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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01. 2024

30 후반에 에이징 커브에게 먹인 한방

에이징 커브 (Aging Curve)란 운동선수가 나이를 먹을수록 저조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경향을 의미한다. 능력의 감소는 사람마다, 플레이 스타일마다 제각각 다른 속도로 나타나지만 그 누구도 노화라는 절대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흔히 '나이 앞에 장사 없다'라고 하는데,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애늙은이 (Young Old Guys) 타입이든, 쌕쌕이 (Fast) 타입이든, 마구잡이 (No Plate Displine) 타입이든 관련 없이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을지언정) 20대 후반에 퍼포먼스의 정점을 찍고 이후로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세이버메트릭스 (Sabermetrics, 통계와 데이터로 야구를 분석하는 기법) 전문가들이 이런 추세를 증명한 이후로 30대의 FA (Free Agent) 선수들이 이전처럼 후한 몸값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미국 야구 선수들의 나이별/플레이스타일 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래프






야구 선수로서 내 신체 능력의 정점은 만 32세인 2017년에 찍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단기간 많은 경기를 뛰다 보면 집중력 저하와 체력 관리 실패로 타율/출루율/장타율 등의 비율 성적이 떨어지게 되는데, 6월 초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겨우 3-4개월간 42경기라는 미친 숫자를 찍었음에도 7개의 홈런과 4할에 가까운 ISOP (순장타율), 1.6을 넘는 OPS (=장타율+출루율)를 기록했으니까. 쉽게 얘기하면 한 경기 4번의 타석에 들어가서 볼넷 하나, 아웃 하나, 단타 하나에 2루타 하나를 '매 경기' 꾸준히 기록해야 저 성적이 나온다. 기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상당한 밸런스를 유지했던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하지만 미국에 오자마자 슬라이딩 실수로 왼쪽 다리의 복합 골절을 당한 이후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던 스피드가 상당히 죽어버렸고, 한 해 한 해 근력이나 유연성도 조금씩 아쉬워졌다. 특히 작년에는 체력 관리를 완전히 실패하면서 야구 경력 최악의 OPS를 기록하기도 했고... '아, 나도 이제 올게 온 건가?' 하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2023 시즌을 시작한 이유였다. 


시즌 초, 매주 수요일마다 있던 야구팀 연습에서 후배가 최근 본 영상 얘기를 꺼냈다. 유명 야구선수인 김하성과 이정후의 타격 폼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에 대해 설명했는데, 몸을 지탱하는 뒤쪽 다리를 강력히 앞으로 밀어내는 동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0년 이상 다양한 코치들에게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타격을 전수받아왔지만 다들 뒷다리의 회전력을 극대화하라고 했지, 이걸 앞으로 거의 차 내다시피 할 정도로 체중이동을 하라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스윙 시 머리의 움직임이 커지게 되고 공의 컨택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만약 하던 대로 잘하고 있었으면 '이런 게 있나 보다' 참고만 했겠지만 이미 최악의 시즌을 겪었는데 더 잃을 게 있나? 하는 마음에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고 시키는 대로 연습을 시작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을 넘어 대 격변에 가까웠다. 한인 리그에서 7할 타율과 1.8에 달하는 OPS를 찍은 것도 놀라웠지만, 2할 초반을 치기도 버거워하던 훨씬 수준 높은 미국 리그에서 타율 3할 중후반을 기록했다는 건 지금도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성과다. 이는 변화된 타격 폼으로 인해 배트 스피드와 타구 속도가 훨씬 빨라졌고, 이로 인해 이전에 헛스윙에 그칠 것이 파울이나 인플레이 타구가 되고 땅볼로 잡힐 공들이 내야를 뚫고 나가는 안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덩치 크고 힘 좋은 미국인들과 야구하면서 늘 파워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는데 올 시즌은 처음으로 '붙어볼 만하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뛰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당하기만 하던 에이징 커브에게 드디어 한 방 먹일 수 있어서 통쾌한 올해였다. 그래. 나 아직 죽지 않았어. 2024 시즌도 부상 없이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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