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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Dec 13. 2020

I got lost in 2020

 다음 주 다시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 말에 아이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저 기쁜 아이들과 온라인 출석체크가 귀찮다고 짜증 내는 아이들 속에서 누군가 한마디 한다. 올해는 진짜 배운 게 없는 것 같아요.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가슴에 와 꽂힌다. 분명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해였는데 지나고 보니 흔적 없이 사라진 시간들이었다. 꼬깃꼬깃 숨겨두었던 찝찝한 기분이 아이의 말 한마디로 다시 소환된다. 


 얼마 전 친한 선생님이 책 선물을 보내왔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며 이 선생의 감상평이 궁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사 오면서 몇 년 간 한 번도 펼쳐보지 않던 책들을 다 정리하고 나니 책장이 제법 간소해졌다. 그 와중에도 교사라는 사명감은 버릴 수 없었는지 각종 교육 관련 책들은 다이어트를 마친 새 책장에서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밤 선물 받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책장에 새로 꽃으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평소보다 오래, 유독 읽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던 이 책은 왜 나를 불편하게 했나.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이들의 집중하는 눈빛과 이해했다는 표정, 준비한 것을 제대로 쏟아냈을 때의 안도감. 가르칠 맛 나게 하는 아이들의 호응과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10년 차 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 내 밑천이 다 드러날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작되면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즈음 결정한 유학 소식에 사람들은 대단한 용기와 도전이라며 응원해주었지만, 나로서는 부족하고 모자란 실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 떠난 유학길인데 생각해보니 그 중심이 아이들에게 있지 않았다. 오로지 나를 채우는 시간, 나의 실력 향상에만 관심이 있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얻어가는 것에 집중했다. 능력 있는 교사가 되고 싶어 나를 세우는 일에만 급급했던 시간이었다. 탁월한 능력을 갖추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과 함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며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빠진 채 잔기술 습득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일까. 부푼 꿈을 안고 복직한 학교 현장은 절망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르칠 맛 나게 하는 아이들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의무교육은 의무보육이 된 지 오래다. 억지로 앉아있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달래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타협하면서 다시 또 버티는 삶이 시작되었다. 


 나에게도 교사 생활이 차츰 무뎌지고 나태해지는 시기가 왔다. 한때는 배움을 놓지 않으면 그 매너리즘이란 것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주말마다 유명한 강사의 연수를 찾아다니고 교과 연구회에 기웃거리며 교육청 정책 연구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가며 교육의 동향을 살폈다. 나는 노력하는 교사라고 자부하면서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내가 만난 아이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밖으로는 코로나가, 안으로는 자괴감이 3단계 상향조정을 경고하고 있다. 교과서와 펜이 실종된 교실. 수업종과 함께 엎드리는 것이 일상이 된 아이들. 오라니까 왔소만 이제부터는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무언의 압박. 나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그 강력한 차단벽 앞에서 나의 잔기술은 힘을 잃는다. 경력은 숫자에 불과하고 그동안 애썼던 노력들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작가는 강조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수업능력의 향상은, 교사 전문성의 향상은 화려한 언변과 스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 철학적 확신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너무도 공감되는 말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나는 교사로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었던가.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고, 치유와 성장을 통해 궁극적인 삶의 변화를 도모하는 그런 이상적인 교육을 한 번이라도 꿈꾸었던 적이 있었던가. 순수한 열정과 교사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절망하고 비난하며 아무도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않았던가.  


이제 교직 생활의 전환점에 다다랐다. 정년까지는 딱 지나온 시간만큼 남았다. 직업을 가지면 끝날 줄 알았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는 여전히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유의미하기를, 이 갑갑한 환경 속에서도 나의 역할이 있기를 기대하는 욕심 때문에 고민은 깊어지고 생각은 많아진다. 누군가 학교의 다양한 군상을 정의하기를, 다들 추구하는 행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 각자의 가치관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자식 교육이 우선인 교사, 승진이 목표인 교사, 취미생활이 행복의 척도인 교사, 직업적 자부심으로 무장한 교사는 각각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부류의 교사인지 다시 정리할 시점이다. 더 이상의 방황과 혼란을 멈추기 위해. 2021년에는 잃었던 길을 찾아 다시 뚜벅뚜벅 걷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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