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수)
퇴근하는 길. 언제나 그렇듯 업무량이 많아 점심은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11시간 넘게 근무를 하고 운동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3년 차임에도 여전히 데이 근무 전에는 긴장감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터라 피곤함이 더욱 몰려왔다.
편한 마음으로 병원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있다가 전화해야지.’
그렇게 생각을 해놓고 금세 잊어버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핸드폰을 보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엄마에게서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응, 엄마. 이제 퇴근했어. “
”오늘은 많이 늦었네. 많이 피곤하겠는데. 운동 가는 길이야? “
”응. 오늘 일이 좀 많았어. 근데 왜?”
평소 별다른 용건이 없어도 엄마와 자주 통화를 하는데도 피곤해서인지 날카로운 말투가 나왔다.
“그냥 했지~”
그 날카로움을 가라앉히는 엄마의 여유.
”할머니가.. “
마음이 철렁했다. 90세가 넘은 친할머니는 부모님과 함께 계시는데, 최근 한두 달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무슨 일 있어? “
”할머니가 최근에 설사를 계속해.”
”뭐 드시는 건 있고? “
”베지밀 조금이랑 뉴케어 조금. 가끔 죽 조금 드실 때도 있고. 그런데 드시는 것보다 설사로 나오는 게 양이 훨씬 많네. “
”지사제는 드셨어?”
“응. 드셨는데도 그러네.. 왜 그러시지 “
살짝 짜증이 났다. 원인을 찾으려면 병원에 가야지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거야 병원 가서 검사해봐야 알지. 할머니 병원에 가실 컨디션은 돼? “
“아니. 할머니 병원 안 가려고 하시지.”
몇 년 전 이미 스스로의 의사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둔 할머니는 당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음에도 병원에 가지 않으시려고 했고, 부모님은 그런 할머니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럼 증상 완화밖에 못하는데 지사제 드실 수밖에 없지.”
“정로환이라고 지사제 있잖아. 그거 드시는데 별로 효과가 없네. “
왜 사람들은 간호사가 모든 약을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속마음으로 생각하면서도 별 얘기는 안 했다.
“죽음이 다가오면 몸에 있는 걸 비워내려고 한다고 하잖아. 할머니가 그러신 건가 싶기도 하고..”
“정신은 괜찮으셔?”
“응. 할머니 알잖아. 정신은 아주 맑으셔.”
누운 상태에서 자세를 바꿀 힘도 없으면서 며느리에게 기저귀 가는 걸 맡길 수는 없다며 앙상해진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화장실에 가시는 할머니였으니, 우리 할머니지만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아무튼, 할머니 보면서 우리 딸 생각이 났어.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서.”
갑자기 코끝이 찡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나오는 걸 들킬 것 같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했어. “
”응.. “
”운동 잘 갔다 오고 얼른 쉬어. “
”응.”
그렇게 엄마와 전화를 끊고, 아주 조금 울었다. 환자의 첫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내가 생각나서, 그리고 ‘익파*’라는 무미건조한 단어로 환자의 사망을 추가적인 업무로 여긴 오늘의 내가 생각나서.
* 익파: ‘이승을 하직하다’라는 뜻의 익스파이어(expire)의 줄임말. 환자가 사망했을 때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