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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Oct 12. 2021

외계인을 만났다

내가 만난 외계인들

콜을 받아 가보니 젊은 여성들 네댓이 서있습니다. 방역수칙이 강화되기 전입니다. 함께 저녁식사라도 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일행 중 한명을 제 차에 태웁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탄’ 게 아니라 친구들이 ‘태운’겁니다. 몹시 지틴 듯해 보였습니다. 목적지는 당하동의 한 아파트. 힐끗 백미러로 그녀가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확인한 후 차는 출발합니다. 겨우 자리에 앉은 그녀는 주섬주섬 핸드백을 뒤집니다. 소지품을 다 확인한 후 휴대전화를 꺼내듭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잠시 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나 봅니다. 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를 칩니다. 몹시 화가 난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 듣던 베트남어나 중국어와는 완전 다릅니다. 정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언어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듯했습니다. 한참 화난 목소리로 상대방을 윽박지르더니 어느새 까르르륵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도 잠시 끼룩끼룩 울기까지합니다.


이윽고 평정을 좀 찾았나 봅니다. 다시 차분한 모드로 접어듭니다. 그도 얼마가지 않습니다. 간절하게 애원을 하는 모양샙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도 그 감정의 향연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그녀는 모노드라마 전문배우가 분명했습니다. 분노로 시작해 환희가 넘치다가 다시 슬픔과 애절함까지. 그녀는 격정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던 거였습니다. 그녀의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녀가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를 말 했습니다.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너무 떠들었죠. 안전운전 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멋진 멘트를 남기고는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냥 멍~ 했습니다. 그냥 우리나라 사람 같았습니다.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배운 거라면 참 잘 우리말 배운 솜씨입니다.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다가 순간 욕지기가 났습니다. 뛰어내려 헛구역질을 잔뜩 했습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반전에 멀미를 한 것 같았습니다. 택시기사가 멀미를 한 겁니다.  


그와 비슷한 남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동글동글했습니다. 얼굴도 몸뚱아리도. 피부는 허여멀건 했고 곳곳에 붉은 반점이 번져 있었습니다. 화장독에 올랐거나, 피부병이라도 났나 싶었습니다. 그 생김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동은 느려 터졌습니다. 차문을 열고 올라타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린 시간이 돈인지라 답답했지만 성화를 부릴 순 없었습니다. 물론 평점 때문입니다.    


그가 목적지를 말합니다. 잔뜩 꼬부라진 말투입니다.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만 석남동이었습니다. 역시 외국인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눈치였습니다. 여기에 온 지 얼만 되지 않아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듯합니다. 아, 그런데 자는 줄 알았던 그가 무언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역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희한한 언어를 씁니다. 마치 뭘 먹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냥 웅얼웅얼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정한 운율이 있었고 감정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랬습니다. 어쩌면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석남동에 다 왔습니다. 돈을 내야할 대목에서 그는 미적미적합니다. 재촉하니 주머니를 뒤집어 까며 돈이 없다는 시늉을 합니다. 아, 미처 환전을 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게 건냅니다. 제 번호를 찍으라는 듯 했습니다. 내일 아침 전화하겠다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사납금도 못한 처지라 일단 보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10시경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에 다시 걸었는데 또 받지 않습니다. 문자를 남겼습니다. ‘댁들은 돈 만원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우린 10시간을 일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라구요. 예상치 못했는데 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생소한 전화번호라 받지 않았고, 엊저녁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했다고, 꼭 보내드릴 테니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아, 아 친구 우리말은 못해도 글을 잘 배웠나 봅니다. 저는 통장사진을 찍어 보내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부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다음에 다음 날도.

 

그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차라리 미니언즈의 그것에 가까웠습니다. 지구에선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거죽을 뒤집어쓰고 지구인 행세를 하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여자로 분한 자는 고향별에 있는 남편 혹은 남친이랑 통화했던 게 분명합니다. 그의 외도를 의심하다가, 끝에 가선 향수병을 토로한 건지도 모릅니다. 동글이 남자는 이제 막 도착했을 겁니다.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맨 인 블랙’이나 그 옛날 미드 ‘V’는 실화였습니다. 그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사람처럼 보이지만 우리 중엔 외계에서 온 생명체들이 이렇게나 흔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그들을 직접 목격한 겁니다. 그 말고도 몇 번 더 겪어봤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다양한 속성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처럼 감정이 제멋대로 너울거리는가 하면 그처럼 아주 조용하게 돈을 떼먹기도 합니다. 남자 외계인을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 그러진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지구를 방문한 손님이잖습니까요.

     

하여간 술이 웬숩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당신의 출신마저 의심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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