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협탁을 새로 구입하면서 가구 위치를 함께 옮겼다. 그러면서 잡다한 짐들을 꺼내 정리해야 했는데 욕심이 생겨 구석의 박스 안에 넣어둔 것까지 죄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일의 곤혹스러운 지점은 그대로 둘 지, 버려도 될 지, 버려야 할 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다보니 지루해졌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에서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는 문장을 좋아한다. 비단 그것이 상처가 아니더라도 어떤 얼룩을 가지고 있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릴 때 살던 집 벽에는 색연필을 마구잡이로 쥐고 그린 (기억도 나지 않는)선들이 새겨져 있었고 곧잘 삐걱대던 미서기 문은 종종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밤마다 돗자리를 펼쳐두던 마당에는 모기향 냄새와 부채질에서 불어오는 바람, 할머니의 무릎 같은 것들이 있다.
물건들을 옮기며 조금 후회되는 부분은 기록하지 않은 기억들에 대한 것이었다. 가령 이사를 하며 새로 주문한 커피포트가 도착한 날, 커피머신을 살 때 동생에게 열 몇 개의 링크를 보냈던 일, 엄마가 다려준 셔츠를 생각하며 구입한 스팀다리미나 잡다한 집기들에 대한 기억들.
몽골 여행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선물한 스탠드, 오랜 친구가 선물해준 시들지 않는 꽃과 사랑하는 동생이 선물해준 포스터는 협탁 위에 함께 놓여있다. 그것들이 처음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선명하지 않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었는지 하는 것들이 모두 휘발되어 아쉬워졌고 떠올릴 사건들이 많아 마음이 다소 분주해졌다.
봄마다 마주하는 이런 내가 낯설지만 매년 반복되는 걸 보니 어쩌면 봄은 분주함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