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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솔립 Dec 20. 2021

울적할 때도 있지만, 저는 제 인생이 좋아요.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리뷰

잔디밭에서 라디오로 일기예보를 듣다가 오늘이 독립을 해야하는 날이라면서 급하게 짐을 챙긴다.

키키는 마녀 집안에서 자란 13살 소녀로, 마녀는 13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부모님의 품을 떠나 다른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야 한다. 그 다른 마을에서 1년을 살면서 수행을 해야 비로소 마녀가 될 수 있다.

그날 밤, 모두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다른 마을로 떠나는 키키. 키키 옆에는 항상 지지라는 고양이가 함께 한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잘못된건지, 빗자루를 타고 다른 마을로 향하던 중 폭우가 쏟아진다. 키키는 비를 피하기 위해 달리는 화물열차의 짐칸에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열차 밖을 보니 바다가 보이는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보니 정말 꿈 같은 마을이었기에 키키는 그 마을에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다들 마녀는 처음 보는지, 신기한 듯 쳐다만 보고 키키를 반겨주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키키의 빗자루가 말을 듣지 않아서 교통사고를 낼 뻔한다.

마녀라는 존재는 대대로 구전처럼 내려져 왔지만, 아는 사람들만 전설처럼 알았다. 또, 이 마을은 바쁜 현대인의 무대였기 때문에 꼬마 마녀에게 관심을 줄 여유도 없었다.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환대가 없자 키키는 시무룩해한다. 오히려 빗자루를 들고다니는 키키를 경계하는 사람들을 보자 키키는 집에서 싸온 음식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키키에게 또래 남자아이인 톰보가 나타난다. 톰보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마녀에 대해 들어봤다며 신기해하지만, 이미 시무룩해진 키키는 빗자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슝 날아가버린다.

어디에서 정착해야할지 갈팡질팡하던 키키는 우연히 빵집 아주머니인 오소노를 도와주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키키는 빵집의 다락방에서 정착을 하게 된다. 우선 다락방을 치우고,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키키. 자본금은 있지만 이곳에서 1년 동안 독립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키키는 자신의 능력인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으로 배달 일을 시작하게 된다.

첫 손님을 받게 된 키키. 아줌마의 조카에게 고양이 인형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달 도중 새떼를 만나게 되고, 갑작스런 바람 때문에 빗자루가 말을 듣지 않아 숲속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키키는 고양이 인형을 잃어버리고, 키키는 저녁까지 배달을 해야한다는 약속을 어기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고양이인 지지가 고양이 인형인 척 배달을 가기로 했다. 물론 배달 후 키키는 최대한 빨리 숲속에 떨어진 인형을 찾아야 했다.

배달 후, 숲속을 돌아다니다 한 오두막 안에 고양이 인형이 있는 걸 발견한다. 거기에는 우르술라라는 화가가 살고 있었다. 인형을 다행히 돌려줬지만, 뜯어진 목 때문에 당황한 키키. 우르술라는 고양이 인형의 목을 실로 꿰매주고, 키키는 그 대신에 오두막집을 청소한다.

다행히 키키는 첫번째 배달 집의 강아지 도움을 받아 고양이 지지와 인형을 무사히 바꾸게 된다.

손님이 뜸하던 어느 날, 톰보가 키키에게 찾아온다. 자신의 집에서 파티가 열린다며 키키에게 초대장을 건넨다. 그러나 키키는 반응이 영 좋지 않다. (아마 톰보가 약간 불량배들? 이런 아이들과 어울렸기 때문인 듯하다. 혹은 쑥쓰러워서?) 그때 배달 건이 두 건이나 들어오는데, 하나는 무거운 물건을 배달하고 또 다른 하나는 물건을 가지러 가는 거였다.

무거운 물건을 배달 한 후, 적힌 주소로 날아가는 키키. 그곳은 할머니의 집이었다. 청어 파이를 구워 자신의 손녀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오븐이 말을 듣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었다. 키키는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할머니를 도와주기로 한다. 할머니 댁에 기계식 오븐이 아니라 화덕이 있어서 화덕으로 청어파이를 구웠다.

키키는 톰보의 파티에 갈 생각이 있었기에 빨리 배달을 하고, 파티 장소에 가기로 했지만 할머니 댁에 있던 시계가 10분 느리다고 하는 바람에 후다닥 배달일을 한다. 청어파이를 배달하던 중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서 키키는 비를 맞으며 청어파이를 배달한다.

이미 파티 시간에 늦어버린 키키는 시무룩한 마음에 방에 들어와서 잔다. 결국 키키는 다음 날 몸살이 난다.

며칠 뒤, 거리가 가까워서 걸어서 배달을 가던 키키에게 톰보가 나타난다. 쿠소로씨께 간다고 하니, 톰보는 그 쿠소로가 본인이라고 한다. 알고보니 오소노 아줌마가 키키와 톰보를 이어주려고 했던 것! 키키는 그날 파티에 가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톰보는 키키에게 너도 비 맞으면서 배달했다며 키키를 용서해주고, 자신이 만든 프로펠러 자전거를 보여준다. 페달을 굴려 프로펠러가 빠르게 돌아가면 자전거가 뜰 수 있다는 거다.

위험천만하게 도로가를 달리는 키키와 톰보. 하늘을 날긴 날았지만, 조종에 서툴러서 언덕 아래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잔디에 앉아 웃는다. 톰보는 키키의 하늘을 나는 능력을 부러워한다. 그런데 키키는 "나는 일로 하는 거니까 마냥 즐겁지는 않아."라고 한다. 그러자 톰보는 "니가 갖고 있는 재능으로 일을 하다니! 부럽다!"라고 말한다. 이를 듣고 자신감을 찾은 키키는 "나 그동안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어."라고 말한다.

이때 톰보의 친구들이 차를 타고 와서 불시착한 비행선 내부를 함께 구경하러 가자고 한다. 키키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시무룩해져서 화가 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 부분에서 키키가 왜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명확한 이유를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뭔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 유튜버의 리뷰에 따르면 키키에게는 친구가 톰보밖에 없는데 톰보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일까? 혹은 다른 친구들은 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다니는 데 자신은 단벌신사처럼 남색의 원피스만 입고 다녀서 괜히 위축이 되어서 그런걸까? 라고 한다.

어떤 댓글에서는 차에 타고 있던 여자애가 청어파이가 싫다고 쏘아대며 말하던 할머니의 손녀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여기에 내 의견을 추가하고 싶다. 키키는 아련한 눈빛으로 비행선을 쳐다보는 부분에서 느꼈다.

사실 키키 외에도 '날 수 있는 것'은 2가지가 나왔다. 톰보가 만든 동력 자전거, 그리고 불시착한 비행선이다. 또 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동차들도 많았다. 이렇게 자신은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날 수 있는 것들을 보니 자신감이 없어지고, 내 능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시무룩하고 괜스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또, 그 먼길을 걸어서 키키 혼자 돌아왔는데 자신은 걷고 있었고 옆으로는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니까 더욱 더 서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키키. 그런데 지지가 "야옹"이라고 말한다. 이때까지 지지와 키키는 말이 서로 통했는데, 갑자기 지지가 고양이 흉내를 낸다. 뭔가 쎄한 기분이 든 키키는 집에서 빗자루를 타보는데, 마법이 점점 약해져서 자꾸만 빗자루가 떨어진다.

그날 밤, 키키는 간절한 마음으로 빗자루를 타면서 하늘을 날아보려고 하지만 자꾸 넘어진다.

마법의 효력이 약해지자, 키키는 배달 일도 잠시 중단한다. 키키는 그래도 다락방에서 계속 지내게 해주면 안되냐고 하자 오소노 아주머니는 당연히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이해한다.

빵집 일을 도우던 키키에게 우르술라가 나타난다. 우르술라는 잠시 장을 보러 마을에 들렸고, 일부러 키키를 찾아 왔다. 키키는 우르술라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는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우르술라와 더 친해진다.

우르술라: 마법이나 그림이나 비슷하네. 나도 그림이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키키: 정말? 그럴땐 어떻게 하는데? 예전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 날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우르술라: 그럴 때는 버둥거릴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리고, 그려대는 거야.
키키: 그래도 여전히 날지 못하면?
우르술라: 그리는 걸 관두지. 산책을 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는 도중 갑자기 그리고 싶어지는 거야.

키키는 우르술라와의 대화를 통해 나만 이런 슬럼프를 겪는 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위로를 얻으며 잠을 청한다.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대목이다. 슬럼프가 왔거나 번아웃이 왔을 때는 억지로 그 일을 하려고 붙잡으려 하지말고 잠시 내려놓는 거다. 그러면 어느 샌가 그 일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을 것이다.

다음날, 공중전화로 오소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건 키키. 오소노 아주머니는 그때 청어파이를 배달한 할머니의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말한다. 당분간 배달 일을 그만한다고 말했으나, 꼭 키키를 만나고 싶다며 올 때 그곳에 들러 달라고 말한다.

히치하이킹을 해서 할머니 댁에 간 키키. 할머니는 이 물건을 '키키'에게 배달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물건을 보여준다. 그 물건은 '키키'의 이름이 새겨진 케이크였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할머니의 고급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방구석 1열>을 보니 할머니가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때 할머니 댁의 TV에서 불시착한 비행선이 다시 하늘 위로 떠오르는 걸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비행선에 또 다시 문제가 생겨서 추락을 해야하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리고 TV에는 톰보의 모습이 보였다. 키키는 톰보를 보고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 댁에서 급하게 나온다.

빗자루를 타고 톰보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빗자루를 들고 나오지 않은 키키. 급한대로 주변의 청소부가 들고 있던 대걸레를 빌린다. 키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마법을 건다. 키키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키키는 대걸레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이 모습이 생중계로 찍히며, 사람들은 키키와 톰보를 쳐다보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톰보. 결국 힘이 빠져 톰보가 밧줄을 놓고 아래로 떨어질 때, 키키는 재빨리 톰보의 손을 잡는다. 다행히 무사히 아래로 내려왔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다. 지지는 어디에서부턴가 와서 키키의 어깨 위에 앉는다.

키키는 이 마을에서 정착해 배달 일도 순조롭게 하게 되고, 톰보와 그의 친구들과도 즐겁게 논다. 그리고 키키의 부모님에게도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전하고, 부모님이 그 편지를 읽으며 영화가 끝난다.

한 마디로 <마녀 배달부 키키>를 말하자면 '소녀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키키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 혼자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야 했다. 자신의 고향에서는 자기가 마녀라는 걸 온 사람들이 알고, 모두가 반겨주었지만 낯선 마을에서는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경계를 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은 키키. 그렇지만, 사람들을 하나 둘 도와주고 관계를 맺다보니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치유 되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사람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는 게 인생인 것이다.

키키는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에 마법의 효력을 점점 잃어갔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배달을 실수했던 것도 그렇고,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은 형형색깔의 옷을 입고 다니지만 자신은 초라하게 원피스 하나로만 살아가고.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도 주변의 상황 때문에 내가 주눅들게 되면 어떤 사람이든 그 능력을 100% 발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오소노 아주머니를 대신해 일을 도와주고, 청어파이를 대신 구워주었다. 이 노력을 알아봤기 때문에 오소노 아주머니는 키키에게 방을 내주었고, 할머니도 키키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었다. 어디서든지 정성을 다하면 꼭 누군가는 알아봐준다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봐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꿋꿋이 하다보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올 것이다. 내 정성을 누가 지금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지지가 나중에 키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점이 의문스러웠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 유튜버의 해석을 봤다.

사실 지지의 모든 말이 키키의 혼잣말이었던 것이다. 사춘기를 겪는 키키는 속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키키가 해주지만, 속으로 생각하는 일은 지지가 했던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렇게 거의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 키키는, 다시 자신감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더이상 지지의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키키가 속으로 방황하던 그 시기를 지나, 지지의 속마음이 키키의 마음 안으로 흡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끝부분에 보면, 키키는 '울적할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아요'라고 얘기한다. 키키는 고향에서 '항상 즐거웠던 것'이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고, 가끔은 울적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마저도 나는 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것.

키키는 낯선 마을에 정착하면서 성장통을 겪었다. 언제나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인생을 조금씩 깨달았던 것이다. 지지가 이런 슬픈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었지만, 지지가 키키의 마음을 대신 얘기한다는 것이 키키는 아직은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받아들였더라면 키키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 얘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반부에는 자신의 서글픈 이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기쁨도, 슬픔도 같이 있는게 인생이고 이 인생이 좋다고 말함으로써 성장통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