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초록3

좋은 하루 되세요, 고객님.

by Solbini


전쟁을 치루듯, 급박하게 준비했던 자격증의 시험이 모두 끝났다.

벼락치기를 한 달 하고도 절반을 더 했으니 솔직히 지친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꼬박 하루를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누워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가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밍기적거리고 샤워를 하고

개운하게 잠을 자고 눈을 떴다.


이젠 자기소개서를 써볼까 하고 서점을 찾아 집밖을 나섰다.


대충 <한 권으로 끝내는 자소서> 같은 전형적인 책을

이만 이천원이나 주고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오랜만에 집에서 들고 온 에세이를 읽자니

시간이 느린 듯하면서 빨리 흐른다.



문제집을 사면서 틈틈히 사 모았던 남은 소설과 에세이를

조금씩 읽어 치우고자 했던 나의 다짐에 큰 집중력을 바라면 안되었나 보다.


열 페이지 쯤 읽고, 핸드폰을 쳐다보고

또 다섯 페이지 쯤 읽고, 다이어리에 뭘 또 끄적이고.



그러다 다시 스무 페이지 쯤 읽었을까.



에어팟 사이로 어느순간부터 들려오는

"좋은 하루 되세요, 고객님." 이라는 책에서나 나올 법한 낭랑한 말이

자꾸만 거슬려 문득 뒤를 돌았다.




나는 언제인지 모를 순간부터 시니컬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는 했다.


아, 겉으로는 제일 따뜻해보이는데

속을 알면 그렇게 차가울수가 없댔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 그런 말을 들어왔으니

익숙해진 말이다. 굳이 싫을 이유도 없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좀 (많이?) 냉소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아마 엄마의 죽음이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이라는 생물에 대한 회의와 모순, 불신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엄마가 죽어가는 과정, 그러니깐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는 시간에서 생긴

'혐오'가 되어 나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번졌으니.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스스로 여유가 있을 때만 나오는 진정이었고,

내 것도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것을 먼저 챙기는 착함은 그저

본인의 양심을 덜기 위해 행하는 나쁜 버릇, 혹은 습관이라 여겼다.


내가 그러했으니,

그 습관이 참 부질없고 더없이 슬프고

또는 그렇게 멍청할 수 없는 위선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어쩌다 지나가는 길에 들른 병문안에서

"잘 보내주자."하는 개소리나 지껄이는 안타까운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그들에게 와주어서 고맙다며 미지근한 병음료를 건넸다.


세 달째 입으로 뭔가를 삼켜보지 못한 엄마를 앞에 두고

배고픔에 허덕이며 컵라면을 끓였고

그마저도 라면냄새가 병원에 피해가 갈까 마음을 졸였다.


그 개같은 나의 위선은


애타게 당신을 부르던 내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아직은 지그재그로 흔들리던 심장이 서서히 멎어갈 때까지

질끈 감은 눈을 결국 뜨지 않았던 엄마를 영원히 잃고 나서야

쓸데없는 짓이었단 걸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울음을 토해내며 당신을 흔드는 딸을 끝까지 외면하며

다시는 뜨지 못할 두 눈을 꼭 감아버린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시간이 쌓이고 여기저기서 다른 경험을 겪을수록

나의 행위에 위선을 더하지 않는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붙었고

웃지 않는 것, 내가 힘들 때 굳이 배려를 하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좋은 소리를, 싫은 소리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


고맙다는 감정이 생겨서야 고맙다는 말을 하는게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하는게

얼마나 어렵고 진빠지는 일인지 서서히 겪으며

그럼에도 그것이 쉬워지는 일이 되어가며


남들에게 나는 따뜻한데 차가운 사람으로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차가운데 따뜻하다와는 정반대인

따뜻한데 차갑다는 말은 다시 말하지만 전혀 기분 나쁜 말도 아니고

조금 더 따뜻해져야겠다는 자아성찰의 의지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글은

무조건적으로 힘내고, 극복해야한다는 희망의 의지가 담긴 글이 아니라


어쩌라고 혹은 힘 뺄 필요없지 라는 의미를 지닌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글이다.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많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그저 메마르고 건조한 글이 좋아진 지금


꼭 그것에 맞는 글을 읽다가


볼륨을 높여둔 에어팟 사이로 계속해서 들리는

"좋은 하루 되세요, 고객님" 이라는 반복된 문장에 뒤를 돌아

그 직원을 쳐다보는 내 행동에는 신기함 절반, 의아함 절반

그리고

왜 느껴지는지 모를 안도와 부러움이 아주 작은 형태로 담겨있다.



벽면에 가려진 직원의 얼굴표정을 굳이 일어서서 볼 필요성을 느끼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간지러운 말에 낭랑하게 섞인 웃음기가 읽혀서

다시 한 번 신기함과 안도가 섞인 알 수 없는 마음이 들어서

괜히 멍해진다.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번지는 내면을 뒤로하고

다시 읽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샌가 한여름 오후는, 나에게 너무 따가워졌다.






불안이 내 속을 아무리 좀먹어도,

피가 철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선천성 무통증 환자처럼.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진짜 안 아팠던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는지도.

- 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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