 방이 라오지 작업실.


내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겠다고 나한테서 뺏어갔는데, 내 성격상 또 그렇게 놔주지 않는다. 그날 우리는 사이좋게 한 손씩 손잡이를 잡고 끌어서 기숙사로 향했다.


이번 학기의 대부분의 시간은 이 친구와 함께 보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을 거 같아 3부로 나누려 한다. 1부는 라오지의 작업실을 다루며,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는 한 사람의 공간이 그 사람을 보여주고 알아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더욱 느끼게 되었다.


원래 이번 마지막 학기 동안 나는 우리 동기들, 총 9명의 작업실을 사진 찍고, 얘기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첩을 만들고자 했었다. 한 사람의 공간이 그 사람을 보여주고 알아갈 수 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동기들을 미대 안에서 보기 어려웠다. 나는 그들을 작업실에서 자주 볼 줄 알았는데, 각자가 보내는 개인적인 시간들이 너무 달랐던 탓일까, 혹은 내 적극성이 떨어졌던 탓일까. 두 명의 작업실만 찍게 되었다. 그래도 어떠한가. 두 명이라도 같이 재미있게 사진 찍고, 얘기도 나누고 놀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나의 이런 계획을 가장 먼저 말해줬던 친구, 또 그 계획에 적극 찬성한 친구 역시 라오지였다. 그래서 나는 너의 작업실부터 먼저 찍기로 했다. 


2021.03.19


정말 엄청난 열정을 가진 에너자이저라고 할까.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친구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손이 쉬지를 않는다. 계속 무언가 계획하고, 그려나가고, 만들어가며 자기 안의 이야기들을 말이 아닌 시각적인 요소로 어떻게 잘 나타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탐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제 한번 나에게 얘기 하기를 자기는 워낙 감성적이고 생각이 많아서 무언가 직접 손으로 해나가야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2021.03.19
2021.03.19
2021.03.19


일부러 밝은 색 물감을 쓰고, 머리 탈을 일일이 꿰매서 만든 다음 거리에서 탈을 쓴 것 모두 이유가 있다.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이 친구 또한 자라오면서 겪어 왔던 환경과 고유 성격, 생각, 습관 등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라오지가 있다. 지금의 라오지가 작품을 표현한 방식들이 그것들을 온전히 보여주었고,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다시 본 작품은 더욱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놨던 라오지 작품의 이유는 개인적인 이야기며, 지금의 라오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라오지가 탈을 써서 거리에  있던 이유,  친구는 문제나 관점을 외부에서부터 찾는 사람이기에, 인간형태가 아닌 사람이 익숙지 않은 형태가 거리로 나왔을  사람들의 반응 알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람이기에 갖게 되는 제도, 관념, 규율 , 다시 말해 외관으로 보이는 요소로 우리가 판단하는 것들이 과연 인간이 아닐 때라면 어떻게 나타나는가. 관찰을 통해 탐구해나가고자 하는 친구이며, 행동으로 보여줬기에 나는  친구를 많이 존경한다.


라오지는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탐구하는 친구인 만큼, 학교 안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주최하며 바쁘게 지냈다. 나는 라오지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같이 다녔고, 그 활동들 속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다. 사진 찍는 행위가 나에게 있어 그 대상을 보다 더 오롯이 볼 수 있게 해 줬으며, 더 깊은 관찰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부에서는 라오지가 그동안 주최했던 활동들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그 속에서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느꼈던 이야기들을 풀어 나갈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