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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Jan 07. 2021

언택트 온택트 그러나 컨택트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휴대전화 너머로 짓고 있을 너의 표정을 나는 몰라~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말문이 막혔을 땐 니가 웃는지 우는지 나는 몰라. 몰라 몰라 나는 절대로 몰라~~

11년이나 지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이 노래 가사가 요즘에서야 제 마음에 와 닿아요. 언제든 영상통화가 가능하고 줌으로 화상 수업과 회의가 넘쳐나는 시대에 음성만으로는 너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지금 당장 만나 달라는 이 찌질한 매달림은 그야말로 올드스쿨 아닌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저는 이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노트북 화면 너머로 짓고 있을 아이들의 표정을 도무지 알 수 없거든요. 제가 어떤 말을 할 때 웃는지 우는지 절대 알 수 없죠. 아이들은 출석체크를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5분 전쯤 꾸역꾸역 일어났을 거예요. 그 자리에 누워서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서 핸드폰을 열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실시간 조회"에 참여합니다. 물론 카메라는 끄고 음소거도 해놓고 말이죠. 가끔 텐션 좋은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들은 밤 샘족이에요. 조회가 끝나면 곧 잠들 것 같다고 커밍아웃을 하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어른들도 자신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시간을 계획적으로 살기란 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힘들어도 아침에 일단 일어나서 학교에 등교하면 네시 반까지 오늘 뭐하지 생각하거나 계획할 필요가 없었잖아요. 시간 되면 수업 바뀌고 점심 먹고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아이들은 갑자기 몰아친 자유시간 앞에서 자기 관리 역량을 키우고 자신에게 맞는 학습을 찾아 문제해결력을 높이고 스마트 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미래인재로 거듭나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의 선두주자가 된 거예요. 

 


2020년은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나만 투정 부릴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왔습니다. 교사로서 가장 자괴감을 느끼고 회의감이 들었던 한해였지만 나만 버린 일 년이 아니다, 2021년은 다르게 살아보자 그렇게 다짐하기를 수차례. 한번 발들인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아 지난 연말 제 자신을 향한 감정노동에 좀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다시 찾아오고 새로운 한 해는 다시 시작되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나요. 무방비로 맞이했던 2020년이 무기력의 한해였다면 올해는 반드시 방만했던 몹쓸 나를 지우고 열혈교사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쓸데없이 비장해져 버렸죠.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인데 저는 그 수업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빈 교실에서 수업 영상을 녹화하고 간단한 퀴즈 과제를 첨부하여 매시간 구글 클래스룸에 올렸습니다. 과제 제출을 독려하다가 독촉하다가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점점 지치기는 했지만요. 온라인 수업 기간이 끝나고 어쩌다 만나는 아이들은 수업의 연계성을 헷갈려하더군요.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 영상은 대충 보고 과제만 적당히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죠. 수업 진도에 맞춰 온오프라인 병행수업을 이어왔던 저는 결국 교실 수업을 복습의 무한반복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2학기부터 본격화된 실시간 수업으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대부분 카메라 켜기를 꺼려하다 보니 결국 또 검은 노트북 화면 너머의 아이들의 표정은 절대 알 수 없는 채로 혼자 또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대체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했을까요. 일단 유튜브를 검색하여 온라인 수업의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 여러 선생님들의 수업 성공 사례 영상들을 찾아보고 수업에 유용한 교수학습 방법들을 배워보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능력자 선생님들에게 감탄하는 동시에 환경 탓만 하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고등학교 교과 수업을 보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검색 사례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업이 주를 이뤘던 것이 아쉽더군요. 그리고 영상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모습은 선생님 한 분이 기본으로 노트북 세 대 정도를 놓고 녹음실에서나 보던 마이크도 앞에 한 대 두고.. 유튜버 못지않았죠.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각 소모임에서 과제를 수행하도록 설계하고 그 모습을 동시에 모니터링하는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습니다. 노련하게 수업을 진행하시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이다가도 빈 교실 전전하며 수업 영상 하나 녹음하는 것도 허덕이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또 초라해지려고 하는 순간 정신줄을 확 잡았죠.    


저는 새해가 되면 제가 근무하는 지역교육청의 올해 기본교육계획을 살펴봅니다. 올해는 어떤 정책방향으로 흘러갈지, 새로운 중점 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훑어보면 앞으로 교육의 방향이 이렇겠구나 어림짐작이 됩니다. 몇 년 전부터 미래교육이 화두로 떠올랐지요. 게다가 핵폭풍처럼 밀려와 가장 단기간 교실 수업을 바꾸어놓은 코로나 19 덕분에 이제 우리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학습환경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래교육을 논하는 자리에 온라인 교육은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온라인 교육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무척 공감합니다. 변화의 시대이고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린스마트스쿨이니 ICT기반 스마트 교육 환경이니 하는 미래지향적 청사진이 이끄는대로 저희는 그저 잘 따라가면 되겠지요. 그러나 로봇과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개발만이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일까요?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만은 아닐 겁니다. 저처럼 아이들 지도하고 수업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른,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교사들에게 지금의 학교 현장은 막막하지만 또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할 전쟁터가 되겠지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조금은 외로운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언택트도 온택트도 아닌 컨택트가 필요한 시대예요. 간절히 외쳐보고 싶네요.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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