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침묵의 무게
언어가 사라지자, 세상은 빠르게 원시 시대로 회귀했다. 아니, 원시보다 더했다. 원시 시대에는 최소한 소통을 위한 몸짓이나 단순한 소리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더 이상 질서가 없었다. 한때 복잡한 법과 규칙으로 돌아가던 사회는, 이제 오직 본능과 힘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경찰은 더 이상 '체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고, '범죄'라는 개념조차 희미해졌다. 은행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물물교환으로 필요한 것을 얻었다. 화폐? 그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나는 한서연과 함께 도시의 중심가를 지나고 있었다. 한때 활력이 넘치던 그곳은 이제 약육강식의 정글 같았다. 몇몇 무리가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두머리'라는 단어도 없이, 오직 거대한 몸집과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웠다. 그들 사이의 소통은 비명과 신음, 그리고 주먹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감정의 미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본능의 노예였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탐욕과 분노, 그리고 폭력만이 가득했다.
한서연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이 혼돈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언어가 없어도,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그녀는 이 혼돈의 시대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전달했고, 그녀는 내게 '침착함'을 전달했다. 우리는 마치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거대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내 수첩에 '혼란' 아래, '생존'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한서연의 손바닥에 '질서'라고 썼다. 그녀는 내 손바닥을 느끼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언어가 없어도, 가장 아름다운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