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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10. 2021

MY 라오지, Aged Chicken 2(1) 부

너의 탐구, 너의 시선


네가 계획하고 실천했던 활동들, 정말 대단하다지.


코로나라는 이유로 내가 한국에 머물러 있을 때부터 라오지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새로운 활동들을 계획하고 해나가고 있었다. 첫 번째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활동은 <이사>. 


<이사> , 2020


직접 박스를 이용해 집의 형태를 만들고, 만든 집을 멘 채 현재의 집에서부터 과거의 집까지 걸어갔던 활동이다. 같이 참여할 사람 몇 명을 모아 그들의 현재의 집에서 과거의 집까지의 동선을 동영상으로 담아냈다. 활동의 목적이나 의미는 간단했다. 현재에서 과거의 이동 동선을 직접 걸으며 변화되는 주위 환경들을 느껴보자였다. '걷는다'라는 간단한 행위이지만 그 속에서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라오지가 말하길, 집이라는 것은 나의 공간, 한 집단의 공간이지만, 가족이라는 집단은 스스로가 선택해서 형성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애초의 나의 집이라는 게 있는 걸까?


라오지는 집이라는 공간을 옮겨 다니며 길 위에서 마주하는 순간들과 환경이라는 요소들을 관찰했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움직이며 그 안에서 개인 공간을 얻고자 하며, 그 주위로 형성되는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집을 메고 걷던 라오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한 할아버지가 했던 말, "집을 항상 메고 다니니 집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였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말은 듣고 나니 어쩌면 공간이라는 것은 나에게서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며, 나라는 공간이 내뿜는 에너지가 그 공간을 채워가며 퍼져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라오지는 <이사>라는 활동을 계속 이어서 졸업작품으로 전시했다. 자세한 내용은 3부에서 다룰 예정이며, 라오지는 졸업 이후에도 아마 이 활동을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나갈 거라고 했다. 




두 번째로 이 친구가 계획한 활동은 <식물을 대신 돌봐드립니다!>였다.

매주 목요일 오전, 신청을 받아놓았던 주변 지인들의 식물을 유모차에 실어 학교 안에서 산책을 하던 활동이었다. 라오지가 유모차를 밀면 나는 옆에서 또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2021.03.25

활동의 첫날, 라오지의 기숙사 친구가 식물을 부탁했었다. 처음이어서 그런지 다난했다. 유모차가 자꾸 흔들리는 바람에 식물이 자꾸 넘어지려고 했고, 흙도 여기저기로 떨어져 나갔다. 어쩔  없이 식물에게 끈이라는 안전벨트를 해주었다. 안전벨트, 매우 중요하지.



누군가에게는 식물은 돌봐야 하는 존재로, 누군가에게는 일할 때 치워야 하는 무의미한 존재로.

이 친구의 활동 계기는 이렇다. 왜 항상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기준에서 동물이나 식물을 판별하고 구분 짓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불공평한 거 같다고 했다. 동물 또한 그들의 생각과 규율이 있을 것이며, 식물 또한 입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을 유모차에 실어 산책하는 행위는 식물을 인격으로서 대해야지만 비로소 관계가 공평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나 또한 이 활동을 신청하여 내 식물과 함께 산책했었다.
2021.04.01




2021.04.08


이 식물 친구는 색다른 인연의 친구이다. 우리 작업실은 미대 5층에 위치하는데, 5층을 담당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우리는 매번 그분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의 말도 나누기에 제법 친해졌었다. 특히 라오지랑은 위쳇(중국 연락 앱)도 나눈 사이인데, 지난 학기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더라. 아주머니는 라오지가 위쳇에 올렸던 사진과 광고 덕분에 이 활동을 알았는데, 참여하고 싶으시다고 했다. 이 식물은 아주머니가 미대 복도에 떨어져 있는 줄기 하나를 주워다가 사진에 보이는 만큼 키우셨다. 5층 안쪽 화장실에서 키우셨는데, 내가 자주 가는 화장실이라 자주 마주쳤던 식물 친구이다. 맨날 화장실 창문에서 밖만 보던 친구였다. 그래서 우리 둘은 맨날 창문으로 보았을 미대 뒤편을 식물 친구와 함께 산책했다. 네가 안에서 보았던 세상과 밖에서 직접 느껴보았던 세상은 어때?


그 후 색다른 인연의 친구는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청소하시던 아주머니 분은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고, 떠나기 전 우리에게 새로운 인연을 선물하셨다. 나중에 가능하다면 청소부 아주머니와 있었던 작은 추억거리도 짧게 써 볼 생각이다. 



마지막 식물 친구

앞으로 바빠질 거 같아 마지막으로 같이 산책하기로 한 식물이다. 이 식물 친구를 부탁했던 우리의 또 다른 친구, 내가 후에 글을 쓰게 될 이 친구, 라오지 만만치 않게 엄청나게 사랑스러운 친구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기로 하자. 이름만 살짝 공개하자면, 刁雪 디아오쒜다. 별명은 snowflake, 눈꽃이다.




2021.04.15

같이 산책 나온 식물 친구도 모자라 야생식물 친구들까지 돌보겠다는 라오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때의 나는 계속해서 이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웃겨 뒤집어질 뻔했다. 어쩜 하는 행동들이 하나같이 엉뚱하고 사랑스러운지, 아 벌써 보고 싶다.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하는 중
2021.04.15

디아오쒜는 식물의 입장이 되고 싶다고 해서 아예 풀밭에 그들과 함께 누웠다. 저러고 한동안 있었는데, 전혀 어색함 없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였다. 지켜보고 있었던 나조차 동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다 같이 산책 중




2021.04.15

산책을 거의 다 했을 무렵, 하나둘씩 주워 놓았던 식물들이 유모차를 가득 메웠다. 뭐랄까, 같이 하면 더 즐거워지고 외롭지 않아 거였던가. 아, 이 엉뚱함, 너무 좋다.


한 달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에 다양한 친구들과 산책했던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같이 걸어 다니면서 봄 햇살을 만끽하며, 얘기를 나누고, 잠시 앉아 쉬면서 정적을 나눴던 시간들 속에 '공감'이라는 것이 항상 함께였다.


마지막으로 쓰게 될 라오지의 활동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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