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디자인'이 아닌 '전략'을 디자인한다는 것
"로고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한 속을 잠재우며 되묻습니다.
“그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무엇을 파고, 어디에 자주 노출되며, 누가 사고, 가격은 얼마인가요?”
“정해진 건 없어요. 그냥 일단 만들어주세요.”
한국의 수 많은 디자이너들은 이런 상황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합니다.
하지만 우리 디자이너는 작은 사이즈에 별 기교 없어보이는 로고일지라도
많은 요소들이 농축된 ‘결과물’이란 것을 압니다.
그야말로 브랜드 기획이라는 시작점에서 이어져 나온 종착지이자 요약이죠.
브랜드 전략, 철학, 타깃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지는 로고는 그저 예쁘고 말랑한 장식에 불과합니다.
회사마다 상황마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업무를 다 다르게 설정하지만
비 디자이너의 시각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조금 안다 싶으면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수식어를 하나 더 얹어주죠.
남들이 보는 '그림=시각=결과물'은 완성본이다 보니
완성되기 이전 수 많은 스케치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모양입니다.
'판다'를 그리라고 했을 때
어떤 판다를 그릴 지 생각하고, 여러번 스케치도 해보고, 필요하면 답사도 가서 어떻게 생겼는 지 보고 오듯
'로고'를 만들 때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브랜드 디자이너, 우리는 단지 시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브랜드의 태도, 말투, 방식, 분위기를 ‘디자인 =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로고는 마지막 단계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전략이 있어야 방향이 보이고, 방향이 있어야 형태가 만들어지니까요.
브랜드 디자이너는 로고를 만들기 전, 이렇게 묻습니다.
“이 브랜드는 왜 존재해야 하나요?”
“누구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가요?”
“우리는 어떤 언어로 말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 건가요?”
이 질문들에 답을 찾은 후에야 그래픽 모티프, 키 컬러, 레이아웃 스타일,
그리고 로고와 아이콘까지 하나로 응축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완전한 답을 전해주었던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반감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고를 디자인해야하는 우리 역시
로고가 세상에 나온 후에도 끝끝내 그 답을 확신하지 못하거든요.
100점짜리 결과값이 도출되기 전까지 묵히기 보단 70점이라도 남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디자이너의 숙명처럼 우선 내어주고 보는 거지만서도.
70점에서 1점이라도 더 올릴 수 있도록 질문을 하고
어떻게든 소화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고민이 로고 여정에 묻어있습니다.
“그냥 일단 만들어주세요”
라는 말 아래, 전략 없는 로고들이 만들어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로고는 시간이 지나며 쉽게 무너지고,
사용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지 못합니다.
반면에 내면이 단단한 브랜드는 시간이 지나도 자기다움을 유지합니다.
좋은 브랜드 디자인은 보여주기보다, 사람들이 말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로고 하나만 만들어주세요”라는 말은
사실상 “우리 브랜드를 단 한 장으로 설명해주세요”라는 뜻입니다.
그 무게를 아는 디자이너라면, 그 요청 앞에서 절대 ‘뚝딱’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디자이너에게 더 다양한 시각과 폭 넓은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로고 하나’를 요청하는 사람도,
그 안에 담긴 브랜드 전략과 깊이에 대한 이해를 '역량'으로 가져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