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파악’의 기술
주말 저녁, 약속 장소인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소민규는 조금 초조하게 장대리를 기다렸다.
가면의 힘을 빌렸을 때와는 다른,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곧 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평소의 칼 같은 오피스룩이 아닌, 부드러운 니트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들어섰다. 소대리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주셨네요.”
“기다렸어요? 소대리님, 아니... 민규 씨.”
그녀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둘 사이의 마지막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일 얘기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릴 적 꿈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감독, 학창 시절의 흑역사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소대리는 그녀가 완벽한 커리어우먼이기 이전에,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따뜻한 사람이며,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여린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대리는 그가 소심한 동료이기 이전에, 낡은 필름 카메라로 도시의 풍경을 담는 것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남자이며, 스스로를 이겨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규 씨는 요즘 정말 다른 사람 같아요.” 식사를 마칠 무렵, 장대리가 진심으로 말했다. “예전엔 단단한 껍질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젠 그 껍질을 깨고 나온 사람 같아요.”
“깨보려고요.” 소대리가 미소 지었다. “깨고 나오니, 한결 씨 같은 사람도 제대로 보이네요.”
두 사람은 함께 밤거리를 걸었다. 어색하게 떨어져 있던 어깨가 어느새 가까워졌고, 스치는 손끝에서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졌다. 화려한 가면이 만들어준 가짜 성공이 아닌,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며 얻은 소박하지만 진실된 행복이었다.
달콤한 주말이 지나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금요일 저녁, 이대리가 크로노스 클럽의 파티에 가는 날이었다. 소대리의 자취방은 다시 작전 본부로 변했다.
“이거, 초소형 녹음기랑 카메라야. 넥타이핀이랑 커프스 버튼으로 위장돼 있으니까 절대 들키면 안 돼.”
소대리는 이대리의 옷에 장비를 부착하며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읊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내가 밖에서 노트북으로 실시간으로 듣고 볼 거야.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신호를 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하면 안 돼. 우리의 목표는 정보 수집이지, 영웅 놀이가 아니라고.”
“알았어, 소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
이대리는 애써 농담을 했지만, 그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최고급 슈트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완벽한 신흥 부자였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화려한 파티장이 아니라 언제 적의 이빨이 목을 물어뜯을지 모르는 사자굴이었다.
“민규야.” 차에 오르기 전, 이대리가 소대리의 어깨를 툭 쳤다. “만약... 내가 못 돌아오면, 가면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죽는소리 하지 마. 꼭 돌아와야 돼.”
두 친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인생 역전극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목숨이 걸린, 위험한 싸움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곳은 서울 근교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철옹성 같은 저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비 속에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대리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대리의 노트북 화면에 저택 내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소대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저택 내부는 파티장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 가까웠다.
벽에는 고대 유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었고, 유리관 안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수십억짜리 유물을 마치 동네 마트 물건 이야기하듯 나누고 있었다.
돈과 권력이 넘실대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갤러리 관장이 이대리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와 몇몇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전직 장관, 대기업 오너, 유명한 외과 의사... 모두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유물에 대한 건전한 애정이 아닌, 소유욕과 탐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파티장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쏠렸다.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 한 명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명성그룹 진성준 회장. 그의 등장에 모든 이들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소대리는 노트북 화면을 통해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진 회장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밀랍인형 같은 얼굴. 오직 차갑고 텅 빈 눈동자만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주변을 훑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존재처럼 느껴져 섬뜩하기까지 했다.
갤러리 관장이 이대리를 데리고 진 회장 앞으로 나아갔다.
“회장님, 얼마 전에 말씀드렸던 이지훈 컬렉터입니다.”
진 회장의 텅 빈 눈동자가 이대리에게 향했다.
“...그리스 유물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소.”
그의 목소리는 감정의 높낮이가 전혀 없는, 기계처럼 단조로운 톤이었다.
“조예랄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저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것들을 보고 배우는 중입니다.” 이대리는 식은땀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 유물들... 지금도 잘 가지고 있소?”
진 회장의 질문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이대리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물론입니다. 가보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대리는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진 회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휠체어를 움직였다. 이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을 가는 척 파티장을 빠져나와 저택의 다른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별도의 보안장치가 설치된 서재를 발견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진 회장의 개인 수집실인 듯했다. 사방의 벽면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완벽한 상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대리는 서재를 둘러보다, 가장 중앙에 놓인 거대한 유리 전시 케이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른 곳은 모두 유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유독 그곳만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 자리 아래,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겔로스(Gelos). 웃음의 가면. B.C 5세기 추정. 스파르타.]
바로 소대리가 가진 그 웃음 가면의 자리였다. 진 회장은 가면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컬렉션 중 사라진 ‘마지막 한 조각’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그의 광적인 집착의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이대리가 막 그곳을 빠져나오려던 순간, 서재 밖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께서 오늘 새로 온 그 젊은 친구를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던데.”
“가면의 행방을 알 만한 놈일까?”
“글쎄. 하지만 조만간 알게 되겠지. 어차피 회장님 손안에 들어온 이상, 제 발로 걸어 나가긴 힘들 테니.”
이대리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곳은 파티장이 아니었다. 들어오는 문은 있지만, 나가는 문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열리지 않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는 서둘러 몸을 숨겼다. 노트북 너머의 소대리에게, 이 모든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화려하지만 서늘한 크로노스 클럽의 파티.
이대리는 그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흐름과 위험을 감지해야 합니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의실과 사무실의 ‘공기’를 읽고 숨겨진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분위기 파악’의 기술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 스킬입니다.
1. ‘말’이 아닌 ‘몸짓’을 읽어라
회의 시간에 사람들이 하는 말의 내용보다, 그들의 ‘몸짓’에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누가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집중하는가? 반대로 누가 이야기할 때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가? 상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유독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은 솔직합니다.
2. ‘회의실 자리’는 권력의 지도다
회의실의 좌석 배치는 조직의 숨겨진 권력 지도를 보여줍니다.
누가 상사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가? (최고 실세 혹은 신뢰받는 인물) 누가 상사의 맞은편에 앉는가? (대립각을 세우는 라이벌 혹은 동등한 파트너) 누가 회의 테이블의 가장 끝자리에 앉는가? (주니어 혹은 소외된 인물)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자리 배치를 관찰하면, 공식적인 직급 뒤에 숨은 비공식적인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3. ‘누가 누구와 점심을 먹는가’를 관찰하라
사내 정치는 회의실이 아닌 식당과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누구와 자주 어울려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사내에 형성된 여러 ‘파벌’과 ‘라인’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것도 전략일 수 있지만, 최소한 어느 그룹이 현재 가장 힘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소설 #직장생활 #성장소설 #자기계발 #인간관계 #진정성 #신뢰 #진짜얼굴 #가면 #위기극복 #사내정치 #비밀작전 #리프레이밍 #문제해결