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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감성
by 카피라이터 둘 Apr 03. 2018

왜 벚꽃은 위험할까

1인용 감성, 13



  생선 가시 같던 가지에 살이 차오른다. 낮의 길이가 바뀌는 것을 알아챈 나무 속 단백질이 꽃을 재촉한다. 이 옅은 분홍빛 살 냄새에 온 땅이 열병에 시달린다. 불필요한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벚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직 연인이라 부를 수 없는 한 쌍의 남녀가 공원 의자에 앉는다. “저기.” “저기요.” 둘이 동시에 외쳐서일까. 벚꽃 한 잎이 놀라 떨어진다. 여자는 남자 손바닥에 내려앉은 꽃잎을 집으며 웃는다. 두 사람 머리 위로 흔들리는 벚꽃 구름. 경고하자면 메타포는 위험하다.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메타포 하나에도 생겨나는 것이 사랑이다.


© KANNOI/Shutterstock


참을 수 없는 벚꽃의 가벼움


  피복이 벗겨진 전선 두 개가 전기적으로 접촉하는 현상을 합선이라고 한다. 접점에 과량의 전류가 흘러 발열이 생기고 심한 경우 화재나 폭발이 일어난다. 손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집을 때 발생한 과량의 전류는 두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로 인해 100일이든 100년이든 모든 사랑에는 수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진지하고 무겁다.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호르몬의 폭풍에 휩쓸린 뗏목처럼 가볍다. 볕을 쬐면 기분 좋아지고, 흐린 날에 우울해지는 이유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탓이다. 봄에 늘어난 일조량은 세로토닌 분비를 왕성하게 한다. 호르몬에 취한 기분에 더불어 접촉으로 두근거리는 가슴. 몸은 마음보다 먼저 사랑을 유추한다.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은 가여울 정도로 가볍다. 하지만 벚꽃에 담긴 사랑의 메타포는 가여울 정도로 무겁다.



우리의 인연은 우연이다


  사랑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 운명론자들은 사랑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이라 상상하며 사랑 없는 삶은 가치 없는 삶이라 믿는다. 하지만 보통 사랑은 운명보다는 우연에 근거한다.


  긴 겨울을 혼자 보낸 남자는 ‘우연히’ 대학 동기와 마주쳤고 여자 친구 없다는 남자의 말에 동기는 어제 회사에서 ‘우연히’ 괜찮은 사람 없냐고 물었던 여자 동료를 떠올린다. 남자가 여자의 연락처를 받은 때가 ‘우연히' 봄이었고 두 번째 만남은 ‘우연히' 여의도 벚꽃 축제 기간이었다. 게다가 다행, 아니 ‘우연히’도 미세먼지 없는 맑은 주말이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 ‘우연히’ 벚꽃 한 잎이 남자의 손바닥에 떨어졌고 그날 처음으로 여자가 웃었다. 그와 그녀의 손이 만나기 위해서는 여섯 개의 우연이 연속해야 했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것은 필연이다. 벚꽃 한 잎이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것은 우연이다. 필연과 달리 우연은 마치 운명의 여신이 분 입김 같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건에 더 많은 우연이 겹칠수록 운명의 존재를 믿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서 보인다고 말한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지금의 벚꽃은 오직 지금뿐


  무겁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가벼움을 참지 못한다. 가벼움에 실망한다면 사랑은 우연이며 존재는 덧없고 인생은 허무하다는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가벼움과 무거움, 우연과 필연 간에 우열은 없다. 무거운 들 어떠하고 가벼운 들 어떠하리. 매년 피는 지겨운 벚꽃이지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처음으로 함께 맞이한 벚꽃은 한 번뿐이다. 이 희소한 가치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몫이다.


  존재는 한없이 가볍고 모든 우연은 무의미할까. 우리는 끝없이 물음을 던진다. 삶의 의미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진정한 사랑에 필요한 우연은 여섯 개의 숫자를 다 맞춰야 하는 로또만큼 기적이다. 당신 곁의 사랑이 진짜라면 로또는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운을 다 쓰지 않았는가.









1인용 감성: 최소행복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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