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 베를린
지금쯤이면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인데도 밤처럼 캄캄하다. 천둥번개 소리가 가시자 도로 위 물방울들이 타이어에 마찰하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시차적응 중이라 며칠째 계속 새벽에 눈을 뜨는데 오늘은 꿈에서 베를린에 갔었던 모양인지 가슴에 사무치는 베를린 향기가 아프다. 비가 가져온 향수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여권을 만든 후 간 곳이 바로 독일이다. 그래서 내게는 두 번째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마치 새로 태어난 듯 어린 아이로 돌아가게 만든 완전히 새로운 세팅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들이 되살아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살펴보고 들어보고 배우던 곳. 그래서 아직도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여지껏 자라고 살았던 곳을 떠나 살면 으레 불편했던 점이나 향수병 같은 게 있었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하지만 그런 불편 같은 걸 크게 느낀 적이 없는 나로서는 베를린이 그저 특별한 도시로만 남아있다.
오로지 그 도시의 향수만으로 이렇게 짙을 수 있을까. 이렇게 비가 내리는 아침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감상을 적어도 그 도시를 위한 멋진 시 한 편이 될 것만 같은 그런 그리움의 감정 그 자체 말이다.
내 감각에서 절로 재생하는 몇 년 전의 감각이 글로 과연 생생히 풀어나질까 싶지만 축축하고 서늘하지만 따뜻한 나무 냄새와 담배 냄새가 만들어낸 베를린의 향기를 기억하며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