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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굼벵이 Sep 03. 2024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2022.11.15.(수)

이날은,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날이었다. 부고를 통해 장례식장에 가기도 하고, 위태롭게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본 적이 여럿 있긴 했지만, 생명의 끈이 끊어지는 그 순간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연세가 많으신 DNR* 환자인 데다 Opti flow**를 최대로 하지 않으면 산소 포화도가 뚝뚝 떨어지는 분이라 곧 떠나실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의식이 없으니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눈을 뜨지 못하니 서로 눈을 맞추어본 적도 없는 환자였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매시간마다 소변줄을 통해 소변이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하고, 정규 시간마다 혈압과 체온을 재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질 때마다 ABGA 검사***를 나가고, 가래를 뽑고, 처방된 약들을 주입하는 것뿐이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인간적인 감정을 교류할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본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DNR [Do Not Resuscitate]: 연명소생술 거부
** Opti flow [Optimal Nasal High Flow Therapy]: 병원에서 사용하는 고유량 산소요법 장비로, 가온 가습 된 산소를 최대 60L/min까지 비강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
*** ABGA [Arterial Blood Gas Analysis] : 동맥혈가스검사. 신체의 산염기 균형과 산소공급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행한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입원 환자가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다음날 다른 과 수술이 잡혀 있는 환자라, DNR 환자에게는 정말 최소한의 간호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후 4시경,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80대로 내려왔고, 환자의 호흡은 더욱 가빠졌다. 가래를 뽑아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환자의 임종이 다가온 것 같다며,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주치의에게 알리고 가족들을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주치의가 와서 ambu bagging*을 했지만 산소포화도가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도 오셔서 더 이상의 처치는 환자를 힘들게 할 뿐이니, ambu bagging을 멈추라고 하셨다.

* Ambu Bag: 응급 상황에서 인공호흡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료장비. 주로 호흡 정지 상황이나 산소가 부족할 때 사용한다.

얼마 뒤, 보호자가 왔다. 곧 돌아가실 것 같으냐는 그의 물음에, 수선생님께서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하셨다. 다른 가족들이 오는 사이 환자의 평소 120 이상을 웃돌던 심박수는 점점 느려지고, 산소포화도는 50대를 맴돌았다. 환자는 그런 상태로 몇 시간 동안이나 겨우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잠시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나도 그 사이 챙기지 못한 다른 환자들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



오후 8시 20분 즈음이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 기록을 넣고 있을 때였다. 마치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듯, 창밖으로는 비가 거세게 내리고 엄청난 소리의 천둥이 울려 퍼졌다. 임종을 목전에 둔 환자가 바로 보이는 자리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께서 환자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죽음 이후의 절차에 대해 조용히 일러주셨다. 당직 의사와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한 후 사망 시간을 기억해서 의사에게 알려주고, 사망 선고를 하고 나면 환자 몸에 있는 관들을 제거한 다음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사망진단서에 있는 환자의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해서 보호자들에게 사망진단서 떼는 방법을 설명하고 ….

8시 32분, 환자의 심장이 멈췄다. 얼마 뒤 보호자가 황망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언제 돌아가셨냐고 물으며, 괜히 밥을 먹으러 갔다고 나직이 내뱉었다. 애써 눈물을 참는 듯한 그의 붉은 눈시울과 곧 돌아가실 노모를 곁에서 지켜보며 더욱 깊어졌을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금 돌아가실 줄 모르셨잖아요..”라는 한마디뿐이었다.

몇 분이 지난 후, 당직 의사가 와서 사망선고를 했다. 코로 이물질을 빼내려고 했으나, opti flow를 계속 적용하여 한껏 건조해진 탓에 카테터가 들어가지 않아 할 수 없었다. 환자의 몸에 있던 정맥 라인과 동맥 라인, 유치도뇨관, 비위관을 빼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시트로 얼굴을 덮어주었다. 그 사이 나는 환자가 미처 사용하지 못한 약물들을 반납하고, 사망진단서에 있는 주소를 수정한 다음, 보호자에게 장례식장을 잡아야 할 것을 설명하고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행정적인 일들을 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죽음에 더욱 의연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보다도 더 마음이 편치 않을 보호자들이 환자의 임종을 잘 맞이할 수 있으려면, 어쨌든 누군가는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또 다른 한편, 이러한 죽음에 무감각해지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나에게는 수백, 수천 명의 환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한 사람이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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