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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홍 Mar 04. 2019

왜 집밥이 맛있을까

<1인용 감성>



한 달에 두어 번 부모님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그럴 때면 평소에 안 하던, 아니 못하던 일을 한다. 바로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은 조금 특별했다.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 식구라고 부르기 머쓱할 정도의 가족 수이지만 다 같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렵다.


엄마의 어린 시절에는 가족보다 ‘밥 먹는 입’이라는 뜻인 ‘식구’를 많이 썼다고 한다. 예전에는 밥 먹는 입을 세는 일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밥 먹는 입을 걱정할 만큼 출산율이 높지 않다. 게다가 다들 많이 먹어서 안달이지 못 먹어서 안달 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이 예전만큼 쓰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엄마는 식구라는 말을 섬긴다.



책임과 의무


엄마가 없는 날에는 할머니나 아버지가 집밥을 챙겨줬지만 그래도 집밥 하면 엄마가 떠오른다. 예전부터 식구의 끼니를 챙기려는 엄마의 책임감은 대단했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퇴근길에 장을 보고 가족의 밥을 챙겼다.


엄마에게 밥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면 내게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엄마는 나를 오랜 세월 동안 챙겨줘야 할 품 안의 자식이라 생각했는데, 그 아들이 독립하니 헛헛했나 보다. 주말 내내 엄마는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고 마주칠 때마다 물어왔다. 아들의 배를 채워주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윤기 흐르는 갓 지은 밥으로 밥공기는 소복했고, 프라이팬은 평소보다 기름졌다. 거부할 수 없는 엄마의 걱정 덕분에 그 주말은 배부르고 행복했다. 주말 동안 분명 2kg은 불었을 것이다. 부모님 집에 입고 갔던 바지가 그것을 증명했다.



어차피 아는 맛


며칠 배부르고 행복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살이 찐다. 여름이 다가오는데 작년에 입던 티셔츠와 바지가 맞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3kg 정도 몸무게를 줄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먹는 것이 행복이라면 빼는 것은 형벌이다.


다이어트 중이더라도 부모님 집에 가면 점심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저녁을 밀어 넣는다. 종일 누워 있다 평소보다 두 배는 먹어 속이 부대끼지만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계의 격언이라고나 할까. ‘어차피 아는 맛’이라는 말이 있다. 30년 넘게 먹어 온 집밥은 어차피 잘 아는 맛이다. 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다. 집밥은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아는 맛’이라는 것이다.



집밥의 맛


집밥은 세상에서 유일한 맛이자 아마도 태어나 가장 처음 먹은 맛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질 맛이다. 그렇기에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고 싶다. 집밥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이는 부모님을 떠올릴 것이다. 조부모님일 수도 있고, 형제자매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그리고 구체화할 수 있다면 집밥의 모습을 띠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집밥은 몸을 덥히고 마음을 채운다. 잘하든 어설프든 간에 음식의 맛도 그 사람의 일부다. 체취, 목소리, 얼굴처럼 말이다. 주인의 스웨터 위에 웅크리는 강아지처럼 아늑한 밥 앞에 숟가락을 들어본다.



엄마의 된장찌개


집마다 간이 짤 수도 있고 싱거울 수도 있다. 물론 맛이 없을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의 입을 만족시켜야 하는 사 먹는 밥보다 집밥이 맛있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것을 우리는 특별하다고 부른다. 집밥은 더없이 특별하다. 내게 가장 충실하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을 정도로.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사무치게 그리운 그런 날이 있다. 된장찌개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감자볶음이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길쭉하게 채를 썬 감자와 햄을 함께 볶으면 되는 간단한 반찬이다. 햄이 짭조름하기에 소금 간도 필요 없다. 그런데 내가 하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퇴근길에 유난히 허기가 지는 날이면 쌀밥에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를 자작하게 퍼 넣고 감자볶음을 비벼 먹고 싶다. 모쪼록 오래, 오래도록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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