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기획소 #1
◇갓생기획소◇
♧ AI가 설계하는 당신의 새로운 일상!
♧ 매일 똑같은 하루에 지치셨나요?
♧ SNS 속 그들의 삶이 부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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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7시. 퇴근 후 버스에 앉아 책을 폈다. 여느 때처럼. 다만 오늘은 유독 피로가 몰려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틈을 불금이라고 한껏 멋을 낸 앞자리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너 갓생기획소 깔고 그대로 하는 거지? 요즘 진짜 장난 아니더라."
"진짜라니까. 바로 남친 생겼잖아. 성능 미쳤어."
'갓생기획소'? 낯선 이름이 귓가에 걸렸다. 도시의 불빛처럼 반짝이는 그들에 비해, 묵직한 책을 든 내 모습이 문득 낡아 보여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창에 입력했다.
'당신만의 맞춤형 라이프스타일.'
'AI가 설계하는 새로운 일상.'
광고 문구가 눈을 현혹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오늘은 묘하게 끌렸다. 유독 피로해서일까. 앞자리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 때문일까.
출판사 편집부 3년 차. 독서가 취미이자 직업인 삶. 매일 원고를 읽고, 퇴근 후에도 책을 읽는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 가끔 만나는 친구라곤 학창 시절부터 봐온, 10년째 같은 얼굴들뿐. 그것이 내 일상의 전부였다.
-앱을 설치하겠습니까?-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지루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네"
최초 고객 설정을 위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취미와 관심사를 적어주세요.-
'독서, 서점 탐방'
-어플 설치의 목표를 적어주세요.-
'더 활발한 사회생활, 새로운 인연 만들기'
-현재 가장 아쉬운 점을 솔직하게 적어주세요.-
입력창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적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움. 매일이 똑같아서 지루함.'
이어진 문답이 끝나고 로딩 화면이 돌았다. 분석이 끝나자 내 프로필이 생성됐다.
'당신은 아무도 안 보는데 껍질 속에만 숨어있는 거북이입니다.'
기계 주제에.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한 진단이었다.
토요일 아침, 첫 미션이 도착했다.
-브런치 카페에서 아보카도 토스트와 셀카.-
웃음만 나왔다. 출근길 트럭 토스트가 3천 원인데, 아보카도 토스트는 만 오천 원. 내 일주일치 아침 가격이라니...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 그래, 가보자.
연남동. 힙한 청춘들의 성지라는 그곳. 평소라면 책 한 권 들고 동네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있을 시간인데 좁은 골목을 헤매고 있다. 겨우 찾은 2층 카페는 sns가 현실이 된 공간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북유럽풍 인테리어, 초록빛 아보카도.
어색하게 셀카를 찍었다. 책에 비해 한참 가벼운 스마트폰을 45도로 들고 있는 게 낯설었다.
-자연광이 얼굴에 닿도록 다시 찍으세요-
어플의 지시가 세세했다. 각도, 표정, 구도. 기계에게 허락을 받고 있다는 씁쓸함도 잠시. 사진을 업로드하자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좋아요' 알림이 멈추지 않는다. 순식간에 쌓인 21개. 믿기지가 않아 새로고침을 하니 32개로 늘어났다. 지금껏 내 모든 게시물이 받은 '좋아요'를 다 합쳐도 이것보다 적을 것이다.
-띠링, 띠링, 띠링-
계속 울리는 소리에 심장이 울렁거린다. 마치 첫 고백을 받았던 날처럼.
"언니 뭔가 달라 보여!"
"대체 어디야? 담엔 꼭 같이 가자~"
댓글을 읽으며 낯선 만족감이 스며들었다. 만 오천 원짜리 토스트가 가져다준 작은 변화. 세상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라니. 얼마만일까.
-내일은 DDP 전시 관람입니다-
일요일은 다음 주 편집할 원고 읽는 날이었는데... 계속 늘어나는 '좋아요' 알림 소리 속에서, 어느새 이미 내일 입을 옷을 고르고 있었다. 책장 대신 옷장을 열고 있는 내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설렜다.
불과 한 달 만에 내 sns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카페, 전시회, 팝업스토어. 어플이 짜준 동선대로 움직이며 채운 사진들. 팔로워 500명. #갓생 #데일리 #핫플 어느새 익숙해진 해시태그들.
더 놀라운 건 새로운 인연들이었다. 전시회에서, 카페에서, 플리마켓에서. 어플이 추천한 장소에서 울리는 익숙한 알림 소리로 서로를 알아보며 친해진 '갓생러'들.
"다음엔 성수동 갈까?"
"스토리에도 올리고!"
대화는 항상 경쾌했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각도로 찍을지. 모든 게 가볍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수진이를 만난 날. 한강에 뜬 러버덕을 보러 가라는 갓생기획소의 유혹이 강렬했지만, 학창 시절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홍대 근처 익숙한 카페. 늘 앉던 자리. 늘 마시던 커피. 늘 나누던 책 이야기. 한국 최초 노벨상 수상작이 주제였는데도 대화에 집중이 안 됐다.
"너 혹시 무슨 신경 쓰이는 일 있어?"
"아 미안. 아... 사실 업무 때문에 신경 쓰이네."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 눈앞에 보이는 곰돌이 인형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와 갓생기획소에 오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검사받는다. 결과가 나오기 전, 수진이의 메시지가 왔다.
"일 때문에 정신이 많이 없었나 봐. 힘내고 내가 도움 될 일 있으면 연락 줘~"
이어서 갓생기획소의 팝업이 떴다.
-오늘 찍은 사진은 올리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러버덕이나 보러 갈걸...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두 달째 금요일 밤. 이태원 클럽. 갓생기획소의 특별 미션이었다. 처음부터 클럽을 추천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텐데, 두 달 만에 갓생에 적응한 걸까. 후후.
심장을 쿵쿵 울리는 음악과 달콤하면서도 역한 술냄새가 뒤섞인 공기. 한번쯤은 궁금했지만, 갓생님의 등 떠밀기가 없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곳. 검은 크롭티에 하이웨이스트 청바지. 어플이 정해준 '클럽룩'이 튀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정 무렵, 정신없이 놀던 중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한창 취기가 오른 터라 무시하려 했지만 멈추지 않아 화장실로 갔다.
부재중 전화 5개와 메시지들.
"미안 급한 일이야"
"진짜 급해. 제발"
"지금 혼자인데 너무 무서워"
수진이다. 얜 예전부터 늘 과장이 심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꾼 걸까. 고등학생도 아니고...
"미안. 내가 내일 연락할게"
답장만 하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갔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동이 틀 무렵까지. 언제 클럽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흐릿했다. 수진이의 연락조차 술기운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토요일 오후에 겨우 일어났다. 술기운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폰을 켜자마자 갓생기획소에 어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수진이의 부재중 연락은 따로 없었다. 역시 별일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문자를 남겼다.
"왜 무슨 일이었어? 미안해 자느라"
어플은 사진을 추려서 편집을 마친 후, 해시태그까지 추천해 주었다. 그대로 내 sns에 올리고 눈을 감은 채 기다린다. 띠링, 띠링. 기분 좋은 알림음. 순식간에 '좋아요' 80개와 댓글들이 쏟아졌다.
"언니 완전 인싸됐네!"
"클럽 데뷔 축하해ㅋㅋ"
다만... 클럽 밤샘은 아직 너무 일렀던 걸까. 너무도 지친 나머지, 주말 내내 폰도 꺼둔 채 누워 기절해 버렸다.
고등학교 동창인 현정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무턱대고 쏘아붙이는 목소리.
"수진이 아버지 발인하고 오는 길이야. 넌, 씨x. 진짜 인간도 아니다. 연락하지 마."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세상조차 멈춰버린 느낌.
무슨 말이야, 대체. 왜 갑자기.
단톡방을 열었다. 모두가 나간 상태. 나만 혼자 남아 있었다.
스크롤을 올려 거슬러 올라간 메시지들 속에는 수진이 아버지의 교통사고, 위독한 상태, 그리고 부고가 있었다. 내가 클럽에서 술에 취해 사진을 찍던 그날, 수진이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 수진이 회사 앞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연락을 하니 잠시 시간을 내주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은 형편없이 야위어 있었다.
"정말 미안해. 정말 몰랐어..."
"어 그래. 그럴 수 있지."
차라리 욕이라도 해주지.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가슴을 후벼 팠다.
"병원에서 아빠 손 잡고 있을 때도, 장례식장에서도, 계속 너 생각했어. 언제 올까. 근데 바빴나 보더라."
"아냐 수진아. 나도 주말 내내 너무 아파서 진짜 몰랐어. 미안해"
수진이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가 사라졌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는 듯.
"그래. 그럴만하겠더라. 갈게."
도무지 붙잡을 수 없었다. 그냥 서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주말이 되었다. 관성적으로 어플을 켰다. 그리고 갓생러들의 모임 자리에 홀린 듯이 나갔다.
성수동 루프탑 바. 어플이 추천한 '힐링 스팟'.
술기운을 빌려 하소연했다. 친구에게 큰 실수를 했다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쩔 수 없지. 과거에 얽매이면 너만 힘들어져."
"다 그런 거지 뭐. 가는 사람 있고 오는 사람 있고."
"우울한 얘기 그만하고 클럽이나 갈까?"
그들의 위로는 진심이었을까... 나름대로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진심의 종류가 내게는 너무나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게 갓생이라면, 이런 세상은 내게 너무 이른 것이었나 보다.
몇 주가 지났다. 어플은 여전히 내게 미션을 줬다. 강남 브런치 카페. 팬케이크. 해시태그.
하지만 내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유명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를 마셔도, 수진이와 마셨던 홍대 카페의 미지근한 커피가 생각났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더없이 그리웠다.
'갓생러'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가벼웠다. 무슨 옷을 입을지, 어디서 뭘 먹을지, 어떤 사진을 찍을지.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해서 쫓겨나듯 퇴사하게 됐을 때도 그들은 "별거 아니야", "심각하게 생각 마", "좋은 일 있을 거야"라고 위로해 주었다. 물론 그것 역시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수진이였다면 밤새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화내줬을 텐데. 내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위로해 줬을 텐데.
오늘 밤, 침대에 누워 메시지함을 열었다. 그날 이후 매일 밤 보낸 메시지들.
"수진아. 진짜 미안해..."
글자 옆, 사라지지 않는 숫자를 볼 때마다 칼날이라도 삼킨 듯한 기분이다.
수진이와 나눴던 진짜 대화들. 읽은 책 얘기, 사소한 고민들, 침묵조차 편안했던 시간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나는 이미 '갓생'을 살고 있었구나. 그 지루하고 평범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야말로 진짜였구나.
사진첩 어플을 열었다. 수진이와 찍은 사진을 찾으려는데 쓸데없는 사진만 한가득이다. 겨우 찾은 수진이와 찍은 사진을 어플에 올렸더니 잠시 후 팝업이 뜬다.
-주의! 갓생sns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진입니다.-
참나...
-어플을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