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내게 수능은 이제 철저히 나와 무관한 일이었다. 그토록 치열하고 겁나고 불안했던 지난 시간을 굳이 떠올리지 않으려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올해는 수능에 대한 느낌이 조금 남다르다. 다시 지난 수능날의 차갑고 떨리던 공기가 생생히 기억났다. 아무래도 코로나19로 더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는 수험생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감정이입이 돼 버린 것 같다. 국내에서 대입 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고3 시절을 얼마나 대입에 대해 걱정하며 보내게 되는지 으레 공감할 수 있다. 그 마음을 나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수험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욱 크다.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를 맞닥뜨리며 집을 나서고, 수험장 앞에서 복잡한 마음에 가족들과 오히려 더 어색하게 헤어지고, 늘 등교하던 익숙한 학교가 아닌 낯선 공간으로 발걸음을 떼는 그 기분이란. 낯을 잘 가리는 나에게 낯선 수험장의 공간은 그 자체로 이미 긴장감이 조성됐다. 같은 교실 안의 여러 수험생들, 같은 건물 안의 더 여러 명의 수험생들과 모두 같은 처지였지만, 시험을 치르는 일은 철저히 혼자만의 영역으로 분명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리고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이들이 경쟁자라는 사실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수능의 긴장감은 몇 년간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단 몇 시간만에 결정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의 꿈은 대입 성공이었으며 장장 1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그 꿈을 향해 달리게 된다.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르는 10대의 입장에서 수능 결과는 엄격하며 절대적으로 중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 마주하는 사회의 어떤 관문을 보기 좋게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자와 결국 실패하여 낙오되는 자를 가르는 심판처럼 말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 짧은 시간의 압박감과 긴장감에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 둬야 한다. 수능 결과는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대입의 과정이 지나가고 한동안 시간이 좀 흘러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해 왔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 꼭 노력한 만큼 성과가 그대로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실패가 훗날 다른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것. 코로나 상황을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듯이 세상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니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로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또 다음 과정으로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열심히 해야 성공할 기회도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잘 될 기회와 준비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이다. 모두가 코로나 상황을 견디며 열심히 노력해 왔으니, 수능날에는 괜한 걱정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끝까지 힘내서 후련하게 이 길었던 과정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코로나 시국에서 버텨낸 것만으로도 너무 고생했고 모두가 안전하게 각자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