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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소수자

by 솔라담




"나, 가을에 결혼하려고."

언니가 말했다. 이 무슨 날벼락같은 축복인가.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 국가 소멸 위기, 결혼 안 하는 젊은 세대라지만 우리 언니는 간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우리 언니는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너무 좋으면 세상 유치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구나. 처음 알았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르는 엄마. 저러다 경련이 오지 않을까, 유치한 걱정이 들 정도다. 하회탈 만든 조상님은 우리 엄마 얼굴을 어찌 본 걸까 싶다. 나도 저런 표정이겠지.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의 얼굴은 탈 같은 게 아닌, 탈 그 자체로 보였다. 이매탈처럼, 슬픔이 스치는.


둘의 보금자리, 신부의 드레스, 식을 치를 장소. 세 여자의 수다판은 흥에 겨웠다. 우리 집 소수자께서는 또 판을 떠나 당신의 방으로 향하셨다. 으레 있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그의 탈이 단단해 보이는 건 왜일까.


어느 날 퇴근하고 들어오니 공기가 묵직하다. 언니의 결혼식 때문이었을까.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고집에 언니가 성을 낸 눈치다.

"혼자 들어가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언니가 먼저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이 쾅하고 대신 소리를 질러 준다. 언니의 저 단호한 반응은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았던 그날 이후, 언니는 누구보다 단단한 방패가 되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야이 병신새끼야! 전화 좀 빨리 받아!'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고, 놀란 언니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누구였냐는 아버지의 물음에는 실수로 바로 끊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만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 한숨을 쉬며 방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끌리는 한쪽 다리가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


사실 아버지의 다리는 오히려 가볍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소아마비의 흔적. 부족한 근육의 영향이다. 그 시절엔 드물지 않았지만, 지금은 낯선 모습이다. 아버지는 그 다리로 온 가족을 버텼다. 다리는 가볍지만 단단했다.


아버지는 공고에서 배운 용접 기술 하나로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숨 막히는 가스와 아린 눈. 육중한 쇳덩이들. 아버지는 한 다리로 모든 것을 버티셨다. 그를 힘들게 한건 오히려 시선과 말들이었다. 반푼이. 병신. 택시조차 손님을 거부하던 시대의, 그 멸시의 시선과 쏟아지던 말들. 그게 아버지에겐 낙인으로 남았다.


욕설이 섞인 전화를 통해 아버지의 낙인의 흔적을 알게 된 언니는 마치 무슨 결심이라도 한 냥 바쁘게 움직였다. 한동안 미간에 주름진 게 얼마나 못생겨 보였는지. 언니가 한 건 한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신청이었다. 아버지는 손사래 쳤지만, 언니의 끈질김을 어찌 이기랴. 못생김이 얼굴에 못 박힐까 봐 그랬을 수도 있고. 그 끈질김으로 아버지와 며칠을 붙어 앉아 준비했고, 결국 아버지는 입상하셨다. 언니와 아버지의 트로피. 지금도 거실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러니. 긴장하면 다리가 안 움직여서 그래."

하지만 아버지의 핑계는, 나와 어머니까지 합세한 언니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우리도 소수 의견을 반영해 줄 마음이 없다. 우리의 소수자께서는 결국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시작하시는 걸로 패배를 선언하셨다.


화려한 식장. 언니와 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들어온다. 긴장하면 더 걷기 힘들다더니, 의외로 당당하게 걷는다. 그럼에도 긴장은 하셨는지, 표정은 탈을 쓴 듯하다. 그래도 오늘의 이매탈엔 웃음기가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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