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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감성
by 카피라이터 둘 Feb 11. 2018

왜 음식 사진을 찍을까

1인용 감성, 02



  나날이 최저 기온을 고쳐 쓰던 겨울밤, 집에 오니 일본식 냄비 요리가 정성스레 차려져 있었다. 배추와 돼지고기를 한 겹씩 포개어 가운데 표고버섯을 올린 그 요리는 프랑스어로 천 겹의 잎사귀라는 밀푀유와 일본어로 냄비를 뜻하는 나베를 합친, 이름하여 밀푀유 나베였다. 이름만큼이나 놀라운 음식과 정성에 울컥하며 숟가락을 들다 국물보다 먼저 욕을 먹었다.


  그놈의 사진. 스마트폰 카메라는 필기하기 귀찮을 때 쓰는 것이었다. 사진 안 찍냐는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늘 무자비하게 숟가락부터 푹 꽂는다.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 찍기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음식 사진을 찍을까.


그날의 밀푀유 나베


찍자 대 먹자


  음식 대하는 자세는 찍자와 먹자로 갈린다. 찍자와 먹자가 함께 음식 사진 찍는 꼴은 마치 오랜 짝사랑 같다. 한쪽이 애가 타든 말든 아랑곳없다. 먹자로서 안타까운 점은 사진 찍는 때맞춤이 한창 배고플 때라는 것이다. 패스트푸드도 못 기다리는 우리가 파블로프의 개처럼 음식 앞에서 침만 흘려야 한다.


  사진에 너무 공들이면 가장 맛있을 때를 놓친다. 까딱하면 함께 밥 먹어주는 사람도 놓칠 수 있다. 옆자리에서 터지는 플래시와 셔터 소리. 꿈만 같은 저녁이 악몽으로 바뀐다. 하지만 시끄럽게 책장 넘기는 몇몇 때문에 독서가 민폐라고 할 수 없듯, 이는 음식 촬영 자체를 욕할 게 아니라 몇몇 사람의 무개념을 문제 삼아야 한다.



자랑 대 저장


  국립국어원은 먹스타그램을 2014년 신어로 선정했다. #먹스타그램을 검색하면 5천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이런 먹스타그램에 반대하며 사진 금지 푯말을 세우는 셰프들이 생겼다. 사진 보고 요리를 베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스타그램은 일종의 스포일러라고 주장한다. 타지마할을 직접 보고 사진이 낫네 하듯 먹스타그램은 셰프에게 양날의 칼이다. 사진 때문에 식당을 찾아가지만 사진 때문에 감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먹스타그램이 음식 촬영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저장하고 싶은 마음은 뚜렷이 다르다. SNS에 올리지 않더라도 음식 사진 찍고 싶을 때가 있다. 순간을 저장하고 싶은 마음. 사진은 그 순간과 지금을 이어준다.


친구가 찍은 양다리 구이


음식과 기억은 사라진다


  음식이 먹으면 사라지듯 기억은 까먹으면 사라진다. 잃고 싶지 않다면 기록하는 수밖에. 사진으로 맛과 향을 남길 수 없지만 그런데도 찍는 이유는 순간의 감동을 기록하고 싶어서 아닐까.


  우리는 오로라에 감탄하는 여행자처럼 맛보기 힘든 음식 앞에 카메라를 든다. 때로는 한 마디 위로 같은 소박한 밥상을 사진에 담는다. 음식이 아닌 감동을 찍는 것이다.



음식 앞에 네가 있었다


  찍어 놓은 음식 사진을 보며 최근의 여유를 가늠하곤 한다. 추억하고 싶은 하루가 있었다는 사실. 그런대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위안. 카메라보다 숟가락 드는 데 익숙하지만, 음식 사진 찍을 날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날 찍은 밀푀유 나베를 보며 그 겨울밤을 추억한다. 배추에서 우러나온 달금하고 시원한 국물과 레몬 향기 나는 비밀 간장 소스에 찍어 먹던 고기. 몹시 추운 날이었기에 따뜻한 국물이 세포 하나하나 데워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네가 있었다. 냄비를 싹 비운 후에도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분명 시답잖은 얘기였을 테지만.



최소행복 탐구, <1인용 감성>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나라에 맡겨 봅니다.

사소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1인의 감성에서

최소소수의 최소행복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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