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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홍 Mar 11. 2019

왜 남의 운동을 응원할까

<1인용 감성>



설을 맞아 침대 위에서 연휴 아침의 축복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성빈 경기하니까 나와.”

  참,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이었지. 거실에서 TV를 보던 동생이 보낸 메시지였다.

  “윤성빈이 누구야?”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에 대한 동생의 답장은 차마 책에 옮길 수 없는 문장이었다. 아무튼 동생의 답장을 요약하자면 윤성빈은 스켈레톤 선수였다. 스켈레톤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민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경기조차 단 한 번 본 적이 없는 내가 금시초문인 스켈레톤에 관심을 가질쏘냐. 그나저나 김연아 선수도 이번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10첩 반상처럼 화려하게


스켈레톤 경기를 볼 생각은 없었으나 아침밥은 먹어야겠기에 거실로 나왔다. 차례상에 올렸던 나물로 만든 비빔밥과 육전, 생선전, 산적 그리고 탕국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이 ‘너무’ 많았기에 오히려 고민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수육만 집어 먹었다. 할머니는 매년 제사 음식을 단출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 1년 내내 제사 음식이 냉동실에 들어차 있던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줄기는 했지.


한편 TV에서는 10첩 반상처럼 호화로운 올림픽 중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윤성빈 선수가 출전한 스켈레톤 경기는 이번 올림픽의 수육 같은 종목이었나 보다. 최근 세계 대회에서 1위를 한 윤성빈 선수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동생이 말했다. 3차 시기였다. 어느새 스켈레톤 전문가가 된 동생이 스켈레톤은 이틀 동안 4번의 경기를 펼치고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고 했다.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축구, 야구, 이종 격투기와 비교하면 스켈레톤 경기는 굉장히 새로웠다. 영화 ‘쿨 러닝’에 나왔던 봅슬레이 트랙이 생중계로 눈앞에 펼쳐졌다.



스켈레톤의 현기증


생전 처음 들어본 스켈레톤이란 종목은 스위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스켈레톤, 즉 해골이라는 으스스한 이름은 뼈대만 남긴 것처럼 몹시 간소화된 썰매의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고 시속 128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스켈레톤은 브레이크도 없다고 한다. 머리를 앞으로 내놓은 채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커브를 도는 상상을 하니 현기증이 난다. 자동차로도 그만한 속도를 내본 적이 몇 번 없다.


스켈레톤은 실제로 그 위험성 때문에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첫 번째 스켈레톤 트랙을 만든 것은 130년이 넘었지만,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야 영구 종목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스키와 스노보드보다 사망 사고가 적다고는 하는데 아마 선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2001년에 라트비아 공화국의 한 스켈레톤 국가 대표가 연습 도중 트랙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썰매에 부딪혀 사망한 것이 유일한 공식 사망 기록이다.



스포츠의 아찔함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TV로 스포츠를 즐기는 장점에 직접 경기를 뛸 때의 위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전율을 맛볼 수 있다는 지분이 꽤 차지한다. 상대의 주먹에 맞거나, 공에 국부를 맞거나, 추위에 덜덜 떨 필요 없이 아늑한 방안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스포츠 경기를 뜻하는 게임의 어원이 ‘사냥’인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인간은 원래 사냥의 동물이었다. 스포츠는 억눌려 있던 인간의 야만성을 승화시킨 예술이다. 올림픽, 월드컵 같은 대규모 스포츠 축제는 달리고, 경쟁하고, 때로는 피를 흘리는 사육제다.


스포츠에서 오는 쾌감은 원초적이다. 야만성의 대리 만족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 느끼는 무료함을 날려준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스포츠 관람의 매력이다. 기적 같은 역전극이야말로 스포츠 팬들의 꿈이다.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불확실성이 매력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의 관여가 필요하다. 이런 관여는 국가주의, 지역주의, 집단주의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희미했던 소속감은 외부의 적 앞에 선명해진다.



애국심과 애민 정신


윤성빈 선수의 3차 시기를 보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점심 때쯤이었을까. 마지막 경기가 시작한다는 동생의 메시지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동생에게 애국심도 없느냐며 질타를 받았다. 22개월간 국가에 봉사했고 직장을 얻은 이후 꾸준히 세금을 내고 있지만, 스켈레톤 경기에 바칠 애국심은 없는 것 같다.


그날 오후 뉴스에서 본 윤성빈 선수의 큰절은 사뭇 감동이었다. 영화에 주인공이 필요하듯 스포츠에도 주인공이 필요하다. 스포츠 팬의 종착역은 선수에 대한 애정이다. 선수를 내 자식처럼, 친구처럼 또는 나 자신처럼 느낄 때 역전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이변이 없기를 절실히 바라게 된다. 반짝 흥행이 아닌 대한민국 아이언맨의 안전하고 긴 질주를 기원해본다. 같은 아이언맨 팬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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