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지켜줄래? 선생님의 눈가 주름.
예쁘지는 않지만 적당한 눈 크기와 쌍꺼풀, 그리고 인상에 기억될 보조개를 부모님께서 물려주셨다.
분명한 것은 예쁘지 않은데 그것이 잘 조화가 이루어져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는 보조개, 혹은 쌍꺼풀로 기억한다.
다행인 건 그 보조개를 나도 내 아이에게 물려주었고, 역시 우리 둘을 모자 관계로 기억하는 건 이 보조개가 큰 몫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내 인상이 너무 사납고 강하다고 생각되었다.
부드럽고 순하고 야리야리한 이미지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경했다.
어린 시절 늘 나의 헤어스타일을 절대 하루종일 망아지처럼 뛰어다녀도 풀리지 않도록 눈꼬리가 쏴악 올라가게끔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어주시던 엄마 덕에
나의 눈꼬리도 늘 위로 향해있었다.
엄마는 늘 내 머리를 묶어주시면서 “눈꼬리 내리고 있어.”라고 하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높이 솟는 나의 묶음 머리와 반대로 내 눈꼬리를 사정없이 내리곤 했다.
이 올라간 눈꼬리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쳐지면서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자연스러워졌으니
엄마는 내게 쌍꺼풀과 보조개 외에도 적당한 눈꼬리를 이 나이에 유지할 수 있도록 미리 선물을 해 주신 셈이다.
그저 강한 인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늘 “세 보인다, 드세보 인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해입니다. 제가 얼마나 야리야리한 마음의 소유자라고요.’
10년 전 청년성서 공부 ‘마태오’ 연수 중 나눔을 할 때였다.
성경 구절을 읽고 나의 나눔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에 따른 나의 생각, 묵상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직업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교사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옆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그래서 인상이 그렇게 좋았구나. 아이들과 함께해서.”
살면서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도 처음이었지만, 그것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명쾌한 연결 고리도 신선했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인상이 좋다고? 나는 늘 아이들 때문에 인상을 쓰고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랬다. 미간에 생기는 주름도 아이들로 인해 근심이 깊어져 생긴 주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내 눈에는 보이는 그 미간 주름이 신부님 눈에는 안보이셨나 보다.
신기하게도 그 말씀을 듣고 난 뒤부터 나 스스로 내 인상이 적당히 괜찮은 인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거울을 보며 한 번 더 웃는 연습을 하게 되었고, 억지로라도 인상 좋은 듯한 말투도 연습해 본다.
그리고 몇 년쯤 뒤였을까?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밀며
“여기 있습니다.” 했는데
주유소 사장님께서 나를 보시며 “요즘 보기 드문 밝은 인상이시라 저까지 기분이 좋네요.” 하신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리고 백미러로 나를 다시 살펴보았다.
예쁜 얼굴도 아니고, 주름 하나 잡티 하나 없는 고운 피부도 아니지만
적당히 괜찮은 인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이미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가만 보면, 나는 아이들 때문에 근심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로 인해 가장 많이 웃고 에너지를 받는다. 눈가에 맺힌 자글 자글한 주름도 아이들을 보며 많이 웃다 보니 생긴 주름인 것 같아
이제 그러려니 하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제목은 거창하게 인상 좋은 비결의 비밀이라고 했지만
그저 아이들과 가까이 지낸 다는 것이 비밀이라면 비밀인 셈이다.
오늘도 웃는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 장면, 눈빛들을 기억하며 웃어본다.
웃어서 웃게 되는 마법이 통한다.
이제는 선생님이 너희들을 웃게 해 줄게, 너희들의 밝은 미소를 선생님이 책임 질게.라고 마무리 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아이들아, 선생님의 주름과 인상을 조금 더 너희들이 관리해 줄래?”라는 말로 일단 내 인상부터 챙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